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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자아가 뚜렷하지 않은 이유(1)

자아를 회피하는 사람들

by kmj

고등학교를 다니며 느낀점은 급격한 기술발전 이후에 태어난 세대인 내 또래 아이들의 대부분이 주변 환경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에 따라 자아의 색을 정하는 특성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나의 중학교 친구들은 모두 자아가 뚜렷하고 어릴적 부터 종교나 철학에 가깝게 지내 각자의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현상이 나에게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러한 '자아가 없는' 친구를 보며 어딘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자아가 인간이 성인이 되기 위한 필수 부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춘기의 존재의의가 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저 내가 한 사람을 깊이 알지 못한 상태로 성급한 판단을 내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 친구들과 친해지고 깊이 알아갈수록 내 의심에 확신이 생겼고 의문은 더 커져갔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찾아보았고, 이는 내 주변에만 국한되지 않고 현대사회 전반에 적용되는 의미있는 발견이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고립되는 것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끼고 고립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특징이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사회에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선 한국이라는 국가의 성장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은 전세계 국가중 가장 빠르게 성장한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분단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지금의 한국이 될 때까지의 빠른 경제성장 속에는 여러 부작용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공동체주의'성향이다. 개인보다 국가를 중요시하며 나라를 위해 한 몸 바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시절 덕분에 한국이 성장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들 이미 국가 전체에 퍼진 공동체 위주의 가치관은 전 국민이 서로를 평가하고 비교하게 만들었다. 이는 개인을 공동체로 부터 분리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가, 회사, 학교 뿐 아니라 성별, 나이, 정치사상 에서 까지도 개인을 조직 속에 투영하여 다른 조직들을 견제하고 자신의 조직을 지켜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sns라는 현실판 좀비바이러스는 이러한 강박을 촉진시키는 것에 일조한다. 모두가 자신의 일상을 빠짐없이 게시하며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서로에게 감시당하는 행위에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게한다. 그와 함께 딸려오는 무의식 중 수많은 비교와 자기혐오는 자기자신을 더욱 회피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이 악순환은 비교적 sns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젊은 세대들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원인불명의 우울감, 압박감,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의 원인 중 하나이다. 게다가 이런 현상을 이용하여 개인의 이득을 취하려는 수많은 집단의 수혜자들은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자아를 되찾으려하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핍박한다.


결론은 자기자신에게서 멀어질 수록 주변환경에 쉽게 휘둘린다는 것이다. 자살률이 끊임없이 증가하고 사회가 갈수록 살기 팍팍해지는 것은 단순히 우리나라의 저조한 경제성장률과 불안정한 세계정세뿐이 아니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자아가 약해질 수록 주변환경에 취약해지고, 이는 곧 자아가 약한사람끼리 뭉친다면 사람 한 명 한 명이 개개인의 색을 띄는게 아니라 집단의 색을 그대로 반사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유행하는 음식이나 옷은 꼭 입어야하고,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되어있어야 하며, 고립되어 혼자있는 시간일때면 왠지 모를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느껴 한 손에는 항상 스마트폰이 들려있어야 한다. 사실은, 내가 그랬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내가 그랬던 시절의 나는 고립될 수 밖에 없는 환경과 몇몇 좋은 친구들 덕분에 그러한 매너리즘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주변에 자아가 뚜렷한 사람이 있어 그들로부터 배우고 느낀 것들이 많다. 나는 운이 좋았기 때문에 나의 자아를 회복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기 때문에 (자아가 뚜렷한 사람이 주변에 존재하지 않는 경우) 이는 명백하게 해결해야될 현대인들의 숙제이다. 집단에 빠질수록 시야가 좁아지고 집단에서 빠져나오기 어렵게 만들며, 결국 불안정하고 희미한 자아를 안고 성인이 된 아이들은 병든 한국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주변환경에 괴롭힘 받으며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한다.



이제 학교들은 이상한 조별과제나 단체활동보단 오히려 명상이나 개인활동같은 자기자신을 되돌아보고 스스로를 마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한다. 또한 국민들은 고립에 익숙해져야 한다. 연결을 위한 연결은 아무런 의미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연결되어 있어야만 하는 사람은 연결되어 있으면 안된다. 이는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로, 연결을 위한 연애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자아를 죽이고 스스로를 부품화 시키는 국민들은 빠른 경제성장에는 도움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국가를 병들게 할 치명적인 악인이다.



고립과 고독에 익숙해지고 즐길 줄 안다면, 그 후로 폭발적인 자아의 성장이 가능해질 것이다. 자기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개인의 성장을 장려하는데 매우 좋은 방법이다. 하루 10분정도 명상을 하거나 혼자 있는 시간(전자기기 없이 고립된 상태)을 늘려가는 것이 그 과정의 첫 계단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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