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쓰는 일본 미술관 여행기 3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삶의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한다고 한다.
길을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가 점점 명상이 되어갔다며 두 번째 길을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이처럼 개인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길이라는 점에서 나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유럽까지의 먼 거리와 다시 30일간의 고된 여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시코쿠의 88개의 사찰을 도는 오헨로 순례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짧게나마 순례의 의미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본인들은 이 순례길을 은퇴 후 과거를 돌아보고
극락정토를 발원하는 여정으로 여기는 의미있는 길이라고 했다.
나오시마에 갔을 때 민박집 주인에게 이 순례길에 대해 이야기하니,
“아니, 그 힘든 일을 왜 하려고 해요? 일본사람들은 그런거 안해요.” 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반응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부산 사람들이 여름에 해운대를 피하는 것과 비슷한 마음일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시코쿠에 온 김에 오헨로 순례길을 짧게라도 체험해보기로 했다.
오렌로 순례길은 9세기 일본 불교 진언종의 창시자 구카이 대사가 수행했던 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구카이는 일본 전역을 다니며 불교를 전파한 승려로
그가 돌았던 시코쿠 순례길을 수행과 깨달음의 장소로 여겨 많은 사람들이 따라 걷고 있다.
1,200km에 달하는 여정은 보통 60일정도 걸리며,
도쿠시마현의 첫번째 사찰인 료젠지(霊山寺)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마지막 사찰인 가가와현의 오쿠보지(大窪寺)에서 끝난다.
우리는 료젠지에서 고쿠라쿠지(極楽寺), 곤센지(金泉寺)까지의 약 5km 구간만 걸어보기로 했다.
이 구간은 3~4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다카마쓰역에서 우즈시오 특급을 타고 아와타노역에 도착한 후,
고토쿠선으로 환승해 반도역에 내려 10분 정도 걸으면 첫번째 절인 료젠지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순례자 복장인 하쿠이(흰 윗옷), 스게가사(삿갓), 그리고 순례 지팡이인 즈에를 살 수 있다.
순례길 기념 확인증을 받을 수 있는 수첩 노쿄초(納経帳)를 사서 세 사찰을 방문해서 도장을 받아야겠다.
곤센지에서 순례를 마치고 다시 고토쿠선을 타고 이케노타니역으로 가려고 한다.
역에서 10분정도 걸으면 마쓰우라 주조장이 있다.
이곳은 200년 역사를 자랑하며 나루토 도미를 대표하는 청주를 생산하는 곳이다.
양조장을 둘러보고 시음을 하며, 저녁에 마실 술 한 병을 사야겠다.
주조장 옆에는 후쿠스 간장공장이 있다.
1826년에 창업해 전통 제조법을 이어오고 있는 곳으로, 간장의 깊은 맛과 향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두 곳은 단순한 공장이 아니라 지역의 이야기를 품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도쿠시마의 명소로 조수간만의 차이로 만들어지는 나루토 해협의 소용돌이가 있다.
오나루토교 위에 해상 산책로에서 이 소용돌이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순례길을 걸으며 이미 충분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터라,
먼 거리를 이동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아마 저녁시간이 되기 전에 다카마쓰로 돌아가자는 것에 의견을 같이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