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도 남은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 나 태 주
개나리와 목련이 함께 자리한 곳에 먼저 찾아온 벚꽃이 지고 있다.
순리대로 피고 지는 것. 먼저 온 자가 자리를 내어 주는 것. 자연의 질서이다. 산을 물들이는 산 벚꽃과 함께 오르내리는 언덕길을 달빛과 더불어 환히 밝히며 우리에게 살아있음의 아름다운 순간을 감사하게 해주던 봄날의 친구가 내년을 기약하며 흩날리며 공중으로 분해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알 수 없는 그리움을 일으킨다.
그런 날은 목에서 끼억끼억 소리가 나고 커피를 더 찾는다. 내 가슴에 온기가 퍼지길 기다린다. 떠난 벗이 찾아오리라 기대하는 듯이. 보이지 못하는 마음이 부끄러워 안으로 감춘 채.
내게 손 내밀며 다가오는 그리움과 슬쓸함이 멀리서 보이면 내 안에 감춰진 것이 튀어 나올까봐 꼭꼭 묻고 피하기에 바빴다.
그러면 난 걷곤 한다. 산길도 걷고 딱딱한 아스팔트도 걷는다. 걷다가 하늘 위 구름도 보고 바위 틈에 핀 작은 꽃에 다가기도 한다. 틈새에 자리를 잡고 숨쉬는 모습을 신기해하며 어제 스치던 꽃을 오늘도 경이로움으로 바라본다. 높아 보이기만 하는 나무위에 제 몸 보다 큰 나뭇가지를 물어다 만든 새들의 보금자리를 보고 탄성을 보낸다.
때로 탁 틔인 바다 위를 걷고 깊은 충동도 느끼곤 했다. 그리곤 믿음의 문제를 잠시 생각한다. 나는 왜 안되는 것일까 그리곤 영화 속의 젊은 교황을 떠올린다. 아스팔트 위에서 꿇어 앉아 하늘을 향해 양팔을 벌리며 신에게 할 말이 있다며 절규하듯 외치며 비장한 모습으로 간절함을 담아 기도하던 그 모습 속엔 감히 신도 거절 할 수 없는 믿음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나도 하늘을 향해 할 말이 많은데 내겐 때로 기적이 너무나 멀리 있는 듯이 느껴진다.
여자로 산다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아름다운 여인으로 남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이름으로 살고 싶었다. 막을 수 없어 차마 떨칠 수 없어 기어이 내게 다가오는 그리움이라면 하늘이 높고 푸른 날 공기는 티 없이 맑은 날을 택하리라. 곱게 맞아 산등성이에서 푸른 색 돗자리를 깔고 부드럽고 평온한 표정과 정갈한 모습으로 의미의 타래를 풀어 상석에 앉히고 나는 들으리라 사랑하는 방법과 노래하는 모습을 배우리라.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들의 비밀을 엿보리라.
언어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 시인처럼.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 그리움의 색은 어떻게 입혀야 할까. 한 겨울 심심산골에 쌓인 누구도 밟지 않은 백색의 눈 같은 흰색일까 복사꽃 피는 봄날의 하늘거리는 연 분홍색일까. 그리움이 지나면 기다림이 될까
노래를 부르고 싶다. 시인처럼. 어떤 노래를 부를까.이처럼 아름다운 봄날엔 나 홀로 목련꽃 그늘아래서 노래를 부르리라.
해가 노을로 변해 하늘을 물들이며 넘어가는 시간엔 모두 불러 그리움과 기다림과 쓸쓸함에 대하여 축배의 노래를 밤새껏 목 놓아 부르리라. 황홀함으로 뜨는 해를 맞이하리라. 기다리며 얻었노라 그리하여 승리했노라 말하며 기쁨의 날들을 지내리라
그리고 나는 먼 훗날 너를 생각할 것이다.
그리운 날 쓸쓸한 날 그리고 남은 날.
날 . 날 . 날.
시인은 말했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