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할머니

by 김인영

나는 여성이다. 딸로 태어나 소녀 시절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다음 생이 허락된다면, 나는 여전히 딸로 태어나고 싶다. 그저 마음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책을 읽다가 문득 ‘아가씨, 아줌마, 할머니’라는 단어에 머무른 적이 있다. 평범하고 친숙하게만 여겨온 말들이지만, 돌아보니 그 속에는 내 삶의 여러 얼굴이 담겨 있었다.

처음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던 이가 있었다. 아마도 재래시장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땅에 떨어져 있던 배춧잎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마치 그 배추처럼 밟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들이 나를 ‘아줌마’라 부르는 것이 왠지 격이 떨어지는 호칭처럼 들렸던 것이다. 사모님, 선생님, 아니면 아주머니라면 덜 서운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한때 나는 ‘아가씨’라 불렸다. 그 시절의 나는 남과 다르다고 생각하며 걷고, 또 생각했다. 꿈으로 곱게 포장된 찬란한 세계가 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 길을 향해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말투 하나, 행동 하나가 나를 드러내는 기준이 될 거라 믿었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인생의 초석을 단단히 다지고자 했고, 조금 벅차더라도 인내 끝에 돌아올 보상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시절은 분명 희망의 꽃자리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나 자신을 내려놓고 가족의 울타리 안에 묻혀 살았다. 좋아하던 옷을 다시 꺼내 입지 않았고, 즐기던 음식을 멀리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감수성은 눌러 담고, 체면과 타인의 시선 속에 나를 가두었다. 되풀이되는 일상이 때로 답답했지만, 현실의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 육체는 마음보다 먼저 시들어갔고, 나는 영락없는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오늘의 나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할머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제야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 시간과 물질, 관계의 터널에서 벗어나 은빛 세계로 들어서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부했던 것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사소한 것이 감사하다. 애써 버리지 않아도 비워지는 시간이 찾아온다. 이제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주 인정한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게 됨도,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 어렵다는 것도 체감한다. 눈길이 닿는 모든 것이 귀하다. 볼을 스치는 바람조차 고맙다. 햇살 속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의 미소에도 마음이 들뜬다. 가끔 시인의 말을 기억하려 한다. “그는 가난한 사람이다. 그의 주머니에 기도 밖에 들어있지 않은 것을 보면.”


나는 아가씨였고 아줌마였으며. 이제는 굼뜨고 힘없는 할머니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에 서 있다. 그래도 아직 주머니는 무겁고, 그 무게가 부끄럽다.

오늘 달리는 지하철의 경로석에 앉아 책장을 넘기며 잠시 후 볼 영화 한 편을 떠올린다. 아가씨와 아줌마의 시간을 지나 도착한 할머니의 오후가 참으로 좋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국수호 춤 60주년 기념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