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쓰는 일본 미술관 여행기 5
다카마쓰로 돌아가기 전, 하루는 고치시에서 보내기로 했다.
고치시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다음 날 다카마쓰로 가는 도산선 특급열차의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다.
환승없이 한번에 가는 기차 시간을 미리 확인해 두어야 다음 날 일정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런 뒤 여유롭게 시내를 둘러볼 생각이다.
고치는 일본의 소도시 중에서도 독특한 전통과 문화를 간직한 곳으로, 특히 일요 시장이 유명하다.
이 시장은 1690년부터 300년 넘게 이어져 온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노천시장이다.
매주 일요일이면 고치성의 오테몬 정문에서 시작해서 1km이상 노천시장이 선다.
이 시장을 보기 위해 일부러 일정을 일요일로 맞췄다.
일요시장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시장의 끝자락에 있는 히로메시장에 다다르게 된다.
히로메시장은 고치현의 18개 양조장에서 생산된 다양한 사케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음식점과 노점이 한데 모있어 먹거리 여행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고치현은 일본에서 유일하게 도토리묵을 만들어 먹는 곳이라고 한다.
임진왜란때 포로로 잡혀온 조선인들이 만들어 먹었던 두부와 도토리묵이
시간이 흐르며 고치현의 음식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카시도후'라거나 '카시키리도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시장을 둘러보며, 먼 과거의 격동 속에서 비롯된 도토리 두부를 찾아봐야 겠다.
점심으로 어떤 음식을 고를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몇 가지를 사서 공용 테이블에서 먹어야겠다.
고치현의 독특한 전통 중 하니인 '오카쿠 문화'도 흥미롭다.
‘오캬쿠’는 일본어로 ‘손님’을 뜻하지만, 고치에서는 잔치나 모임을 의미한다.
친구나 친지를 초대해 푸짐하게 대접하며,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불러서 함께 먹고 마시며 어울리는 문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잔치는 고치 사람들의 활기찬 에너지와 환대를 잘 보여준다.
히로메 시장에서 점심을 먹다가 친구를 사귀게 될지도 모르겠다.
점심 식사를 히로메 시장에서 한 뒤에는,
노면 전차를 타고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고치현립미술관으로 갈 예정이다.
노면전차는일본 소도시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일본에서도 노면전차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고치에는 1904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노면전차가 여전히 도시를 누비고 있다.
‘토사덴’이라고 불리는 동서로 운영되는 노선과 남북으로 운영되는 노선이 십자로 교차하며,
이를 이용하면 고치 시내의 웬만한 유명한 관광지를 대부분 갈 수 있을 것 같다.
운이 좋으면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클래식한 전차를 타볼 수도 있다고 한다.
고치현립미술관은 약 1,200점이나 되는 마르크 샤갈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고치시 출신의 1세대 사진가 이시모토 야스히로의 특별전시실도 있다고 한다.
고치 전통 건축을 바탕으로 지어진 미술관은 연못과 화단으로 둘러쌓여있어 카페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일본의 산골 소도시에서 생각지도 않은 전시를 보게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미술관을 나와 마키노 도미타로 기념관에 갈 예정이다.
마키노 도미타로 기념관은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키노 도미타로 박사의 기념관이다.
고치시의 고다이산에 위치한 마키노 식물원 안에 있으며, 약 3,000종의 식물을 사계절 내내 볼 수 있다.
기념관은 건축가 나이토 히로시의 작품으로, 자연과 조화를 강조한 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식물원과 기념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창 너머의 푸른 식물들이 조화를 이루어
마치 자연 속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
고치현 여행의 또 다른 재미는 바로 료마 여권이다.
고치현 출신인 사마모토 료마는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혁신가이자 사무라이로,
고치시는 그를 기리기 위해 기념관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료마 여권은 JR고치역 남쪽 출구의 여행 안내소에서 발급받을 수 있으며,
고치현 내 관광지에서 스탬프를 모으면 여권의 색상이 단계적으로 바뀐다.
스탬프 3개를 모으면 파란 여권을, 6개를 모으면 빨간 여권을 받을 수 있다.
여권 소지자에게는 관광 시설 할인 혜택도 주어진다.
비록 2박 3일의 짦은 고치현 여행일정이지만, 빨간 여권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행을 기념할 작은 이벤트로도 좋고, 할인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니
고치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여권부터 발급받아야겠다.
덜컹거리는 전차의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 낯선 시장의 향기와 사람들, 그리고 식물원 산책까지,
고치현의 느긋한 여행은 이미 마음속에서 시작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