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그곳에 대해 상상하며 여행 짐을 꾸렸고 다녀온 후에는 그 고장이 생각나는 책으로 내 여행은 끝나곤 했다. 2023년 12월 30일 대련으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박경리 토지나 조정래 아리랑을 읽으며 만주지역이나 대련, 블라디보스토크로 여행을 가고 싶었었다.
그렇게 떠난 대련 여행. 요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여순 감옥 탐방에 있었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를 모두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내놓으라 하면 거의 빈털터리가 된다. 나도 안중근 의사에 대해 알려고 노력했지만 여순 감옥에 가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아주 많았다.
여행에 돌아와서 안중근 의사를 다룬 뮤지컬 영화 <영웅>도 봤고 김훈 작가님의 <하얼빈>도 이제 다 읽고 책을 덮었다. 영웅이냐, 하얼빈이냐! 고르라면 둘 다 좋았지만 그래도 김훈 작가님의 하얼빈에 손을 들겠다. 김훈 작가님의 <하얼빈>은 치열하게 고증됐고 안중근, 특히 우덕순의 조명은 독자들 마음에 마구 상처를 남겼다. 하층민으로 담배팔이로 연명했던 우덕순! 그는 배운 자들이 늘어놓는 헛되고 헛된 말이 난무하는 재판정에서 침을 흘리며 졸다가도 그가 진술하면 방청석은 고요해졌다고 한다. 꾸밀 줄 모르는 사실의 언어들은 재판관의 질문을 허물어지게 했다.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안중근 의사의 진술도 놀라울 따름이다.
여순 감옥에는 안중근을 위해 만든 별채 감옥이 현재도 잘 관리되고 있다.
책과 영화에서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지점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철저하게 자료를 찾아낸 김훈 작가님 의견이 더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눈으로 본 거 하나는 확실하다. 여순 감옥에는 안중근을 위해 별도로 만든 별채 감옥이 있었다. 아직도 잘 보존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안중근과 우덕순을 호송하기 위해 마차를 별도로 제작했는데 김훈 작가님의 하얼빈에는 일본이 문명한 국가의 법정 모습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처사였다고 썼다. 하지만 여행 중 들은 이야기로는 여순 감옥의 관계자들이 안중근 인품에 감화되어 특별한 대우를 해 줬다는 해설사 설명도 있었다. 나는 두 가지 주장이 다 맞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화가 난 부분은 일제 치하 당시 천주교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안중근 의거에 대해 바른 판단을 하지 않은점이다. 신자셨던 안중근을 비호하지는 못할망정 그 당시 주교였던 뮈텔 신부의 행적들은 가슴 아프다 못해 화가 난다. 그의 행적은 후기에 적혀 있고 눈 밝은 독자는 금방 찾아낼 거다.
이 책에서 안중근 부인 김아려 여사님을 새롭게 만났다. 영화 <영웅>에서는 가벼운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연출이었다. 김아려에 대한 생애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김아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기억이나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단다.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안중근의 유해도 찾지 못했고 그를 살인자로 규정했던 천주교는 1993년 김수환 추기경에 와서 의거를 인정했다. 개탄스럽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은 대단한 명문이었다. 김훈 작가님 문장을 내가 여기서 대단하다 말하는 일조차 시간 낭비다. 안개비 내리던 1910년 3월 26일까지의 안중근 의사의 행적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나는 김훈 작가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노트 정리하며 각 챕터에 제목을 지으며 읽었다. 이렇게 나의 대련 여행도 비로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