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쓰는 일본 미술관 여행기 4
여행이란 단순히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길 위에서 만나는 풍경과 순간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과정이다.
다카마쓰에서 유스하라초까지 5시간이 넘게 걸리는 만만치 않은 여정이지만,
창밖 풍경을 즐기며 느긋하게 떠날 생각이다.
렌터카로는 3시간이면 닿을 거리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이동 자체도 즐기기로 했다.
점심을 유스하라초에서 먹으려면 새벽 6시에 기차를 타야한다.
도산센 특급으로 고치현까지 약 3시간을 이동한 뒤, 스사키 유스하라선으로 갈아타면 1시간 남짓이 더 걸린다.
환승 시간과 여정을 고려하면 총 5시간 반 정도가 소요될 예정이다.
이번 여행은 미술관을 중심으로 계획했지만, 개성있는 책방이나 도서관들도 둘러보고 싶었다.
'구름 위의 도서관' 은 이름이 주는 매력에 반해 꼭 가고 싶었지만 교통이 여의치 않아 포기했던 곳이다.
그런데 검색 중에 유스하라초가 구마 겐코가 설계한 건축물이 여섯 곳이 모여 있는 산간 마을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마 겐코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신국립경기장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다.
그의 작품이 시코쿠의 작은 마을에 이렇게 많다니 무리해서라도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스하라초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찾아가고 싶은 곳은 '구름 위의 도서관'이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삼나무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구조는 숲속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한다.
삼나무 향이 은은히 퍼지는공간에서 책을 고르는 상상을 해본다.
시간조차 천천히 흐를 것만 같은 고요한 도서관에서의 독서는 특별한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구름 위의 갤러리'로 가려고 한다.
삼나무로 만들어진 쿠모노 우에노 호텔(雲の上のホテル)과 갤러리를 잇는 다리 형태의 구조물은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처럼 보인다고 한다.
갤러리는 일본 전통 목조 기술인 '도교(斗栱)'을 모티브로 설계되었으며,
숲속을 산책하듯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저녁에는 코모노 우에노 호텔 주변을 둘러볼 예정이다.
비행기 날개 같은 처마를 가진 코모노 우에노 호텔 본관은
반달 모양의 연못과 함께 지역의 계단식 논을 상징하는 독특한 건축물이다.
2024년 봄에 보수 공사가 완료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새로 단장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숙소는 유스하라초의 매력을 담은 독특한 건물인 '마르쉐 유스하라'로 정했다.
볏짚으로 덮힌 외벽이 눈길을 끄는 특산물 판매소와 호텔이 결합된 건축물이다.
전통적인 재료와 현대적인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며,
자연 속에 있는 것같은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다음 날 아침에는 마을을 돌아보며 구마 겐코의 또 다른 작품들을 탐험해 볼 생각이다.
목조 전통 극장인 '유스하라좌'는 쇼와23년(1948년)에 건설된
'이와하라공민관(梼原公民館)'을 복원한 건축물이다.
유스하자초의 건축가 오타니 히로가 공민관 보존 운동을 추진하며 쿠마 겐코를 초대했고,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구마 겐코는 유스하라초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유스하라좌' 복원 작업은 구마 겐코가 일본 전통 목구조 건축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계기가 되었다.
그의 대표작인 도쿄의 신국립경기장에서도 이러한 영향이 드러난다.
경기장의 구조물에 적용된 겹겹이 쌓인 처마 디자인은
일본 목구조의 아름다움을 현대 건축에 녹여낸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 받는다.
'유스하라좌'는 단순한 복원 프로젝트를 넘어
구마 겐코의 건축 철학에 깊은 영향을 끼친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일본의 소도시를 여행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작은 마을은 그곳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거리, 시간이 멈춘 듯 변하지 않은 풍경들,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오래된 기억들은 소도시만이 가진 매력이다.
유스하라초 역시 소도시의 이러한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 마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구마 겐코의 건축물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독창적인 디자인과 전통을 재해석한 건축가의 철학은
유스하라초를 단순한 소도시가 아닌,
일정을 무리해서라도 찾아와야 하는 특별한 마을로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