내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몇 가지 호칭이 있다.
길을 걷다 누군가 ~~어르신하고 부른다면 나는 멈추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갈 것이 분명하다.
남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높여 부르는 말이건만 왠지 노구의 몸을 의지한 지팡이가 생각나니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카드 홍수의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나도 몇 장의 카드를 갖고 있다.
많이 쌓이는 것이 버거워 되도록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많은 카드 중에 절대로 잊지 않고 꼭 지갑에 담고 다니는 것이 있다.
바로' 어르신 교통 카드'이다.
이렇게 달콤한 것을 65세 지나서 받게 된 후 벌써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가족사진도 그만큼 자주 꺼내볼 수는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무더운 날 헉헉거리다 지하철이나 버스에 승차할 때 느끼는 청량감이라니~~
더구나 세상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게 하여 주는 대한민국 지하철을
공짜로 타게 해주는 것이 바로 귀하신 어르신교통카드가 아니던가?
나는 어르신이다.
얼마 전 사용하던 교통 카드를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때로 가물거리는 정신이 번쩍 들때도 있으므로 몇 날을 보냈다.
잡다한 소유의 쓰나미에 쓸려 어딘가에 묻혀 있으리라 생각하고 시간을 흘려보낸 것이다.
아무리 이 가방 저 가방 뒤지고 생각을 집중해도
나의 애장품이 되어 버린 파란색의 카드는 나타날 줄을 모른다.
결국 찾는 것을 포기하고 재발급을 받으려고 버스를 탔다.
익숙지 않은 곳이므로 짐작되는 정류장에서 내리려고 준비하며
운전 기사님에게 ~~주민센터가 있는 정류장이냐? 고 물었다.
한가한 버스에는 아무리 둘러봐도 승객이라곤 나밖에 없는데 기사님은 들은 척도 않는다.
나는 다시 같은 질문을 했다. 이번엔 마땅치 않은 눈으로 쳐다보는 듯싶더니
'~~인지 ~~~뭔지 있다"라고 겨우 퉁명스레 답을 한다.
저 기사분은 나보다 더 몸이 힘든가? 부부싸움을 했나? 오늘 탑승한 승객과 언쟁이라도 있었나??
이리저리 생각해도 여전히 불쾌했다. 나는 버스를 내리며 그 분에게 말했대.
~조금 친절하시면 안 될까요??
저녁 시간이 되면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사연과 함께 음악을 신청한 누군가는 "지금 시내버스 **11 버스 안에서 방송을 듣고 있다며
좋은 방송을 틀어 주시는 기사님께 감사를 전한다고 한다.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친절하고 멋있는 기사님의 모습을 상상한다.
어느 날 토요일 오후 한의원을 방문한 후 버스에 올랐다.
창밖으로 시선을 주다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젊은 아빠가 슬리퍼와 반바지 차림으로 10.0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들고
조금 당황한 모습으로 어정쩡하게 버스의 손잡이를 잡고 있다.
잠시 후 버스 기사 분이 말씀하신다." 제가 거슬러 드릴까요?
그분은 차를 정차 시킨 채 뒤에 걸려 있던 자켓에서 돈을 꺼내 건네주곤 거스름돈을 확인하라고 하신다.
나는 안다.
그 기사분의 친절과 배려가 아빠와 함께 어디론가 향하던 작은 어린아이의 기억에 어떻게 각인될 것인가를.
늘 시간에 쫓기는 듯한 버스 기사님들.
승객으로 인해 조그만 복잡해지면 안으로 들어가라고 소리치는 기사님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거칠게 차를 몰아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순간을 기억한다.
가뜩이나 힘들고 고단한 도시의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싣고 집으로 향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조금만 친절하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늘 있다.
하긴 당신도 피곤하고 나도 힘든 세상살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때는 음악으로 분위기를 살리고 한 번쯤 실수할 수 있는 승객을 위해 시간과 마음을 열어주시는 분들처럼
그저 직업의식으로만 종점을 향하여 달려가지 말고 가는 길에 조금 여유와 틈을 보여 주시면 어떨까 싶다.
성북 낙산여신 김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