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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에리히프롬과 나의 생각

사랑을 소유하려는 현대사회의 사람들

by kmj

사랑의 행위 역시 소유양식으로 말해지는가 존재양식으로 말해지는가에 따라서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 우리는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면 사랑은 아마도 하나의 사물, 획득하고 소유할 수 있는 어떤 실체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랑"이라는 사물은 없다. "사랑"이란 추상적 개념으로서, 여신이라던가 어떤 이질적인 존재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껏 그것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사랑의 행위뿐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생산적인 활동이다. 사랑이란 - 그 대상이 인간이든 나무이든 그림이든 어떤 이념이든 간에 -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배려하고 알고자 하며, 그에게 몰입하고 그 존재를 입증하며 그를 보고 즐거워하는 모든 것을 내포한다. 그것은 그(그녀 또는 그것)을 소생시키며 생동감을 증대시킨다. 사랑은 소생과 생장을 낳는 과정이다.

​ 그러나 소유양식으로 체험되는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구속하고 가두며 지배함을 의미한다. 이런 종류의 사랑은 생명감을 불어 일으키기는커녕 목을 조여서 마비시키고 질식시켜서 죽이는 행위이다.

​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상 사랑의 부재를 은폐하려는 내용의 오용된 표현이기 일쑤이다.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전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다. 지나간 2000년 서구역사에서 볼 수 있는, 육체적 학대에서 정신적 학대에 이르기까지, 무관심과 순전한 소유욕에서 사디즘에 이르기까지 어린이들에게 가한 부모의 잔혹한 행위에 대한 보고들이 어찌나 충격적인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통례라기보다는 예외라고 여겨질 지경이다.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사랑을 바탕으로 결혼했든 전통적 방식으로 사회적 인습에 따라서 결혼했든 간에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부는 예외인 듯이 보인다. 사회적인 편의, 전통, 경제적 타산, 자식에 대한 공유의 관심, 상호 간의 의존, 또는 두려움이나 증오가 의식적으로 "사랑"으로 체험된다.

​ - 마침내 그중 한 사람이나 둘 다, 서로 사랑하고 있지 않으며 과거에도 사랑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까지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이런 면에서 어느 부분은 진보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이 훨씬 현실적이고 냉철해져서, 많은 이들이 이미 사랑을 전제로 한 성적매력을 주고받지 않으며, 친절하기는 해도 거리를 둔 공동관계를 사랑과 맞먹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 새로운 관점은 한결 정직한 면을 지니고 있고 - 파트너를 더 자주 바꾸는 현상을 낳았다. 그렇다고 그런 관점이 사랑하는 상대를 더 많이 만나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이 신세대 남녀들도 아마 옛 부부만큼이나 서로를 별로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사랑을 소유할 수 있으리라는 그릇된 기대감이 결국 사랑을 정지시켰다는 사실이다. 지금 그들은 그 수준에서 서로를 조율하며 서로 사랑하는 대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 이를테면 돈, 사회적 지위, 가정, 지식을 공유한다.





​ 요새 '환승연애', '나는 솔로'와 같은 TV-프로그램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을 한다. 사람들은 티브이화면 속 매력적인 이성을 보며 "역시 자기 관리의 시대야. 자기를 가꾸고 어필하는 것이 참 바람직해 보이는 군."라고 생각하거나 "저 사람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가치 없는 이성이네. 자기 관리 좀 해야겠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연애시장"이라는 말을 들을 때 알 수 없는 괴기함과 역겨움을 체험한다.


모두가 자신을 시장 속 상품으로 취급하며 자기 자신을 더 나은 상품으로 만드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스스로 상품이 되기를 자처하며 자신을 시장 속에 어필하고 마케팅을 한다. SNS가 자신이란 상품을 홍보할 수 있는 '디지털 명함'으로 여겨지는 이유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사랑을 소유적 관점으로 바라보려는 경향성이 강한 것 같다. 이를 테면 유명한 배우와 가수가 연애를 한다는 기사를 보면, 사람들은 그 둘의 관계 속 존재적 가치들을 취급조차 하지 않고 그저 둘 중 누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고 "연애시장"에서 더 우월한 상품인지 비교해 가며 그 사랑이 "합당한 거래"인지를 판가름한다.


사랑은 다른 사회적 관계들과는 달라야 한다. 손익을 따지면 안 된다는 말이다.


조금 과장된 표현을 쓰자면, 사랑에는 그 이유가 존재해선 안된다. "나는 당신이 ~라서 좋아, ~를 해줘서 좋아, ~를 가지고 있어서 좋아"라는 말을 하는 순간 당신은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그가 소유한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 사람이 변화하거나 더 이상 당신의 충분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는 상태가 될 때,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당신은 그를 소유하려 하면 안 된다. 꽃을 사랑한다면 당신이 해야 할 건 그 자리에서 꽃을 무참히 꺾어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는 것이 아닌, 물을 주고 관심을 가지며 그 꽃이 남은 여생을 당신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생명력을 간직한 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당신이 그런 노력을 받기 원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 당신이 나비를 잡고 싶으면, 더 좋고 값비싼 잠자리채를 사는 것이 아닌, 꽃밭을 더욱 예쁘게 가꾸어 나비가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그런데 흔히 말하는 "요즘 세대" 사람들은 값비싼 잠자리채에 잡힌 것이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것 마냥 채 속의 나비가 되어 소유당하는 것을 선망하고, 꿈꾸고, 질투한다. 혹은 그런 나비들을 보며 자신이 가진 잠자리채를 탓하며 더욱더 소유적 가치에 목매는 사람들이다.

또한 그중 가장 잘못된 것은 사랑 그 자체를 소유하려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 또래 아이들 중 대부분은 '사랑을 위한 사랑'을 하는 것 같다. 사랑에는 그 어떤 목적도 존재해선 안된다. 아마 '연애하고 싶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소유적 가치를 따져가며 자신이 '사랑'이라 부르는 기괴한 행위를 할만한 이성(희생양)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부류인 것일 것이다. 어떠한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존재를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혹은 사랑이란 행위를 실천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모든 기괴한 현상이 함축된 "연애시장"이라는 단어가 한 인간이 상품으로 취급되고 여기저기 거래되는 자본사회에 아직은 기여하지 않는 17세의 귀엔 역겹게 들리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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