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호박 목걸이를 읽고

by 김인영


서울 역사박물관을 다녀왔다. 마침 책 ‘호박 목걸이’를 읽은 터라 저자인 메리 테일러의 유품이 특별 전시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갔다. 영국인 메리는 인도에서 우연히 만난 남편과 결혼하여 한국에서 살다가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된 여인이다. 부부는 권율 장군이 손수 심으셨다는 은행나무가 있는 터에 당시 한국에서 제일 큰 개인 벽돌집을 짓고 딜쿠샤라는 이름을 붙였다. 딜쿠샤라는 뜻은 인도 말로 기쁨의 집이라는 뜻이다.

1917년부터 1942년까지 조선에서 사는 동안 젊고 아름다운 안주인이 몸담고 살았던 당시의 모습이 호박 목걸이라는 책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것이다. 결혼기념일에 남편에게서 선물로 받은 호박 목걸이에 녹아있는 그녀의 흥미로운 삶의 여정을 글 속에 밝히고 있다. 부부의 사랑과 우정으로 꿰어진 사진 속 여인의 목에 걸린 길고 무거워 보이는 목걸이는 그녀의 숨소리가 묻어있는 발자국이다.


조선에서의 살아온 날들을 구슬 서른넷으로 풀어낸 책에서 나는 막연히 알고 있던 시대를 만났다. 나는 금광을 찾아 이 땅을 찾아온 이방인의 존재를 몰랐다. 메리의 남편은 한국에서 금광을 하던 사업가였다. 메리는 딜쿠샤를 짓기 전에 잠시 살았던 신혼집의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풍경소리를 좋아했다. 한 방에 스무 명도 넘게 포개져 자는 조선인들의 삶에 놀랐다. 밤낮으로 일만 하는 여인들을 낯설어했다. 당시 서울엔 150명의 외국인이 유니온 클럽에 있었다. 그들은 각 나라의 국경일이 돌아오면 서로 축하해 주며 함께 준비하기도 했다. 산길을 걷다 보면 호랑이도 만나던 시절이던 때 엘도라도의 꿈을 좇아온 그들이 미신에 약한 우리 민족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들의 자산을 지키는 대목에선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축음기에 무속인 말투를 흉내 내게 하여 훔쳐간 물건을 돌려놓지 않으면 조상의 묘에 악귀가 붙는다고 했더니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모든 물건이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는 것이다. 무지하고 순진한 민초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일만 이천 봉의 금강산을 마주한 그녀는 장엄한 풍경 속에서 완성되는 아름다움에 경탄을 금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 같은 금강산을 다시 마주해 볼 날을 기다리는 마음은 우리 모두의 염원일 것이다.


열아홉 번째 구슬에서 나는 만세 소리를 들었다. 고종의 승하에 거리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소 달구지를 타고 조랑말을 타고 그들은 왔다. 황제의 장례식 기사를 쓸 통신원을 찾는 자리에서 우연히 신문기자가 된 남편은 삼일 운동 학살 소문을 듣고 찾아간 곳에서 유명한 제암리 사건을 목격하고 일본인 총독을 찾아가 학살은 멈출 것을 요구하며 결국 그가 찍은 사진으로 대 학살을 중단하게 만든다. 만세운동은 5월 21일까지 계속되었고 수천 명이 투옥되고 약 7000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애국지사들 다수가 살해되었다. 그는 삼일 운동의 목격담을 서류로 작성해 1949년 이승만 박사를 만났을 때 전해주기도 했다.


그녀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아들을 얻던 날 다급하게 병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는 신속하게 아들 대신 서류 뭉치를 그녀의 침대에 집어넣었다. 거리에서는 만세 만세의 커다란 함성이 들리고 있었다. 종이 뭉치는 일본 경찰을 피해 들어온 독립선언문이었다. 결국 독립 선언서 사본과 기사를 동생이 구두 뒤축에 감추고 도쿄로 가서 전신으로 미국에 보내는 역사에 남을 일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3.1 운동의 기사를 전 세계에 알린 이가 바로 메리의 남편 부루스였던 것이다. 이 영국인 부부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 살던 파란 눈을 가진 조선의 애국자였다. 나는 호박 목걸이를 읽고 당시 조선의 모습을 생생한 목소리로 듣고 또렷한 모습으로 보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19년은 삼일 독립 선언문이 발표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호박 목걸이를 읽은 탓인지 더욱 새롭고 감격으로 다가오는 2019년의 삼일절이다.

기쁜 마음의 궁전 딜쿠샤. 백 년 전 낯설고 머나먼 한국 땅에 뿌리를 내려 사랑의 안식처를 꾸미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은 그 집이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완전히 복원하여 우리를 맞는다고 하니 만사 젖혀두고 달려갈 것이다. 마음으로 안주인을 찾아뵙고 조선을 사랑해 주어 고맙다고 감사를 전해야겠다. 그녀의 말처럼 사랑으로서 우리의 일부로 만들었던 것들은 영원히 지속되고 소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름다운 이름 메리 테일러. 그리고 이웃에게 권하고 싶은 책 ‘호박 목걸이’.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추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