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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탈출기 5

나만 잘하게 되는 것은 없다.

by 피오나요

내가 일하게 된 첫 번째 직장은 다름 아닌 감자탕집이었다.

방수 앞치마를 써도 나의 옷은 항상 다 젓어 있었고, 뼈를 삶을 때는 땀이 육수인지 육수가 땀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평일엔 뼈를 40kg, 주말 80kg 삶아야 하는 걸 , 그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일하는 내내 깨달았고 , 뼈 삶은 일이 내 첫 직장에 걸림돌이 될 걸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은 물어보지도 않고 평일에 80kg 뼈를 물에 다 닮 궈 버리고는, 당당하게 월급에서 까달라고 말한 적도 있었는데.. 어처구니 없어하는 사장의 표정이 아직도 생각난다. ㅎㅎ

다행히 손님한테 넉넉히 주며 그걸 다 소진했지만, 힘들게 뼈를 삶은 나의 수고는 둘째 치고, 손해 봐가며 다 소진한 사장에게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손님이 사정없이 들어오는 날엔 경험 없는 나는 더 티가 났다.


애벌설거지 통에 잔반과 물이 그릇과 함께 가득 차 있는 것이었다.

“쓰레기물에서 하는 설거지는, 설거지가 아니에요 ”그 말이 나를 너무 나 창피하게 했다.

집이라면 상상도 못 할 짓이지만, 설거지가 밀려 있으니 맘이 너무 급했던 것이었다.

“설거지는 나중에 다 할 수 있어요. 실장님! 메뉴만 정신 차리고 잘 빼주세요 “

뭐라도 한 가지만 잘하자. 제발…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떻게든 하루는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내가 잘하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도 들었지만…

가게에 완전히 적응한 5개월쯤 사장이 나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실장님 제가 요즘은 뒷정리하러 다시 가게에 안 와요.

주방 마감까지 완벽하게 하셔서 이젠 걱정 하나두 안 하네요”

‘아니 이건 또 무슨 말인지..??‘

“제가 삼 개월까지 실장님 퇴근하시면, 다시 마감 청소하고 내일 거 준비해 놓고 가곤 했어요”

“초짜에게 그런거 까지 바라면 제가 미친거지요“

ㅎㅎ

어쩐지, 나는 그때 나름대로 빨리 적응했구나 자부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오면, 오늘 쓸 세제며 용품이며 재료들이 가득 채워져 있어서, 필요한 사람이 채워 놨나 보다 하고 대충 넘어갔었다.

‘아!! 그랬구나.. 사장은 역시 사장 그릇이 있네 ‘

여태 한소리도 안 하고, 지켜봐 준 어린 사장 한태 또한 수 배우게 되었다.


나이에, 성별에, 누구 건 간에 상관없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끝없이 배워야 한다는 걸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또한, 뭐든 혼자 잘하는 일은 없음을 알게 했다.

혼자 하는 일에도 시간이란 투자가 있어야 하듯이, 여럿이 하는 일에는 믿고 기다리고, 서로 간에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아야 발전할 수 있음을, 이론이 아닌 실전으로 터득하고 있었다.

막연히 누군가 채워 놓고 간 재료들을 보며, 나 또한내일 영업을 위해 준비하며 채워 놓곤 했었는데, 그건 단지 내일을 위한 편안함이 아닌, 서로를 배려해 주는 따뜻한 마음에서 였다.

사람은 저마다 선함을 갖고 있지만, 나의 선함과 상대방의 선함이, 함께 공전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사회인 것이다.


손님 없이, 급여만 받아가는 한가로움이, 지겨움으로 바뀌었고, 바쁘게 정신없이 손님을 치른 후의 매출 상승은 내가 주인 된듯한 기쁨이 되었다.

드디어 실장 이란 직함에 완벽하게 적응하게 된 것이다.

손님이 밀고 들어와도 끄떡없이 바쁘게 움직였고,

주방과 가게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손님이며 주위 사람까지 들여다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가게 일에 익숙해 질수록 나의 체력과 몸은 여기저기 윽! 소리를 내고 있었다.


처음엔 손가락 마디마디의 고통이 심했다면, 갈수록고질병인 목 디스크와 무릎 통증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그냥 다 잘라버리고 싶다’

안 그래도 몇 년 전에 병원에서

“아직은 젊으신데 운동 꾸준히 해 보시고 어찌 됐던 아프면 수술해야겠죠 ” 말을 들은 터라.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었는지, 익숙해지니 생기는 요령인 건지, 꾀가 늘어 가고 있는 내가 참 싫다.


그런 날이면 집에 들어가서도 똑같이 꾀를 부린다.

집안일은 손하나 안 대고, 어머님께 집안일을 다 넘겨 버린 것이다.

그냥 뭐든 모른 척해버린다.

꾀가 늘었다기보다 뻔뻔해졌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어머니랑 함께 해야 할 힘 팔리는 가사노동을 나는 가장 그럴싸한 핑계로 그만두게 된 것이다.

어쩌겠는가 내 몸이 더 이상은 무리인 것를ㅠㅠ

그러나 여든 넘은 어머니에게 뭐 얼마나 오래 통하겠나!

또 다른 변수는 남편과 고등학생 딸아이였다.

아예 집밥에는 입도 안 대고 배달음식에, 남편은 남편대로 퇴근 후 술약속이 잦아졌고, 딸아이는 나의 퇴근 여부를 수시로 물어보며 불만을 터트린 것이다.

“집에 일찍 들어오기가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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