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잘못을 떠나 정리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가는 사람 막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 그렇게
틈이 생기니 그 틈을 나의 결에 맞는 새로운 사람들로 채우게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한번 좋은 사람은 끝까지 좋은 사람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좋은 게 좋은 게 아니었다. 그때 죽고 못살던 사람들은 지금 내 주변에 없다. 역시는 역시다. 짧은 시간 내에 섣불리 빠르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인연들은 쉬이 간다. 오히려 그때도 무덤덤하게 조용히 내 지인으로만 걸쳐진 느낌이던 사람들은 지금도 내 옆에 있다. 그들은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났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죽고 못 살 정도로 강한 스파크가 튀어 오르진 않는다. 그들은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 중에 들어서 영양가 없을 이야기는 차라리 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강한 전율을 느낄 때가 있다. 바로 나에게 매우 빠르고 친숙하게 다가오던 패스트푸드 같은 검은 인간관계가 정리될 때이다. 이런 패스트푸드들은 공통된 특징이 있다.
첫째, 나를 향한 평균이상의 과도한 칭찬으로부터 시작된다.
둘째,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호소하는 눈빛을 보인다. (대부분 동정심을 유발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많다.)
셋째, 자존감이 낮은 편이다. (나는 ~도 못하고, ~도 못하고... but, 나중에 가면 세상 자기 혼자 산다.)
내가 심리유형탐색에 심취하게 된 것도, 어느 정도 이런 사람들 덕분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세상을 혼자 살 수는 없고, 그런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있는 거니까.
요즘 학교수업을 나가면, 아이들이 주의사항이 될 때가 적지 않다.
"그냥요."
"몰라요."
"하기 싫어요."
"끝까지 안 할 건데요."
심지어는,
".........."
이런 아이들에게, 나는 수업에 유의미한 단 한 마디라도 해달라며 구걸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나는 오히려 반항하고 짓궂은 아이들이 더 낫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아이들의 수업태도를 지적하며 나를 위로해 주던 담당선생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다.
오히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내고 표현하는 아이들이 더 낫다고.. 선생님은 처음엔 의아해하셨지만, 곧 내 뜻을 알아차리셨다. 그리고 이처럼 잔뜩 거슬리게 말하던 아이들이 나와 2회 차 3회 차 만나면서 점점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 그게 또 내 값진 보람이다.
어쩌면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씁쓸함이 그 관계에서 최악으로 가지 않을 알아차림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멈출 수 있음에, 또 다른 계획을 하게 하심에 하늘에 감사하게 될 순간이 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