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비 내리는 올림픽공원.
창을 통해 사라져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일은 묘한 감동을 자아낸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조금은 아쉬워지고, 결국은 체념 속에서 받아들이는 작은 자가 된다.
사라져야 돋아나고, 버려져야 피어나는 것 아니던가.
비 내리는 길 위의 낙엽은 작년의 그것과 다를 것이다. 내가 어제의 내가 아니듯이.
즐거운 대화 속에서 기쁨을 느낀다. 살아온 시간의 방향은 저마다 달랐지만, 아메리카노와 라테가 어울리듯 우리는 잘 어울렸다. 건강한 점심 식사 뒤에 이어진 대화 또한 건강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나누는 말에는 묘하게 체온이 있다.
문득 마음도 몸도 건강한 친구 같은 언니가 떠올랐다.
1941년생, 뱀띠라며 환하게 웃는다. 스무 살 무렵 미국으로 건너가 50년 넘게 살았으면서도 “영어는 못하고 한국말만 잘한다”라고 기운차게 고백하는 사람.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듣고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그 솔직함과 겸손함이 참으로 멋지다.
오래전 간호사로 은퇴했지만, 지금도 어른들의 데이케어 센터에서 입소자들과 춤추고 노래하며 아픈 곳을 지압해 드리는 현역이다. 여든둘, 그러나 여전히 인기 많은 간호사.
코로나로 모든 것이 막히고 단절되었던 시간에도 그녀의 집은 늘 열려 있었다고 한다. 나는 쉽게 그 풍경을 그릴 수 있다. 거실 앞 수영장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운동을 마친 뒤 그녀가 가꾼 토마토와 가지, 오이와 고추, 상추의 초록빛이 식탁 위에 가득했을 것이다. 그 초록이 사람들의 얼굴 위를 지나며 웃음을 피워냈으리라.
그녀가 있는 곳에는 나눔이 있다. 웃음이 있다. 그리고 넘치는 에너지가 있다.
새벽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일주일에 한 번쯤 골프를 치며, 누군가 부르면 어디든 달려가는 사람.
그런 언니를 생각하면, 남편과 딸들에게 힘들다고, 아프다고, 외롭다고 투정 부리던 내가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익숙하지 않은 서울 여행길에 양평에서 김장을 담그고, 용인을 거쳐 남산을 오르고, 송파에서 저녁을 맞았다는 하루의 일정은 내겐 무용담처럼 들렸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지하철을 타고 나를 만나러 온 그녀는 우리의 만남이 기적 같다고 말했다.
하긴, 급작스러운 일정 변경 끝에 이루어진 만남은 작은 기적이 맞다. 소소한 일상이 곧 기적이고 감사라면, 그날 우리는 충분히 기적 속에 있었다.
오후 내내 우리는 나의 스무 살 시절 여행 이야기와 이미 흐릿해진 추억들을 꺼내 놓으며 웃었다. 시간은 조용히 흘렀고, 우리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물었다.
“언니는 앞으로 무엇을 계획하고 계세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내 묘비명에는 이렇게 쓰였으면 좋겠어. ‘쓸데없이 바쁘게 살다 간 여인’이라고.”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러면 언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뭐예요?”
“사람.”
짧은 대답이었다.
모두가 약점을 감추고 포장하며 사는 세상에, 저토록 맑은 여인. 풍성한 여인. 보람차게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니 나 또한 엔도르핀이 솟는다.
그녀가 건강하게 사는 비결도 보인다.
자신을 낮추고, 늘 열린 자세로 배우며,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으로 품는 것. 운명이라 불리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나는 아주 귀한 한 가지를 더 발견했다.
여전히 그녀의 가슴에 살아 있는 활화산 같은 열정.
그것은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꺼지지 않는 사랑.
어쩌면 그것이 동성을 넘어 이성을 향한 것일지라도.
그 가능성을 떠올리는 순간, 내 안에서도 희망의 닻이 조용히 바다로 내려진다.
부디 지금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음번 만남에서도 다시 뵐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