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예술을 하고 있나
인생은 한 점의 그림이다.
손에 들린 것이 몽당연필이던가
그럼에도 나의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들게 한 것은 내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나의 르네상스는 온다
14세기 이탈리아의 화가들은
손에 들린 것이 장인의 붓이던가
그럼에도 저승길에 올라서야
씁쓸한 위로의 노잣돈을 받는가
나의 르네상스는 온다.
우리는 왜 인생을 살아갈까?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왜 지금 당장 자살하지 않을까?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의 목적은 태어난 뒤에 부여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생의 본질을 찾으려 몸부림치지 않으면 죄인취급을 받는 것일까? 왜 우리는 바라지 않은 삶을 받아 가장 큰 고통인 죽음을 택해야 원래 상태인 무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정말로 삶은 한낱 끔찍한 저주의 불과한 것일까?
인생은 개개인의 예술이다. 우리의 부모가 우리에게 쥐어준 것이 짧디 짧은 몽당연필이 되었던, 값비싼 만년필이 되었건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만의 예술을 할 권리를 가지고 그림을 그릴 의무를 지닌다. 어떤 사람들은 몽당연필만으로 명작을 그리기도 한다. 사실 도구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값비싼 도구로 그리는 것이 예술로써의 가치가 높다는 뜻이라면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고 있는 모든 명작이라 취급받는 그림들이 그저 부자들의 선긋기 놀이로 전락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인생에 있어서 평등한 이유이다. 예술에 있어서 도구는 그저 수단일 뿐, 그 속에 담긴 사상과 의도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독 특이한 구조를 가진 것 같다. 모두에게 똑같은 '입시미술'을 강요한다. 어떤 눈에 보기 좋은 상업예술을 정해두고 그 그림을 똑같이 따라 그리도록 세뇌시키고 훈련받도록 한다. 그러다 보니 손에 쥔 도구가 몽당연필이나 갈라진 붓이라면 '비싼 예술'을 그려낼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손에 비싼 펜이 쥐어진 사람들은 부모가 밑그림까지 대신 그려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당신은 수 백 수 천장의 모작들에게 얼마의 값어치를 매길 것인가? 나는 그런 식의 예술은 작품으로써의 가치가 0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건 애초부터 예술이라 분류할 수도 없다. 우리는 누군가가 상업적 목적의 하위예술들을 아무리 비싼 펜으로 아무리 똑같이 구현하여도 그것을 예술이라 여기지 않는다. 우리가 한국사회에 살다 보면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또 신기한 점은, 자기 그림엔 관심이 없고 다른 사람의 작품을 평가하는 이른바 '평론가'들이 이 나라엔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하나의 틀을 가지고 모든 작품에 적용하며 화실 전체를 경직되고 얼어붙게 만든다. 상업예술을 어설프게 따라 그리다 이도저도 아니게 된 쓰레기를 등 뒤에 숨기고, 진정한 예술을 하는 사람을 찾아가 이건 틀에 맞지 않는다는 둥, 기법이 잘못됐다는 둥 아직 그려지지 않은 명작을 그저 헛된 이상과 낭만으로 만들어 조롱하고 멸시한다.
우리나라는 르네상스를 맞을 수 없다. 명작을 남긴 이들은 모두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를 만족하였다. 하나는 자신의 삶을 불태워 세기의 명작을 남기는 경우이다. 그들은 살아생전 예술로써의 가치를 인정받지 않는다. 예술가는 죽어서야 그 예술세계를 이해받고 위로받는다. 저승길 노잣돈으로 유람선 하나 장만하는 꼴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림을 그리는 모든 과정을 자신의 주관대로 '즐기며' 그리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저승길 노잣돈은 셀프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보았을 때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작품에 만족하고 자신 있게 화실을 박차고 나올 수 있지 않는가? 다른 화가들에게 열정과 영감을 불어넣는 일일 것이다.
나는 두 번째 조건으로써의 명작을 남기고 싶다. 예술의 가치가 작품이 아닌 작품을 그리는 과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매력적이지 않은가? 사실 첫 번째 조건을 만족시킬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내 인생을 불태워 그릴만큼 훌륭한 위인이 될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기의 명작을 남기고 싶다는 욕구가 어린 화가로써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한 소망을 담아낸 것이 이 시이다.
어쨌든 우리나라가 르네상스를 맞을 수 없는 이유는 그 누구도 이러한 조건들을 제시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잘못된 것이고, 인생의 값어치를 떨어뜨리는 길이라고 세뇌시킨다. 그러니 모두 완벽한 그림을 모방하며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그림이 무엇인지 자기들끼리 점수를 매기고 줄 세우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말했듯이, 우리는 그림을 그릴 '의무'를 지닌다. 당신이 도화지를 찢고 화실 밖으로 나가버린다면, 평론가들의 평론보다 더욱더 폭력적인 방법으로 화실을 경직시키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손에 펜이 쥐어진 이상, 당신은 작품을 완성시켜야 한다. 우리가 자살을 하면 안 되는 이유이다.
종이는 단 한 장인데, 누군가의 그림을 모방하는 데에 쓸모없이 시간을 허비할 것인가. 평론가들의 평론에 휘둘려 당신의 하나뿐인 작품을 좁디좁은 틀에 맞출 것인가. 우리는 모방적이고 상업적인 예술로써의 가치가 없는 '소유'를 버리고, '존재'로써의 가치를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예술은 기준을 정해두고 줄 세우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