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는 처음이다. 유명한 사람 누가 산다더라, 연예인 누가 또 그곳으로 이사를 했다더라 등의 이야기로 친숙한 곳, 가깝지만 선뜻 발길이 닿지 않던 곳이었는데 센트럴 파크 근처에 숙소를 잡고 아들과 함께 2박 3일을 보내기로 했다.
호텔은 센트럴 파크를 바라보고 우뚝 서 있다. 우리 방은 파크뷰는 아니어도 제법 큰 소파가 있어 아들은 화장대에서, 나는 소파에서 각자의 노트북을 사용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등이 문제였다. 화장대와 TV 위의 등이 소등되지 않아서 수리공 아저씨가 전구를 금방 빼 주고 갔는데 입구 쪽 2개의 등이 또 소등되지 않았다. 그 2개의 등도 마저 빼 버렸다. 그렇게 해도 방이그다지어둡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구를 빼면서 바닥에 떨어진 흙먼지를 닦고 있으려니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아들은 불평하지 말자고 하는데 애초에 몰랐으면 모를까 하자 있는 방을 청소하면서쓰는 것이억울해지려는 때에 다행히 히터도 작동되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호텔 측의 하자로 방을 바꿀 경우에는 규정 상 업그레이드를 하는데 특별히 2단계를 했다며 직원이 안내한 방은 거실까지 있는 넓고 화려한 방이었다. 게다가 파크 뷰까지! 불편을 순순히 감래 하려 했던 것에 대한 보상이었나 이렇게 호화스러운 호텔방은 난생처음이다. 제비 다리 고쳐주고 복 받은 흥부라도 된 것만 같다.
센트럴 파크로 아침 산책을 나갔다. 마치 유원지처럼 술렁거리던 일요일 저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지역 주민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앳된 연인들의 모습도 가끔 눈에 들어온다. 바닷물을 끌어다가 만든 호수 주변에는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들이 둘러져 있어 여기가외국인가 싶을 정도로 이국적인 정취가 풍긴다. 상쾌한 바람과 포근한 햇살이 좋아서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어 보았다.
마스크에 집착하는 것을 마스크 분리불안증이라고 한다던데 사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숨 막히고 아프고 불편하던 마스크가 이젠 필수템이 되었다. 얼굴 절반만 가렸는데도 마음은 그 이상으로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누추한 행색, 좋지 않은 안색, 무자비한 세월의 흔적 등을 감춰주니 이제는 고맙기까지 하다. 겨우 얼굴 반을 가린 불완전한 형태이긴 해도 익명이 주는 자유로움은 포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한적한 센트럴 파크를 거닐고 있으니 마스크 집착이 싹 달아나 버렸다.
송도는 젊다. 건물도 젊고 사람들도 젊은 편인 듯 보인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만큼 나이 든 사람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트리플 스트리트에서 형형색색의 우산이 만들어 준 그늘 아래에 앉아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음악을 듣고 있자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커피를 마시면서 아들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눴다. 지난 이야기, 지금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
아들과 둘이서 여행을 간다고 하니까 아들만 있는 친정 언니가 ‘아들하고 여행 가면 진짜 재미없는데 어떡하냐’고 심각하게 걱정을 해 주었었다.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고 맛집을 찾아 신나게 돌아다니는 딸과의 여행에 비하면 정적이긴 하다. 그렇다고 걱정했던 만큼 재미없지도 심심하지도 않다. 작년 코시국에 결혼한 아들이 일부러 휴가를 내줬으니 그것 만으로도 고맙다. 그래도 노트북을 가지고 오긴 정말 잘했다. 그리고 각오를 하고 오기도 했다.
호텔방에서 내려다보는 송도의 야경은 무척 아름답다. 그런데 생경스럽게도 붉은색 보름달이 홀연히 떠 있다. 완벽히 아름답게만 보이던 이 도시에 갑자기 무슨 재앙이라도 내리나 두려워 급히 검색을 해보니 인천지역에 붉은 달이 이미 예보되어 있었다. 레드문은 개기월식으로 달이 지구 그림자에 가려져서 태양빛이 차단되는 중에 가장 긴 파장인 붉은빛만이 달에 전달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