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 평소 짐 들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이지만 집에 들어서며 제법 무거워 보이는 상자를 내게 보이고 웃는다. 먹어보니 맛이 좋아 사 왔다며 일행들은 사는 분이 없었다는 부연 설명과 함께 사랑의 무게를 안긴다.
상자를 열어 이해가 힘든 한자는 비껴두고 사진을 보니 붉은 열매 사이로 노랑 열매가 보인다. 절취선을 따라 자르고 나니 낱개로 포장된 것에 어린아이 손만 한 크기의 말린 대추를 반으로 절단하여 호두를 끼어놓은 스낵이 들어있었다. 따뜻한 차를 얹어 맛보니 초겨울의 간식으로 제격인 듯싶었다. 내가 놀라워하며 베어 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인식한 남편은 은근히 어깨가 올라간 듯 보였다.
늘 쳇바퀴 도는 인생을 평생 살아온 그이다. 남편을 생각하면 고지식. 한 우물. 반듯함. 세 단어가 한 단어로 맞아떨어지는 듯싶다. 우연한 기회에 중국 인문 기행을 하고 왔다. 좋아하는 두보의 시를 듣고 소동파의 고향을 밟고 유비와 제갈량의 사당을 나와 동행하지 못하고 혼자만 보고 온 것이 걸리는지 평소 하지 않던 짐꾼 노릇을 자처한 것이다.
난 대추의 크기에 놀라며 중국인들의 중화사상과 대륙적 기질 수많은 인구를 잠시 떠올렸다. 그리고 큰 호랑이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중국을 자주 다니시는 분이 진작 중국말을 안 배운 것이 후회된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난다. 같은 민족이어도 자신의 글을 죽을 때까지 다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우리의 위대한 세종대왕을 언급한 분도 있다.
아무튼 중국에서 날라 온 대추 한 알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저 붉은 대추 속에 태양 몇 개를 발견하고 천둥과 벼락의 시련을 통과한 승리의 열매를 노래한 시인은 대추 한 알에 박힌 우리의 인생을 찾아내기도 했다.
대추는 우리 생활 속에서 비교적 쉽게 만나는 친숙한 열매이다. 여름 삼계탕에도 넣어 먹고 명절과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고 올리는 것. 불면에 좋다고 끓여 먹고 약방의 감초처럼 여기저기 쓰이며 한약의 부재료로도 많이 사용된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집 안에 심으면 좋은 나무로 소나무와 동백나무, 석류와 대추나무를 꼽았다. 특히 대추나무는 꽃마다 열매를 맺으니 암수가 한 몸이어서 집안에 심는 데는 화목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지 않았나 싶다. 그뿐만이 아니라 풍성한 열매를 보곤 다산을 기원하며 혼례식 땐 폐백 상에 올리고 며느리의 치마폭에 던지는 풍습도 있다. 얼마나 영양가가 많은지 대추를 보고도 안 먹으면 늙는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남편이 사 온 대추를 여기저기 좋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는 하루에 두 번 정도 꼭꼭 챙겨 먹으며 행복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추의 효능을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최근 들어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 선생님께서는 체중을 빼라고 하시며 절식을 권하셨다. 난 2달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밥과 김치 등을 거의 손대지 않고 입에 맞지 않는 팍팍한 닭가슴살이나 차디찬 샐러드로 좋아하는 올리브 오일도 마다하고 내 기준으론 거의 수도자의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어떤 이는 이 나이에 무슨 다이어트냐며 내 눈이 꺼져있다며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관찰하기도 하는 중이다. 그런 내게 다이어트엔 대추가 아주 좋지 않다는 것을 귀띔한 사람이 있었다. 이제까지 노력한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말이다. 때로 물로만 채우던 허기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모임에서도 내 양을 채우지 못하고 끝내는 풍성한 식탁은 또 얼마나 아쉬웠던가. 부족한 영양을 대추와 호두의 좋은 성분으로 메 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 불찰이었다. 이젠 커다란 대추가 축구공처럼 보여 입에 대기가 싫어졌다.
그런데 대추와의 인연이 얼마나 계속되려는지 평생 처음 인감도장을 만들게 되었다. 내 이름으로 인감을 만들고 서명을 하는 신기한 일이 생겼다. 가진 도장을 쓰겠다고 말하는 내게 중요한 도장이니 좋은 것으로 만들라는 남편의 권고를 잊지 않고 십수 년 만에 도장 파는 곳을 찾아갔다. 도심 한가운데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일도 새로웠다. 마치 잊혀가고 사라져 가는 골목길을 발견한 것 같은 정겨움이 느껴졌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 내가 태어난 십이간지에 속한 순한 양이 그려져 있는 것을 선택했다.
잠시 후 내 손에 들려진 도장을 보며 무슨 나무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대추나무라고 했다. 이름도 낯설기 만 한 벽조목이라고 했다. 벼락 맞아 그을린 대추나무로 만든 물건을 소지하면 액운을 막아준다는 조상들의 생각이 깃든 도장을 받아 들고 나오며 급작스레 며칠 사이 대추나무와 무척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정원에 대추나무를 심지는 못하였어도 깊숙한 내 장롱 밑에서 날마다 나와 함께 숨 쉬며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나의 오래된 지인처럼 가까워진 대추처럼 무엇으로 나의 앞날을 풍요롭게 할까 잠시 생각해 본다. 대추 한 알에 깃든 찬란한 나의 노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