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어린이가 뽑은 '싫은 왕?'

나도 대통령이 되고 싶다

by 바람비행기 윤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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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통령도 아니고, 왕도 아니지만...
어린이의 눈으로 보면, 역사 속 왕들은 왜 이리 나쁜 아저씨들 같을까?”
이 질문에서 시작된 장난스러운 역사 탐험!
자, 지금부터 왕들의 억울한(?) 해명을 들어보자.

1위는 역시 연산군이다. 왜 싫을까? 공부는 안 하고, 백성을 괴롭히며 궁궐을 놀이터로 바꾼 악명 높은 폭군! 왕의 변론을 들어 보면, “나도 어릴 땐 착했어요! 근데 어머니를 죽인 신하들을 보며, 믿을 놈 하나 없다는 걸 알았죠. 복수심이 날 집어삼켰어요. 놀이터는 그냥 스트레스 푸는 공간이었을 뿐입니다.”

2위는 의외로 광해군이다. 그를 왜 왜 싫어할까? 동생 죽이고 엄마 울리고, 혼자 살자고 외세에 굽신굽신?

좀 잘못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다. 그는 외세에 굽신거린 적이 없다. 다만, 인조반정 후 사료를 다시 썼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의 변론에 의하면 “나라가 두 개 사이에 낀 샌드위치였단 말입니다! 살려면 실리 외교밖에 없었어요. 그런데도 나를 몰아내? 세상 너무 정 없어요.”

3위는 태종 이방원이다. 형도 죽이고 동생도 죽이고, 아빠도 무서워했던 왕이라서 싫단다. 왕의 변론은 어떨까? “나라 세우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세요? 정치는 피보다 차가운 법. 내가 안 잡았으면 조선은 벌써 무너졌을 거라니까요!”

4위는 숙종이다. 여자 문제로 정치하는 왕. 왔다 갔다, 희빈이다, 중전이다. 머리 아파요!

왕의 변론에 의하면, “이건 전략이었다고요! 노·소당 싸움이 심해서, 사랑을 핑계 삼아 양쪽을 조율했죠.
드라마만 보지 말고 정사도 좀 보세요!”

5위는 역시 인조다. 인조는 반란 일으켜 왕 된 주제에, 외세에 절하고 백성은 버린 왕이다. 그러나 인조는 변명한다. “그땐 방법이 없었어요! 활 쏘고 칼 드는 시대는 끝났다고요. 내가 절 안 했으면 백성 수천이 죽었을걸요?”

6위는 헌종이다. 왜 싫을까? 아무 존재감 없음. 심심함의 아이콘이다. 그러나 왕은 변론했다.

“저도 좀 눈에 띄고 싶었어요. 그런데 할머니(순원왕후)한테 너무 찍혀서. 사실 저, 무과 시험도 치고 싶었는데요.”

7위는 예종이다. 공부는 싫고 놀기만 좋아했던 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종이 말했다.

“공부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나도 약간 활동형 인간이었달까? 근데 너무 일찍 죽어서… 기회도 못 받았어요!”

8위는 명종이다. 엄마(문정왕후)가 다 해 먹었다. 왕이 왕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명종은 “나도 하고 싶었어요! 근데 엄마가 다 하겠대요. 어떡하겠어요, 엄마가 무서웠어요.”

9위는 경종이다. 건강도 안 좋고, 정치는 누나랑 영조랑 다툼으로 얼룩졌다?

그러나, 경종은 "내가 성격이 유약했어요. 인정합니다. 근데, 좀 쉬게도 해줘야죠. 조선도 휴식이 필요했어요!”

10위는 철종이다. 평생 감자만 먹다 갑자기 왕이 되었다. 그나마 바보 같기도 하고, 아무 일도 안 한 것 같다. 그러나, 철종은 억울했다. “감자도 맛있어요. 내가 평민 출신이라서 차별받은 거지, 실은 백성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왕이었다고요!”

왕이라고 다 잘난 사람은 아니에요. 어떤 이는 욕심 때문에, 어떤 이는 너무 힘이 없어서, 어떤 이는 그냥 운이 나빠서, ‘싫은 왕’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린이들도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누가 알겠어요? 오늘 이 리스트를 읽은 아이들 중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나는 착한 왕이 될 거예요. 아니면 대통령?”


-2-

하지만, 순위가 무척 이해 안 가는 사항도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능력하고 포악한 왕으로 지명하는 '선조'가 빠졌으며, 조카인 단종을 폐위시키고 등장한 '세조'도 빠졌다.

더구나 광해군의 경우에는 역사적인 평가가 다르다.

그의 능력을 무시하고 오로지 서자라는 이유로 멸시했던 선조와 아울러 그 광해군의 왕위를 찬탈하는 반정을 일으킨 인조가 순위가 아래라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인조 때문에 위 백성들은 청에 유린되고 죽임을 당했는데 말이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아들인 소현세자까지 무참히 살해한 왕이다.


광해군은 조선의 15대 왕이다. 하지만 그는 즉위조차 쉽게 허락받지 못했다.
형인 임해군은 성질이 더러워 민심을 잃었고, 막내 영창대군은 너무 어려서 시국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조선은 말한다.
“광해야, 너라도 나와라!”

그래서 왕이 되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는 계모 인목대비를 유폐시키고,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역사의 저편으로 쫓겨났다. “왕이란 자리가 피를 본다 해도 지켜야 한다”며 실용을 택한 그에게 조선은 ‘패륜 왕’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하지만 가만 보자. 그 시대 왕권은 권력자가 아니라 불판 위의 생고기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타거나, 뒤집히거나, 먹힌다. 광해군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칼을 쥐었지만, 그 칼은 가족에게 돌아갔고, 후세의 평가에서는 심장을 찔렀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폐허였다. 그런 와중에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조선은 불려 다니기 일쑤였다.
명에 붙자니 후금이 화를 내고, 후금에 붙자니 조선 사대주의가 들고일어난다.

광해군은 택했다.
"싸우지 말고, 중립을 지키자."

그 결과? 조선은 전쟁에서 잠시 숨을 돌렸지만, 사대주의자들 눈엔 '배신자'가 되어버렸다.

오늘날이었다면? 평화상 후보감이다.


광해군은 대동법을 확대 시행했다. 백성들은 더 이상 곡식 대신 쌀 몇 만 내면 세금이 끝났다.
오늘날로 치면 “현금 납부” 가능하게 해 준 셈이다. 디지털 조선의 서막 같은 일이었다.

또한, 허준이 펴낸 『동의보감』을 국가 차원에서 배포했다.
지금으로 치면 "보건복지부장관이 건강보험 확대 정책을 밀어붙인 꼴."이다.

이렇게 보면, 그는 정책왕, 행정킹이었다.


광해군은 조선 왕들 중 유일하게 실록이 '중단'된 왕이다. 정사에선 폐위된 왕은 실록조차 못 갖는다.
그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조선의 흑역사’였던 셈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말한다.
“그때 그 형, 좀 억울했어.”

정통성이라는 드라마보다 실용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으려 했던 그였다.
결국, 시대가 그를 따라가지 못했던 건 아닐까?

광해군은 실패한 왕일까? 아니면 시대를 너무 빨리 살아버린, 슬픈 예언자일까?

역사는 단죄했지만, 시간은 그를 다시 부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생각한다.

“조선의 정치가 그를 몰아냈지만, 조선의 미래는 그가 더 잘 알았던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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