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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섭 Nov 07. 2023

김수영 뇌 구조 읽기, 풀/해석 -김유섭

김수영 풀 해석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전문 -  

   

1.

 김수영의 “풀” 역시 처참한 한국 현대시 100년의 오독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풀”을 민초(民草)를 의미하는 민중 또는 자유 그리고 바람을 독재 또는 억압으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이는 시를 1차원적으로 읽어 해석한 오독이다. 시는 시인의 생각과 그 뇌 구조를 읽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시 읽기는 오독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풀”은 김수영이 1968년 5월 29일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수영은 “풀”을 완성하고 난 뒤, 6월 16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풀”은 김수영의 유고작이 되었다. 1968년 8월 『현대문학』, 9월 『창작과 비평』에 유고작으로 발표되었다.

     

  <1> 시의 전체적인 논리 구조는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풀이 눕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는 내용이다. 

 

 <2> 그 위에 얹혀있는 서정의 흐름은 “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로 표현되는 절망적인 현실이다.

 

 <3> 특징적인 언어 사용법과 단어

  *단어:

 “눕는다”

 “동풍”

 “드디어”

 “더”

 “다시”

 “웃는다”


 *문장: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 단어와 문장들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부사 “드디어”, 부사 “더”, 부사 “다시”가 왜 사용되었는지 명확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또한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라는 문장과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라는 문장은 더욱 세밀하게 김수영의 생각을 따라가며 뇌 구조를 읽어내듯 읽어야 한다. 

  그리고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는 마지막 문장은 세상을 향해 피를 토하는 듯한 김수영의 마지막 외침이다.   

   

2.

 “풀”의 특징적인 구성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풀과 바람의 대결을 반복해서 진술하고 있다. 그런데 그 대결은 언제나 처음에는 풀이 지는듯하지만, 결국 풀이 이긴다는 내용이다. 김수영이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풀”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명확한 대결에서 언제나 승자는 “풀”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것이 시인 김수영의 세계관이고 희망이라는 것도 읽을 수 있다.  

   

  <먼저 2연의 논리 구조를 살피고 해석에 들어가야 한다.> 

  2연의 논리 구조는 바람과 풀이 자연의 바람과 풀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즉 “바람보다 빨리 눕는 풀”은 없다. 그리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 역시 없다. 이것을 은유나 상징이라고 하는 해석은 표면적이고 1차원적인 해석이다. 

  자연에서 바람과 풀의 관계는 풀이 있고 바람이 불면 풀이 눕는다. 그리고 바람이 멈추면 풀이 원상복구 된다. 그런데 2연의 풀은 능동적이고 바람 역시 멈추지 않고 계속 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수영이 2연의 논리 구조로 말하는 것은 바람과 풀이 자연의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면서 동시에 자연의 바람과 풀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나올 수 있는 문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1연-  

   

 풀이 눕는 이유는 동풍에 나부껴서다. 앞서 풀과 바람이 자연의 풀과 바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동풍”이 무엇인지 알아야 “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동풍”은 사전적 의미가 ‘봄에 부는 바람’이다. 따라서 “풀”이 눕는 이유는 봄에 부는 바람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바람이 자연의 바람이 아니다. 바람의 사전적 의미에서 자연의 바람이 아닌 의미는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사회적인 현상, 유행이나 사건 등을 의미한다. 즉 ‘춤바람’, ‘부동산투기바람’ ‘선거바람’ 등등이다.

  따라서 “동풍” 즉 ‘봄에 부는 바람’은 김수영이 “풀”을 쓴 1968년 봄에 일어난 사회적 현상이나, 유행, 사건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1968년 봄에 일어난 충격적인 일은 박정희의 ‘3선개헌’이었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공화당 안에 박정희의 3선개헌을 반대하는 ‘국민복지연구회’라는 모임이 있었고 그것이 발각되어 해당 국회의원들이 1968년 5월 24일 제명되었다.(김수영의 “풀”이 그 5일 후인 1968년 5월 29일 완성되었다.) 

  그들의 제명으로 그동안 박정희가 부인해왔던 3선 개헌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음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3선 개헌은 민주주의를 짓밟고 말살하는 행위였다. 동시에 박정희의 영구집권으로 가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동풍”이 3선 개헌임을 알 수 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1연, 부분-


  “풀”이 눕는 이유는 비를 몰아오는 “동풍” 즉 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3선 개헌 때문이고 따라서 “풀”은 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리고 “눕는다”의 사전적 의미 중에 ‘사람이 병들어 눕다’가 문맥과 의미 흐름에 적합하다. 그래서 “풀이 눕는다”는 ‘민주주의가 병들어 눕는다’이다.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1연, 부분-


  “드디어”라는 부사를 쓴 이유는 박정희가 3선 개헌을 부인해왔지만, 다수의 국민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국민복지연구회 사건으로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 세상에 드러난 것을 보고 짐작했던 대로 “드디어” 박정희가 3선 개헌을 한다는 의미이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에서 “더”라는 부사를 쓴 이유는 김수영의 현실 판단이다. 앞서 박정희의 3선 개헌 추진으로 울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3선 개헌은 박정희 영구집권의 시작이라는 판단에 현실이 너무나도 암울하고 절망적이어서 더 울었다는 의미이다.

  “다시”라는 부사를 쓴 이유는 김수영의 시대 인식이다. “다시”의 사전적 의미 중에 ‘하다가 그친 것을 계속하여’ 의미이다. “다시”의 유사어인 ‘도로’의 의미이다.


  민주주의는 3선 개헌 추진으로 이미 병들어 누운 상태에서 박정희의 영구집권이라는 현실의 절망이 배가되어 더 울다가, ‘도로’ 병들어 누웠다는 의미이다. 이는 민주주의가 앞서 병들어 누웠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중단되었다가 즉 병이 나았다가 다시 병들어 누웠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앞서 병들어 누웠던 때는 이승만 독재를 의미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승만 독재에 병들어 누웠다가 일어나 회복되었는데 박정희의 3선 개헌으로 다시 병들어 눕는다는 것이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2연-  

   

  역시 민주주의는 병들어 눕는다. 그런데 1연의 “동풍”을 바람으로 바꿔 진술한다. 동풍은 바람에 속한다. 그래서 바람은 동풍보다 넓은 의미이다. 따라서 “바람”은 3선 개헌인 “동풍”보다 넓은 의미인 민주주의를 죽여 말살하려는 모든 행위와 세력을 의미한다.

  풀이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더 빨리 운다는 진술은, 민주주의는 어떤 상황에서도 능동적으로 움직여서 민주주의를 죽여 말살하려는 모든 행위와 세력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일어난다”의 의미를 살펴야 한다. ‘일어나다’의 사전적 의미 중에 ‘어떤 일이 생기다’가 문맥과 의미 흐름에 적합하다. 즉 전쟁이 일어나다. 지진이 일어나다. 눈사태가 일어나다. 등의 의미이다. 따라서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민주주의를 죽여 말살하려는 행위와 세력보다 먼저 어떤 일이 일어나 민주주의를 지키고 살려낸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혁명이다. 4.19와 같은 민중의 혁명을 의미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죽여 말살하려는 행위와 세력에게 죽어 말살당하기 전에 먼저 혁명이 일어나 민주주의를 지키고 살려낸다는 의미이다. 이는 김수영의 세계관이고 희망이기도 한 것이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3연- 

    

  김수영의 세계관과 희망은 3연에서도 이어진다. 현실은 절망적이고 민주주의는 병이 들어 눕는다며 반복해서 한탄한다. 그러면서 병든 민주주의의 증세를 세밀하게 알려준다. 

  박정희의 3선 개헌으로 시작된 절망적인 현실이 민주주의의 병을 더 깊게 해서 발목까지, 발밑까지 병들어 눕는다. 

  그러나 김수영은 자신의 세계관과 희망을 반복해서 진술한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먼저 일어나고”라는 진술로 어떤 상황에서도 민주주의를 죽여 말살하려는 행위와 세력보다 먼저 혁명으로 일어나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한다.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3연, 부분-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라는 진술로 역시 어떤 상황에서도 민주주의는 먼저 혁명으로 일어나 웃는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여기서 “웃는다”를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앞 행의 “울어도”와 대비되는 의미로 “웃는다”를 해석하면 1차원적이고 표면적인 해석이 된다. 

  이미 2연과 3연에서 두 번이나 혁명이 일어나 민주주의를 죽여 말살하려는 행위와 세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낸다고 했는데 세 번째는 혁명보다 더 강력한 의미와 상징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웃는다”의 사전적 의미 중에 ‘같잖게 여기어 경멸하다.’가 문맥과 의미 흐름에 적합하다. 즉 민주주의를 죽여 말살하려는 행위와 세력으로부터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그들에게 같잖게 여기는 경멸의 웃음을 보내준다는 것이다. ‘경멸의 웃음’은 김수영식 형벌일 것이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3연, 마지막 행-

  김수영이 마지막 행, 이 한 줄을 쓰기 위해 시 “풀”을 썼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향해 피를 토하듯 소리치는 외침이다. 민주주의를 죽여 말살하려는 행위와 세력 때문에 현실은 절망적이고 민주주의는 그 근본인 뿌리까지 병들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병들었던 민주주의가 그 근본인 뿌리까지 병들어 누웠다. 그러면서 시를 마무리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3. 

 앞서 김수영은 민주주의를 죽여 말살하려는 행위와 세력에 대항해서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경멸의 웃음을 형벌로 웃어 보내주어야 한다고 세 번이나 진술했었다. 

  그런 김수영이 판단하는 지금의 민주주의는 그 근원인 뿌리까지 병들어 누웠다. 여기서 더 시간이 가면 민주주의는 죽어 말살될 한계 지점에 와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그 근원까지 병들어 눕는 지금이 4.19와 같은 혁명이 일어나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때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즉 박정희가 3선 개헌을 시도하는 지금이 3.15부정 선거로 4.19혁명이 일어났듯이 혁명이 일어나야 할 때라고 김수영이 피를 토하듯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 이것이 김수영의 시 “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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