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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게 Nov 28. 2021

색종이로 꿈을 만나다

어르신 인지교육 활동 수기

     

     

어르신과의 잘못된 만남

제비뽑기를 해서 어르신을 배정 받았다. 

89세 여자 어르신으로 치매는 전혀 없으신데 거동이 불편하셔서 집에서만 생활하시는 분이셨다. 벌써 3년째 치매안심 센터에서 활동가 선생님의 관리를 받고 계시는데 그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었던 작품을 비롯해서 손수 만드신 귀여운 소품들로 집안 곳곳이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손재주도 워낙 좋으시지만 특히 색종이 접기 작품들의 수준이 너무 훌륭해서 잔뜩 기가 죽어 있는데 어르신이 “색종이 접기를 좀 더 하고 싶다”하시니 그 때 나의 솔직한 심정은 

‘...내가 제비뽑기 잘 못했구나’  

   

색종이와의 어쩔 수 없는 만남

어쩔 수 없이 종이접기는 시작되었다. 수업준비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종이접기를 검색하고 유튜브를 봤다. 꽃도 접고, 옷도 접고, 수박, 사과, 딸기 등등 쉬워 보이는 것부터 연습을 해서 수업을 했다.

몇 시간씩 시간을 쏟아야 하는 것 보다 힘든 것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어르신께 너무 쉬운 건 아닌지, 재미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등등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이디어와의 우연한 만남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해서 국가 유공자이신 어르신을 칭찬해 드리고 싶은 생각에 어르신 집을 접어보았다. 노란 집에 (실제로 어르신은 노란색 집에 사신다), 가끔 놀러오는 들고양이도 접고 (나도 그 녀석을 여러 번 마주친 적이 있다) 마당 한 쪽에 심어져 있는 상추, 그리고 나무와 화분들, 정원 맨 앞에는 “국가유공자의 집” 이라는 팻말도 접어서 붙였다. (실제로 대문 쪽에 팻말이 붙어 있다)     

“선생님은 내 생각을 많이 하시나 봐요.” 어르신이 종이접기를 하시면서 여러 번 즐겁게 웃으셨다. 그 후로도 “여러 사람 고생시키지 말고 시설로 들어가 버릴까 생각했었는데 선생님이 집을 한 채 지어주셨어요” 하시며 웃으셨던 거로 보아 진짜로 좋아하셨던 거 같다. 그 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르신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긴 종이접기를 해야겠구나.’ 난 그렇게 우연치 않게 “스토리종이접기” 라는 아이디어를 만나게 되었다.   

 

색종이로 세상을 만나다.

스토리가 있는 종이접기를 하려면 무엇보다도 어르신과 나눴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기억해서 작품에 등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리스 꽃밭을 접을 때, 집에 하얀 나비가 날아온다는 어르신 말씀이 기억나서 배추흰나비를 접어놓았다. 동물을 접을 때는 새끼를 여러 마리 접어서 대가족을 만들고 늦둥이까지 접어서 어미 품에 안겨 보았다. 지금은 홀로 지내시는 시간이 많지만 대가족을 이루며 사셨던 행복한 기억을 꺼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꼬마아이를 접을 때도 친구를 함께 등장시켰고 동작이나 표정이 즐거워 보이도록 그려보았다. 색종이로라도 그리운 친구를 만나게 해 드리고 싶었다. 가지, 당근, 대파 등이 담긴 채소 소쿠리를 접은 다음에는 그 채소를 이용해서 파전을 접고, 양념간장과 젓가락까지 접어서 그럴듯하게 상차림도 해 보았다. 할아버지 생전에 함께 여행했던 제주도 이야기를 나눈 다음번 수업은 돌하르방과 제주도 풍경을, 복날에는 대추와 인삼을 곁들인 삼계탕을 접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점점 접을 것들은 많아졌다. 접는 방법이 생각 안 나서 당황하고  색종이를 안 가지고 가서 안절부절 못하는 꿈을 꾼 적도 있으니 적잖이 스트레스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아이디어를 찾아내려 머리를 쓰게 되어서 요즘 내가 좀 똘똘해지고 생기 있어 진 거 같다. 불이 꺼져 있던 깜깜한 방에 환하게 불이 켜진 듯 한 느낌이라면 비슷할지 모르겠다.

활동가 선생님 중 한 분이  “선생님은 그 어르신 덕분에 치매는 안 걸리겠어요.” 

맞다. 그럴 거 같다.    


 



그러나 꿈이 있을까?

어르신은 오랫동안 수영장을 다니셨고, 옷도 잘 만드시고, 음식도 잘하시고, 주변사람들을  넉넉한 인심으로 잘 보살피시고 친구들도 자주 만나시면서 활발하게 생활하시던 한마디로 못하는 것이 없는 분이셨는데, 4년 전에 한 번 넘어지신 후로 여러 지병까지 생겨서 병원에 가시는 것 빼고는 아예 집에서만 생활을 하고 계신다, 그렇게 유능하시고 건강관리를 잘 하시던 분이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믿기지 않고 힘드실까?       

그러나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작품에 몰두하시는 모습이 힘들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색종이를 접으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즐거운 상상을 하며 세상과 만나고, 또 거친 세월과도 맞서고 계신 중이라 생각한다. 신체적 불편함과 마음의 외로움을 극복하는 것에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그럴 때면 더 열심히 준비하고 아이디어를 내서 웃게 해드려야지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하고 노력을 해도 어느 날 갑자기 어르신이 요양시설에 들어 가실수도 있고, 병원에 입원을 하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치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찾아온다. 이 노력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꿈이 있을까?    

 

꿈을 만나다.

“어르신이 작품을 만들어서 우리 치매센터에 기증하면 어떨까요? 그 연세에도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을 보여드리면 다른 어르신들에게도 희망이 될 거 같아요”

솜씨가 워낙 좋으신 어르신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우리 센터 복지사님께 작품 기증 이야기를 꺼냈더니 좋은 생각이라며 응원해 주셨다. 어르신도 흔쾌히 “선생님이 해 주시면 좋지요” 승낙을 하셨다.

나는 또 이렇게 우연치 않게 “작품기증” 이라는 꿈을 만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시작된 종이접기였지만 이제는 나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쳐 달라는 사람도 있고, 강사해도 되겠다는 칭찬을 들을 정도로 실력이 날로 일취월장하고 있으니

더불어 나에게도 좋은 일이 되고 있다. 과분한 칭찬임을 알고 있지만 기분이 좋다.    

 

상상을 해 본다.

센터 건물 안, 한 편에 어르신 성함이 적혀있는 작품이 걸려 있고, 감탄하며 감상하는 많은 사람들, 생각만 해도 입 꼬리가 올라간다.

어쩜 이 꿈은 상상 속에 머물다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는데 매주 어르신 작품집이 두툼해지고 있고, 꿈 보따리도 커져가고 있으니 

이미 8부 능선은 넘었다고 해도 절대로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수업을 마치고 나올 때면 잘 안 올라가는 팔을 애써 머리 위로 올리며 하트를 그려 주시는 

어르신!

제비뽑기 잘못했다고 생각했던 거, 취소할게요.

어르신을 만나 행복하고, 꿈을 만나 행복합니다.

어르신도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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