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탈출기 4
그런 어머니를 뒤로 하고 나는 무작정 일하러 나왔다.
또 일을 하고자 생각했을 때 나에게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희한하게도 배우 최강희 씨다.
그녀가 나에겐 신선한 충격과 함께, 속물적 생각을 정비하는 계기를 줬다.
언젠가 공백기 때 고깃집이며, 여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됐다.
뭐 개인적으로 배우로서의 그녀의 이력이나 연기를 눈 여겨본 적이 없어서.. 팬이고, 아니고는 상관없이 그녀의 경험이 대단히 근사하게 느껴졌다.
아마 그녀가 좀 더, 소위 연예인들이 할법한 일들을 했으면 무심코 지나 쳤을 거다.
저렇게 얼굴 알려진 사람도 노동의 신성함을 알고 힐링을 느낀 다는데.. 나는 도대체 뭔데 이런 일, 저런 일, 할 일, 못 할 일 따지고 있을까?
솔직히 직업의 귀천을 나누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 아닌 성찰을 하게 됐다.
그래서 뭐가 됐던 해보자.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도 된 것이다.
그러니 최강희 씨가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친 것인가?
아니었음 또 따지고, 재고 그대로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막상 나가니 직업의 귀천은 모든 사람에게 존재했고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일의 강도에 비해 낮은 임금체계에 사람 구하기 쉽지 않구나! 현타도 와서 나도 사실 내적 갈등을 했었다.
이럴 거면 분식집이나 김밥집을 차릴걸 하고 수시로 생각했다.
‘분식집은 쉬운 터냐!!‘
‘이럴 줄 알았음 진즉에 할걸 ‘ㅠㅠ
‘지금라도 해볼까?’
안 한 것이 천만다행인걸 나중에 나는 알게 됐다.
여하튼 지금은 다양한 김밥 집이 많아졌지만, 불과 15년 전엔 천 원짜리 천국만 있을 때.
아이 유치원에서 생일이나 소풍 가는 날 선생님들께“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
“어머니표 김밥이요 , 너무 맛있는데 힘드시죠? 근데 부담은 갖지 마세요 ” 어쩌란 건지.. ㅠㅠ.
또 직장 다니던 지인은
“언니가 김밥집 차리면 퇴직금 미리 정산해서 제가 투자할게요 ”
할 정도로 맛있어했고, 한 번에 50줄은 거뜬히 쌌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니는 동안 김밥집에 대한 미련을 뒤로하고요식업 초보 실장의 명함을 얻게 되었다.
나는 그나마 아는 지인의 가게였고, 사장님이 나이도 젊은 아가씨였기 때문에
‘주부 구력이 얼마인데.. 아니 뭐, 내가 지한테 뭐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어?‘
사실 이런 오만 방자한 생각으로 가게에 발을 들여놨다.
하지만 나의 참패를 인정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걸리지 않았다.
누군가 나이는 인생의 경험이라 했던가?
“에잇!! 줘도 안 갖는다 그딴 경험“
자기 분야에서 쌓인 시간이 경험인 것이다.
주부 연차 25년이면 뭐 할 거냐, 요식업 경험 초자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30대 젊은 사장도 요식업 경험 10년 차인 베테랑 경력자이니 내가 그녀를 도울일은 하나도 없었다.
첫날부터 나는 패만 되지 말자 하고 다짐했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곤 없는 동네에, 작은 가게 주방에서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 준 적 없는 내 모습과 맞닥 뜨렸다.
검은색 작업복과, 방수 앞치마, 파란색 니트럴 장갑에 화장도 안 한 질끈 묶은 머리, 나는 그 순간 주방실장이었다. 유니폼 효과라 해야 할지.. 일하는 순간만큼은 다른 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주방일에만 몰두했다.
여유도 뭘 알 때나 부리는 것이지, 초짜에겐 사치다.
그런 내가 요식업 가게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알 수 없는 내 영혼의 자유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는 것 하나 없을 때 나오는 무모한 열정과, 아는 사람 하나 없을 때 느끼는 또 다른 호기심과 바쁘게 움직이고 난 후의 카타르시스를 동반한 성취감.
이런 것들이 맞물려서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자유함을 느꼈다.
한겨울, 주방에서 바쁘게 보낸 후 바람을 쐴 때는 아이스방에 다녀온다고 한다.
나가 바람을 쐬면 몸은 한증막에서 땀을 한가득 뺀 후 시원한 아이스 방에 들어와 있는 상태와 비슷해진다. 정신은 마치 등산을 하고 정상에 올랐을 때와 흡사 비슷한 거 같다.
여름은 진짜 대책이 없다. 날씨 자체가 사우나 인걸주방은 어떻겠는가? 그냥 에어컨 밑에서 땀을 식히거나, 찌르르하며 머리까지 띵하게 빙수 원샷!
가끔은 그때의 희열이 생각날 때도 있다.
“실장님 촌년병 걸린 거 같아요. 빨리 아이스 방에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