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고종의 재반결

나도 대통향이 되고 싶다.

by 바람비행기 윤기경

고종이 대통령이었으면 어땠을까?

새로운 관점에서 그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열거해 보고자 한다.


"고종은 무능한 왕이었다?"

역사 속 평가는 대부분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이 말속에는 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편견이 공존한다.
망국의 군주라는 오명 뒤에는, 분명히 존재했던 몇 가지 의미 있는 시도들이 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시대를 읽으려 했던 노력.
그 노력을 모른 척 넘긴다면, 우리는 ‘역사’ 대신 ‘편견’을 말하게 된다.

고종이 가장 상징적인 정치적 결단을 내린 순간은 바로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한 사건이다. 이는 단순히 국호만 바뀐 사건이 아니었다.

조선이라는 사대(事大)의 틀을 벗어나려는 선언이었고, 조선이 자주국가임을 전 세계에 알리려는 외교적 전략이었다. 물론 실질적인 힘은 부족했고, ‘제국’이라는 이름이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채워지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선언은 당시로선 자주독립의 강한 메시지였으며, 국내 정치와 대외 외교의 방향 전환을 시도한 보기 드문 국면이었다.

1900년대 초 고종은 광무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나름의 근대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역사교과서에서는 한 줄로 지나가지만, 의외로 다음과 같은 성과들이 있다.


지계 발급(토지조사 사업): 혼란스러웠던 토지 소유권을 법제화하고, 지주·국가 간 관계를 조정하려 했다.
이는 근대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 작업이었다.

관료 제도 개편: 서구식 공무원 체제를 일부 도입해, 능력 중심의 관료 임명을 시도했다.

군제 개혁: 대한제국 군대를 양성하려 했으며, 근대식 무기와 훈련법을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교육과 산업 진흥: 상공학교 설립, 외국어 학교 운영, 광산 개발, 철도와 우편 제도 추진 등 근대적 인프라를 서서히 준비했다.


이 모든 것이 일본의 방해로 중도에 좌절되긴 했지만, 그 방향 자체는 잘못되지 않았다.
다만 너무 늦었고, 너무 혼자였다.

1907년, 고종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특사로 파견했다.
이는 국제 사회에 일본의 침탈을 고발하려는 고종의 마지막 외교적 몸부림이었다.

현실적으론 실패했다. 일본의 방해로 회의 참석조차 불허되었고, 고종은 이 일로 강제 퇴위당했다.

그러나 상징적으로는 남았다.
"나라가 힘을 잃어도, 외교의 희망은 남는다”는 신념. 이 무모한 특사 파견은 후일 독립운동의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초석이 되었다.

고종은 결코 이상적인 군주는 아니었다.
그러나 완벽하게 무능한 존재도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 체면과 상징, 외교의 수사학에 능했다.
그리고 비록 그 모든 것이 실현되지 못했더라도, 한 나라가 ‘근대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처음 발을 뗀 사람이었다.

그를 성군이라 부를 수는 없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왕’으로 몰아세우는 건 역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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