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내가 얼마나 크게 자랄지는 모르더라도, 나의 뿌리는 얼마나 깊이 뻗어있을지 모른다고. 그렇게 흔들리지 않고 우뚝 서 있는, 꽤 강단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진짜 나무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보니, 물의 기운이 맞다.
물이 나무에 물을 주고 물길을 터주어 나무가 썩지 않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한 이불을 덮고, 가까운 듯 먼 사이. 나는 물, 남편은 나무다.
남편은 나무 중에서도 소나무라고 한다. 애국가에서도 나오듯이, 소나무는 일단 강한 기상으로 표현되는데, 딱 그게 맞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기 신념을 깨버릴 사람이 아니다. 겉으론 소나무 잎처럼 까칠해 보인다.
하지만 소나무가 주는 이로운 장점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문제는 나무는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하는데, 스스로 하지는 못한다.
그 누군가가 바로 ‘나’이어야 하는 것이다. 나무는 스스로 부러지지는 못하지만, 아주 강한 압력에 의해 부러질 수도 베어질 수도, 또한 타버릴 수도 있다. 나는 남편 소나무가 소실되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물인 내가 부드럽게 감싸는 편이다.
물의 기운인 나는 나무든 돌이든 흙이든 무엇이든지 조화롭게 포용한다.
그래서인지 누구와도 잘 지내려하고 나와 달라서 좀 불편할지라도 대부분 수용한다.
딱 하나. 불과 같은 성질을 가진 사람과는 그렇지 못하다. 불은 모든 것을 태운다. 어디를 가든 지 불과 같은 1%의 사람이 꼭 있다. 불처럼 화를 내고 파장을 일으키고, 결국 집어삼키려 한다. 그럴 때 바로 필요한 것이 물이다.
물은 정말 모든 것을 남기지 않고 다 쓸어버린다. 쓰나미가 대표적인 예이다.
나도 몇 번의 같은 불이익이 반복되어 정말 화가 날 땐 과감히 대처한다. 상대가 굴복하게 만들거나, 아예 인연을 끊는다.
요즘 같아선 좀 더 후자 쪽으로 간다. 말도 안 통하는 사람을 개선 시키겠다고 굳이 내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 않고, 아끼게 된다.
홍수나 쓰나미 같은 물과 관련된 재난이 지나고 나면, 늘 그만한 고통이 따라오게 마련이니까.
정말 아닌 것에 힘들게 참을 필요는 없다고 알고 있다.
웃으며 요청하기와 같은 상황에 비폭력적으로 대응하는 방법도 우리는 이미 많은 사회경험과 매체를 통해서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어쩌면 대처를 하기 위해 생각해내야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 것도 나의 에너지를 써야하는 것이기에, 상황별로 판단을 잘 해보는 것, 내가 할 다음 행동의 결과를 잠시 잠깐 떠올려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할까, 하지 말까 고민이 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대부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 일어난 일은 예전에 내가 했던 생각이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