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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게 Nov 03. 2022

1년짜리 성적표

친정오빠에게 신장을 공여한 지 6년째이다. 수술 후 1년 동안은 자주 검사를 받았었는데 그 이후에는 1년에 한 번씩만 검사를 받는다. 2년마다는 영상 촬영을 하는데 올해가 초음파가 포함된 검사를 받는 해이다. 1년 동안 나의 신장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하루에 모든 검사를 받기에는 촉박할 것 같아서 이틀 전에 미리 혈액과 소변 검사는 받아놓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당일 오전에는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이제 예약시간까지 3시간 정도가 남았으니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카모마일을 한 잔 마시면 될 것이다.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충무김밥을 곁들인 매운 라면 세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매콤하고 기름진 라면에 계속 시선이 갔다. 그러다 김밥과 떡볶이를 주문했다. 검사가 끝났으니 일탈을 해 보고도 싶지만 김밥에 떡볶이를 추가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신장공여자도 환자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수술 후에야 알게 되었다. 짜게 먹거나 과식을 한 다음 날에는 반지가 잘 들어가지 않는다. 반지는 이제 몸이 얼마나 부었는지 확인하는 도구가 되었다. 짜고 기름진 것, 자극적인 것을 피하고 나름 철저하게 식단관리를 하고 있는데 혈압이 올라가고 백혈구 수치는 떨어지고 더불어 신장 사구체 여과율도 계속 나빠지기만 했다. 급기야 수술 3년 차에는 “이렇게 관리를 못하면  10년 안에 투석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경고를 들었었다. 그날 집에 와서 수술 후 처음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노력해도 안 되는데 식단이 무슨 소용이 있나. 이제 나는 식단 안 한다.   

  

신장공여자만을 위한 밴드가 있다. 최소한 수술 예정일이라도 정해져 있어야 가입할 수 있다. 내가 만약 수술 전에 공여자들의 삶을 미리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신장공여를 쉽게 결심할 수 있었을까. 한쪽 신장만 가지고 살아도 괜찮다는 것은 예외가 훨씬 많은 통설일 뿐이다.     


이제는 혈액형을 비롯해서 유전적으로 일치하지 않아도 거부반응만 없다면 누구나 공여자가 될 수 있다. 40세 이하, 사구체 여과율 80 이상이라는 기준이 있으나 그것도 형식적일 뿐, 싸인만 하면 다 통과가 된다. 나 역시도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했다. 수술동의서에 이미 싸인을 했는데 수술 하루 전에야 비로소 ‘10년 후에 투석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마지막 싸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의사 면담을 비롯해서 코디네이터 선생님, 복지사 선생님과도 면담이 진행되었었지만 그동안 공여자의 수술 후 건강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문제없다’였다. 그런데 바늘까지 꼽아 놓고 나서 10년 후 투석을 감수한다는 것에 싸인을 하라니 적잖이 당황스러웠었다. 가끔 신장공여자가 수술 전에 바늘을 뽑고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더니 아마도 10년 후 투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가 아닐까 싶다.  

    

신장공여자 밴드에서 개인적으로 질문을 해 온 여자분이 있었다. 그녀는 몇 달 전에 재혼을 했고 곧 남편에게 신장을 공여할 예정이었다. 내가 올린 암울한 글들을 읽고 나니 너무 걱정이 된다며 속마음을 터놓기 시작했다. 그녀와의 대화를 정리해 보면 남편 분은 신장이식 수술을 염두에 두고 결혼을 했던 것 같았다. 이혼해 버릴까도 고민했었는데 뒤늦게 만난 착한 남편과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결심을 했다고 한다.    

 

엄마에게 신장을 공여한 여성분이 있다. 그녀는 오랫동안 투석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 아기를 낳은 후에는 신장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둘째까지 낳아서 몇 년 키워놓고 나니 이제 약속을 지켜야 할 시간이 되었다. 적합여부 검사를 받으러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녀는 ‘제발 거부반응 나와라’ 수없이 되뇌었다고 한다. 흔쾌히 주고자 했으나 의학적으로 공여 불가 판정을 받고 싶은 것, 이것이 공여자 대부분의 가장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사구체 여과율이 상승했습니다. 식단관리를 잘하셨군요.”  

   

올해도 당연히 하락을 했겠거니 예상하고 있다가 뜻밖의 성적표를 받았다. 항상 똑같이 먹고살았는데 결과가 좋으니 1년 동안 식단관리를 잘 한 사람이 되었다. 노력과는 그다지 비례하지 않는 것이 내가 받는 성적표의 맹점이기는 해도 라면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계속 버텨보자 다짐을 한다.


내년에 받을 1년짜리 성적표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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