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골목 끝의 진실

귀신탐정 권두칠

by 바람비행기 윤기경

권두칠은 골목 어귀에 멈춰 섰다. 가로등 불빛이 잦아들고, 낡은 벽 사이로 바람이 낑낑거렸다.
“바람이 아니라... 숨소리군.”

그의 손에는 오래된 수첩 한 권.
며칠 전 도난 사건으로 신고된 골동품 중, ‘지수의 음악상자’가 사라진 장소가 바로 이 근처였다.

“여기가 마지막 목격된 곳이라지. 이 기묘한 냄새… 혈청 섞인 잉크 냄새군.”

권두칠은 벽에 손을 대고 한 발짝 내디뎠다.
찌그덕! 벽이 움직였다.
낡은 담장 뒤엔 폐가로 연결된 비밀 통로가 드러났다.

그 순간이었다.

“누구야!”
손전등 불빛이 두칠의 얼굴을 가른다.
경찰이 아닌, 누군가가 미리 와 있었다. 그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침착한 태도였다.

“이상하죠, 탐정님. 이렇게 늦은 시간에 폐가에 오시다니.”
중절모를 쓴 남자는 낮게 웃으며 음악상자를 꺼내 보였다.

“당신이 지수의 손자?”
두칠은 지그시 눈을 찡그렸다.

“그래요. 그건 제 할머니의 유일한 유산이었죠. 그런데 왜 경찰에 신고했을까요? 가족인데도 가져오면 안 되는 건가요?”

그 순간 두칠의 시선이 음악상자 아래, 번들거리는 피자국으로 옮겨졌다.
“문제는 그 음악상자가 아니라… 그걸 훔치다 죽은 사람이 있다는 거야.”

짧은 정적이었다.

“죽은 사람은, 바로 그 남자지. 이 집의 원래 주인. 그가 남긴 ‘비밀 장부’가 이 음악상자 안에 들어 있었거든.”

찰칵!
두칠의 지팡이 손잡이에서 작은 녹음기가 튀어나왔다.

“이 정도면 증거로 충분하겠지.”

남자는 눈을 부릅떴다. 순간 두칠이 지팡이로 땅을 쿵! 하고 내리치자, 바닥의 판자가 부서지며 먼지가 날렸다. 이때, 뒤편에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가까이 다가왔다.

“이젠 말할 때지. 할머니가 남긴 건 음악이 아니라, 죄책감이었다는 걸.”


그 남자는 침묵 속에 천천히 음악상자를 내려놓았다.
작은 금속 톱니가 돌아가며 '고요한 밤'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권두칠은 조용히 그 앞에 앉았다.
"멜로디가 조금 이상하지 않나?"
남자는 의아한 눈으로 두칠을 바라보았다.

"반복되는 5번째 음... 그건 신호다. 암호야."
두칠은 음악상자의 뚜껑 안쪽을 손톱으로 툭 쳤다. 딸깍— 얇은 이중 덮개가 열렸다.

그 안엔 손바닥만 한 종이쪽지 한 장.
붉은 잉크로 쓰인 단어가 있었다.

"두칠에게 맡긴다."

"뭐야... 이게..."

남자의 입술이 떨렸다.
"할머니가... 이미 모든 걸 알고 계셨단 말인가요?"
"그래. 네가 상자를 훔치기 전부터. 네가 왜 이 상자를 노릴지 다 알고 있었지."

두칠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널 믿었으니까."

그 말에, 남자의 눈에서 뭔가 무너져내리는 듯했다. 불빛 아래, 뺨 위로 눈물 한 줄기가 흘렀다.

그때 경찰차가 폐가 앞에 도착하고, 불빛이 안쪽을 비췄다.

“이제 결정하자. 스스로 나가서 진실을 말할지, 아니면 이 폐가와 함께 사라질지.”

그는 한동안 침묵하다, 음악상자를 두칠에게 넘겼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할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게 도둑질이 될 줄은 몰랐어요.”

권두칠은 아무 말 없이 음악상자를 닫았다.

“그럼, 네가 직접 말해라. 진실은, 음악처럼 울려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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