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고개에 핀 수국

by 김인영

<함경북도 마천령 용소골.

집이라 해도 네 칸은 집을 닮았고, 나머지 여섯 칸은 토굴이었던 곳.

어머님은 봄 산에 올라 참꽃(진달래)을 한 자루 따다 놓고,
아침과 점심을 대신해 왕기에 꽃을 가득 담아주셨다.
입술이 푸르도록 꽃을 먹어도 허기는 채워지지 않던 시절.

그런 날이면 어머님은 조용히 아리랑을 부르셨다.

청천 하늘에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에 가난도 많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황금찬 시인의 「어머니의 아리랑」을 읽을 때마다
나는 내 어머니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다.


딸들아,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니?

무더운 8월, 꿈속에서 예쁜 박을 따고 나를 낳으셨다는 어머니.
타는 갈증에 들이킨 우물물로 폐렴에 걸리셨고,
“너는 죽고 어미는 살아라.”
할머니가 윗목으로 밀어 올린 핏덩어리는
징하게도 울어대며 끝내 살아남았다고 하셨다.

구박받던 어린것은 본성대로 젖을 빨며 버둥거렸고,
시간과 함께 자라났다.


내가 아플 때마다 어머니는
“젖을 잘못 먹여서 그렇다.”며 자책하셨다.
당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늘 “내 탓이다.”라고 말씀하시던 분.

내가 시집가 사위를 맞았어도
비 오는 날 산에 오르지 말라 하시고,
늦은 밤길은 조심하라 당부하시던 분.

TV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새로운 음식을 배우시곤
정작 당신은 많이 드시지 않고
딸과 사위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더 기뻐하시던 어머니.

함께 다니면 “어머니가 언니세요?”라는 말을 듣던 분.
평생 염색 한 번 하지 않으셨던 분.
동구 밖 느티나무처럼 그 자리를 지키시던 나의 어머니.

오래 전 내가 멀리 떠날 때
수도꼭지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눈물을 흘리셨다.


1남 3녀를 키우시면서도
남아선호라는 말과는 먼 분이셨다.
내 자존감을 키워주셨던 분.

그러나 하나뿐인 아들을 가슴에 묻은 뒤
치미는 통증으로 긴 밤을 남몰래 밝히셨던 분.
강하셨지만, 그 강함은 참아낸 눈물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어릴 적, 부풀린 머리로 학교에 오시던 날
나는 교정이 환해지는 듯했다.
아버지가 대졸이라는 사실을 자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우쭐함이었다.


겨울이 오면
“젊은 날, 예순이 되면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한 남자가 있었다.”
꿈 같은 로맨스를 들려주시던 노인네 춘향.
그러면서도 여전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그리워하시던 분.

어머니,
이제는 그저 이름만 불러보는 어머니를 그립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합니다.

딸들아,
너희도 할머니가 매우 그립지? 긴 외출이네.


엄마의 외출


새벽에 엄마가 나가셨다.
점심이 지나고,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으신다.

만날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들을 수 없다.

허공에 메아리만 번지는 날.
바람 한 점,
눈물 한 방울,
사진 속 미소만이 남아있다.

내 가슴에 남은 것은
꽃 수국처럼 둥글고도 시린
엄마의 그리움.

엄마가 나가셨다.
아주 긴 외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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