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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게 Dec 28. 2021

브런치와의 허니문

딸아이가 브런치를 알려준 것이 지난달이었다.

무슨 일을 시작하려면 돌다리를 두드려보다 못해 부숴버려 돌다리 자체를 아예 없애 버리곤 했던 내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날로 브런치에 가입을 했다.

시니어 인지교육 활동가를 하며 쓴 수기와 인터뷰를 위해서 써 놓았던 글로 신청을 했는데

단번에 합격통지를 받았다. 딸아이에게 가장 먼저 낭보를 전했다.

“나 이런 사람이야”     


딸아이가 나를 보는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서려있다.

건강하던 엄마가 5년 전 삼촌한테

신장이식을 해 준 이후

속수무책으로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으니...      


신장공여 후, 석 달 정도가 지나갈 무렵부터 찾아온 건강에 이상 신호.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절대적 피곤함, 강직, 두통, 빈혈, 길을 가다가 주저앉기도 했고 몸 여기저기에 쉽게 멍이 들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찾아왔었던 호흡곤란과 두통이 차츰 더 길게 이어지면서

의지로도, 정신력으로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괴로움이 있어 보이나 아직은 병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이것이 의사의 소견이었다.

병은 아니라는데 병자인 사람,

병이 아니라니 치료약도 없어 고칠 수도 없는 사람,

예정은 되어 있으나 아직은 병자는 아닌

늘 아픈 사람,

그것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

의사가 내려준 처방은 진통제였고

때때로 정신과 약이었다.    

  

딸아이는 내가 무엇이라도 좀 해보길 바랬다.

그것이 몸을 위한 것이든, 마음을 위한 것이든 지푸라기라도 되겠다 싶으면 알려주고 독려했다.

그러다가 브런치까지 알려주게 된 거였다.


가끔 카페에 가서 글을 쓴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자주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스마트 폰으로 검색을 하며

그곳에서의 시간을 즐겼다.

카페에 가기도 조심스러운 요즘에 브런치라는 좋은 구실이 생겨났으니 다시 그곳으로 향한다.

글을 쓰기보단 브런치에 실린 글 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이토록 다양한 글을 카페에 앉아 읽으려면

여러 권의 책을 무겁게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노동이 수반되어야 할 테지만

폰 하나로 해결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해박한 글에 감탄을 하고,

지난날 내가 썼던 일기장인가 싶을 정도로 공감되다 못해 감정몰입이 되는 글도 만난다.

수채화같이 맑은 글에 힐링이 된다.      


올해는 내 삶에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아들이 결혼을 했고, 딸이 독립을 했고,

16년간 키웠던 강아지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집 근처 단풍나무 아래에 묻혔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무궁무진한 이야기보따리를 들고 브런치라는 친구가 찾아왔다.

당분간 새 친구와의 허니문에 흠뻑 빠져 볼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내 안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에게 어서 세상과 만나보라고

토닥여 줄 것만 같다.

그래서 2022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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