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찾아서(1)

90년대 우리들의 풍경에 대한 소회

by John

나는 보통 우리나라가 IMF 전후로 다른 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90년대 어른들은 낭만이 있었다.

복도식 아파트로 세상이 가득차가던 시절, 빨간 벽돌 주택들이 그 주변을 감싸고 앉아 있던 그 시절.

한여름이 되면 복도식 아파트의 현관문은 죄다 열려 있었고 모기장 하나만 있으면 만사형통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서로 젓가락이 몇개 있는지 다 안다고 얘기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때다.

나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꼬맹이들과 매일 같이 뛰어 놀며 옆집, 윗집, 아랫집할 것 없이 돌아다녔다.

밥을 먹을 때가 되면, '오늘은 우리집에서 먹일께!' 놀고 있던 집의 아주머니가 복도밖으로 머리만 빠꼼히 내밀고 소리치면 '네! 고마워요.' 한마디면 되었다. 언제나 서로 요리한 음식들이 넘나들었고 어느샌가 어느집 김치는 굴이 들었고, 어느집 김치는 젓갈이 많이들어갔다며 고향별 김치 색깔까지 익힐 정도였다.

서로가 넘나드는 문화는 꼭 교과서에 나오는 역사책의 품앗이 얘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 속에 녹아 있었다.


그때도 삶은 꽤나 팍팍했었다. 아버지는 상고를 졸업하자마자 은행에 곧바로 취업하셨지만 8남매 장손인지라 동생들 학비도 대주고 하느라 매년 빚잔치셨다. 우리집엔 항상 엄마의 시동생들이 돌아가며 살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사촌형의 옷을 물려입거나 트럭에 한가득 아동복을 싣고선 확성기로 장사하는 아저씨의 80% 창고정리 브레땅 아동복이 전부였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내 추억은 왁자지껄 웃음이 가득했다.


IMF가 찾아올 무렵부터 여기저기 그늘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늘은 시원하지 않았고 밝은 햇살 및 어둠같은 느낌이 스며들듯 다가왔다. 가족들이 모이면 언성이 높아졌고 아파트 주차장에 삼삼오오 모여들어 뛰어놀던 아이들은 PC방 담배 연기 자욱한 너구리 소굴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