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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게 Nov 28. 2021

다시금 시작한 행복연습

-어르신 인지교육 활동 내용 인터뷰로 “50플러스를 만나다책에 실린 글입니다-      

          

신장 공여가 인생의 궤도를 바꾸다.

5년 전, 55세의 가을,

친정오빠에게 한 쪽 신장을 기증했습니다.

오빠와 저는 성격도 비슷하고, 생김새, 그리고 식성도 비슷해서 검사를 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유전적으로 100% 일치했습니다. 피를 나눈 사이라고 해도 100프로 일치는 힘든 확률이라고 해요. 두려움과 걱정, 그리고 아이들의 심한 반대도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한 쪽 신장만 가지고  살아도 별 지장이 없다고들 하니, 용감하게 수술을 강행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고통의 시간이 다가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요.          

 

절망이 되어 돌아온 선행...

빈혈이 오고, 강직이 일어나고, 전신피로감과 생전처음 들어본 자가면역질환도 생겼습니다. 항상 건강하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면역이 약해지니까 이젠 모든 병에 취약한 사람이 되어 버린 거예요.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숨을 못 쉬겠는 거였습니다. 마치 물속에 빠져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워서 바로 서 있기조차 힘들어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낸 날도 많았습니다.      

병원의 여러 과를 다니며 검사를 받았지만 특별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어요. 이리 저리 수소문해서 용하다는 곳을  찾아다니며 피를 뽑기도 하고, 약초에, 침에, 민간요법까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차도는 없이 오히려 다른 병에 감염되기도 했고 매일 진통제를 먹다보니 간도 안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절망스러웠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이 어지럽고 답답한 느낌이 끝날 수 있다면 죽어도 좋겠다는 거였습니다. 웰다잉과 장례에 대한 강의를 찾아다니며 듣게 되었고, 사후세계에 대한 책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성당에 찾아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건강코디네이터가 될 생각을 하셨나요?

그렇게 3년 쯤 지나고 있을 즈음에 다시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시간의 일은 아니어도 규칙적인 출근일도 해 낼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사회적 약자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면 더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건강 코디네이터에 지원을 했습니다. 건강코디네이터는 경도 인지장애나 초기 치매를 갖게 된 어르신들을 위해서 인지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보람 있는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치매 어르신을 위한 인지교육 성과에 대해서 큰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건강코디네이터가 되어서 깨닫게 된 것은 무엇이었나요?

우선 건강코디네이터가 되어서 가장 놀란 것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거였습니다. 부모님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그 이상으로 정성을 쏟는 선생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의 활동 사연이 너무 찡하고 감동적이어서 뭉클할 때가 자주 있어요.      

인지교육도 예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건강코디네이터가 지속적으로 찾아가니 선생님이자 친구가 되고, 자식이 되고, 어르신의 사연을 귀 기울여 들어드리는 상담사 역할도 하게 되니 인지교육 그 이상이지요. 우리 센터의 한 어르신은 평생 문맹인 것이 부끄러워 숨기고 미루고 미루다 이제라도 한글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건강코디와 한글공부를 시작한 분도 계세요. 인지장애 어르신의 한글 배우기,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그래도 평생의 한이 풀리는 일이니 무척 행복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인지교육이 아니라 행복교육이라고 이름을 바꿔도 될 거 같아요.       

   

선생님이 어떻게 수업을 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수업을 맞춤형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하고 싶어 하시는 활동을 위주로 하는 거지요. 올해 만난 어르신은 종이접기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 원 없이 하게 해 드리고 있어요. 어르신의 정원을 접어보고, 가끔 놀러오는 들고양이도 접고, 행복했던 기억을 접고 상상을 접고 어르신의 인생을 접다보니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특별한 종이접기가 되더라고요. 원래도 잘 하셨는데 실력이 점점 늘어서 우리 치매안심 센터에 작품을 기증하려는 꿈도 갖게 되었습니다. 89세 어르신 솜씨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이세요. 꼭 자랑할 수 있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사실 처음에는 막막했어요. 종이접기를 제대로 해 봤던 것도 아니고, 12월까지 하려면 못해도 70개는 접어야 하는데 그렇게 까지 끌고 가긴 힘들 거 같았거든요. 그런데 생각을 좀 바꿔봤어요. 색종이로 사물을 접지 말고 스토리를 접자는 쪽으로요. 스토리가 주인공이 되고 보니 색종이는 좀 못 접어도 되고, 과정을 좀 생략해도 되고 아예 내 맘대로 접어도 되는 거예요. 그것이 오히려 재미있고 풍성한 결과를 가지고 오더라고요. 그 때부터는 걱정을 내려놓았습니다. 접을 것들은 항상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납니다.  

         

열심히 하시니 선생님께도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을 거 같아요.

그러면서 저에게도 좋은 변화가 일어났답니다. 새로운 생각을 하고 아이디어를 짜내려 궁리를 하다보니 활력이 생기고 더불어 새로운 도전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언젠가는  어르신  미술교육자료집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계절 감각이 떨어지고 특히 코로나로 바깥활동에 힘든 어르신들이 원색의 색종이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세상과 만날 수 있게 해 드리면 정말 좋을 거 같아요. 과일과 채소, 꽃과 나무, 명절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계절별로 구분하면 계절 지남력 유지에 도움이 되는 자료집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50플러스 센터는 선생님께 어떤 곳인가요?

저에게 50플러스는 자존감을 키워주는 곳입니다.

자존감을 높이고 싶으면 당장 누구에게든 작은 호의라도 베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어르신이 제가 열심히 준비한 종이접기를 배우시면서 웃으시고 좋아하실 때면 정말 뿌듯하지요. 고맙다는 말씀도 무척 많이 해주시니 저의 자존감은 마구 커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50플러스는 이미 중요한 역할과 시간이 끝난 듯해서 풀이 죽어있는 5060이라는 풀밭에 물을 시원하게 뿌려주고 있는 것 같아요. 새삼스레 저 자신이 특별해지는 느낌입니다.           


프란체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떠올리신다고요?

한 사람을 죽이면 인류 전체를 죽인 것이고 한 사람을 구하면  인류 전부를 구한 것이니 당장 한 명이라도 도우라고 하신 프란체스코 교황님의 말씀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떠올리는 것입니다. 공을 들여 수업을 준비하지만 제가 만나는 어르신은 소수라는 것에 좀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그러나 한 명의 어르신이 이 세상 전체 어르신이라고 생각하면 아쉬운 생각보단 나중에 크게 열매 맺을 때가 오겠구나 믿게 됩니다.

          

마무리 질문으로 가장 추구하는 인생키워드는 무엇일까요?

저의 인생키워드는 선한 행복입니다. 치매를 피해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치매에 안 걸리는 것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듯이 건강해도, 혹은 그렇지 않아도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행복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처럼 저절로 들어 왔다 나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노력하고 연습해야만 얻어지는 것이라고 해요. 연습까지 하라니 참 고된 일 처럼 들리지만 누구나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공평하고 희망적인 말이기도 합니다.      

좌절했던 시간이 있었지만 건강코디네이터 일을 하면서 다시금 행복연습을 시작한 거 같아요. 스스로를 잘 돌보고 발전시키면서, 미력하나마 주변에도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사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치 있는 삶이자, 행복입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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