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와 손주

by 김인영


오늘도 영하의 날씨다.

제법 추위에 익숙해진다고 생각하며 지낸 며칠이다.

껴입고 나왔으나 강한 바람으로 겨울 날씨를 만만하게 여긴 것을 후회했으나 돌아가기엔 시간이 촉박하다.

급한 마음에 청소기 매장을 찾아 나선 아침이다

그닥 주변을 정리하며 사는 사림도 아니요

쓸고 닦느라 오전 시간을 보내고 차 한잔에 고전음악을 신청한다는 고상한 부류도 아니지만

어제 찾아간 서비스센터에서 부속이 없으니 청소기를 새로 장만하여야 한다는 말을 듣고 부재의 아쉬움이 밀려왔다. 교체로 인한 미련도 새것에 대한 호기심도 별로 없음으로 당장 쌓이는 먼지와 구입하기 전 행할 번거로운 절차가 먼저 떠올랐다. 조금 귀찮기 조차했다.


6년이 다 되도록 나는 청소기의 흡입 부분이 낯설어 가끔 비워야 하는 먼지 봉투는 남편의 몫이었다.

있을 때 좀 더 잘 다룰껄 하는 마음이 슬쩍 지나갔다.

지난 번 충전이 늦어지며 멈출 때 내가 참지 못하고 두들긴 것이 화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듣지 못하는 물건이라고 짜증까지 부렸다. 수리한 지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말썽이라고.

때때로 내 안에 버티고 있던 과격함이 돌출될 때가 있다. 살살 다룰 것을. 기계가 고장 난 것은 세월 탓이 아니다. 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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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몇 년전 일이 떠오른다.


손주가 아직 돌이 안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딸을 방문했다.아기의 재롱을 보며 며칠을 잘 보냈다.얼마나 그리던 순간이었는지 서로 이야기하며 아기에게 다가가 눈을 맞추기도 하고 책을 읽어주면 반응하는 모습에 행복했다.자는 모습도 먹는 입모양도 장난감을 쥐고 있는 손가락과 때가 되면 묵직하게 차오르는 기저귀등 참으로 오직 신 만이 가능한 작품이라며 찬탄을 마지않았다.아기의 모든 것이 신기했다.

며칠이 지난 후 딸과 사위가 직장으로 나가는 날이 되었다. 어쩐일인지 딸이 문을 닫고 나가기가 무섭게 잘 놀던 아이가 울기 시작한 것이다.나는 달래고 어르고 업고 안고 장난감도 쥐어주고 자장가도 불러줘도 아기의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문득 이웃이 신경 쓰이고. 아기가 아픈가 걱정이 되었다.등 뒤에 업혀있던 아이는 뒤로 자빠지며 힘을 쓰기도 했다. 아이를 내려놓고 한 숨을 쉬자니 이번엔 허공으로 버둥대며 우는데 얼굴은 불에 데인 듯 보였다. 한 번더 가슴에 안고 다독여 주니 잠시 조용해지며 장난감을 갖고 노는 듯 싶더니 장난감을 던지며 난장판을 만들고 다시 울기 시작하였다.


나는 아이의 엉덩이를 두어번 때린 후 마침

오전에 자는 시간이라고 알려준 딸의 말대로 아기를 침대에 뉘이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한참 후에야 아기의 울음은 잦아지고 나는 불안을 뒤로 하고 숨을 돌렸다.

5살이 지나도록 손주의 부모는 아이에게 손을 대며 훈육하는 것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아직도 그 날의 사건을 딸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많이 울더라고만 했다.

아이에게 미안했다고 사과하지 않았다.

나는 인내심이 부족함을 고백한다

나는 사물도 아이도 사랑할 줄 모른다.

진공 청소기도 아팠을 것이고 나의 손주도 아마 조금 이팠을 것이라 짐작한다. 좀 더 따스한 손길이 닿는 보살핌이 없어서 더욱 보챘을 것이다.

돌이켜 보니 살아온 날이 모두 오점 투성이다.

먼지 같은 나를 신은 용서해 주시려나.


청소기는 어서 장만해야 겠고

딸에게도 손주에게도 그 때의 일을 이야기 해야겠다.

미안하다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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