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랜드 투어(삼티아고) - 제2일: 로마(4)

성 베드로 대성당, 콜로세움

by 노태

성 베드로 대성당, 콜로세움


베르니니의 발다키노 작품에 이어, 가장 감명 깊었던 작품은 교황 알렉산데르 7세 작품입니다. 무덤 중앙 상단에는 기도하는 자세의 교황 알렉산데르 7세의 대리석 상이 있고, 피에타에서 본 것과 같이 그의 옷감의 주름과 자세에서 생동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켈란젤로보다 더 세밀하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베르니니 베드로성당 해골 조각-1.png


교황 아래에는 네 개의 상징적인 여성 인물이 있습니다. 이들은 4가지 덕목을 나타냅니다.

1. 자비(Caritas): 도움을 베푸는 사랑을 상징하며, 자녀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

2. 정의(Justice): 칼이나 저울 같은 법적인 상징물을 들고 있습니다.

3, 진리(Truth): 맨발로 서 있는 모습으로, 한쪽 발로 세속적인 왕관을 밟고 있습니다.

4. 신중(Prudence): 지혜로운 판단력을 상징하는 조각입니다.

베르니니 베드로성당 해골 조각-2.png


이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되었던 부분은 무덤 하단의 해골 조각입니다. 이 해골은 금박으로 칠해진 천을 들어 올리는 모습으로, 죽음의 불가피성과 인생의 덧없음(Memento Mori)을 상징합니다. 해골이 든 모래시계는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유한성을 나타내며, 인간의 죽음과 유한성을 상징하지만, 교황의 기도하는 모습과 천상의 덕목들은 신앙을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베르니니는 이 작품을 통해 죽음과 구원의 신비를 예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작품은 베르니니의 후기 작업 중 하나로, 그의 예술적 깊이와 신학적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뛰어난 사례로 이번 그랜드 투어에서 내게 르네상스 예술가로 누구보다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베르니니 베드로성당 해골 조각-3.png


베드로 광장부터 대성전까지 약 3시간을 천천히 살펴본 후에 베드로 성당 근처에 있는 젤라토 맛집에서 너무나 맛있는 젤라또를 먹어봅니다.

여행 기간 중 가장 맛있었는데, 쫀득한 식감과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약간 기다린 끝에 맛있는 젤라또를 먹게 되고, 1인 1일 1젤라또를 실현한 첫 날입니다.

여행 기간 중 가장 맛있었는데, 쫀득한 식감과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약간 기다린 끝에 맛있는 젤라또를 먹게 되고, 1인 1일 1젤라또를 실현한 첫 날입니다.

베드로 대성당 앞 젤라또.png


바티칸 박물관을 보지 못한 아쉬움은 뒤로 하고, 근처 가게에서 치약계의 에르메스라 통하는 마비스 치약 등이 있나 쇼핑하고, 토마스씨는 아들을 위한 AS 로마 유니폼 한 벌을 샀습니다. 반갑지만은 않은 비가 추적추적 내려, 베드로 성당 근처에 해산물 버거 집을 찾아갑니다. 원래는 성 안젤로 성당을 가려고 했으나 해가 저물고 있고 개인당 입장료가 15 유로인데다가 걸어서 1키로가 넘는 거리여서 그냥 저녁을 먼저 먹고 테르미니로 가서 쇼핑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거기서 물, 선물용 마비스 치약 등을 사고 숙소로 돌아오기로 결정합니다. 해산물 햄버거 집은 기대만큼 뛰어난 맛은 아니었으나, 나름 맛있게 식사하고 테르미니역으로 향합니다. 지하철로 이동해 코나드라고 하는 슈퍼마켓에서 생수와 맥주, 스파클링 와인 한 병, 마비스 치약, 각자 선물할 것들을 사고 샐러드와 각종 식료품을 사서 돌아옵니다.

엄청나게 피곤했지만, 이를 무릅쓰고 회의를 거쳐 콜로세움 야경을 보러 가기로 결정합니다. 걸어서 약 30분 거리로 총 1시간 반 정도 소요됨을 감내하기로 결정합니다. 다들 피곤하면서도 그랜드 투어의 첫 날을 로마를 상징하는 콜로세움 야경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던 마음은 모두 하나였습니다.


콜로세움-1.png

콜로세움(Colosseum)은 고대 로마의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로, 원형극장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로마 제국의 권력과 기술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공식 이름은 플라비우스 원형극장(Amphitheatrum Flavium)입니다.

서기 70년경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명령으로 착공되어, 그의 아들 티투스에 의해 서기 80년에 완공되었습니다. 후에 도미티아누스가 추가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검투사 경기, 야생동물 사냥, 모의 해전 등 대중을 위한 오락 행사 개최할 목적으로 지어졌는데, 이는 당시 정치적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습니다.

이름의 유래: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근처에 있었던 네로 황제의 거대한 청동상(Colossus)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네요.

직경 약 189m x 156m, 높이 약 50m로, 최대 약 5만~8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고 타원형으로 설계되어 관객들이 중심 무대를 어느 방향에서도 잘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내구성을 위해 콘크리트와 벽돌을 주로 사용하고, 외관에는 석회암과 대리석을 배치했습니다. 당시 기술로 콘크리트를 이미 사용했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3층의 아치형 구조로 각 층은 도리스식(1층), 이오니아식(2층), 코린트식(3층) 기둥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아치 구조는 무게를 분산시켜 건축물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총 80개의 출입구와 효율적인 통로 설계로, 관객들이 빠르게 입장하고 퇴장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훼손된 콜로세움의 모양은 성 베드로 대성당과 다른 건축물의 건설을 위해 콜로세움에서 많은 대리석을 이용해 지었기 때문이라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네요.

콜로세움 바로 옆에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있습니다. 서기 315년, 콘스탄티누스가 서기 312년에 벌어진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로마의 황제 막센티우스 상대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는데

로마 제국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콘스탄티누스가 승리한 후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용인하고 후원하게 되는 계기(313년 밀라노 칙령)가 되었습니다.

콜로세움-2.png
개선문.png


콜로세움 바로 옆에 있는 포로 로마노까지 함께 야경을 구경할 수 있어서 피곤함을 무릅쓰고 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며 오늘 보고 느꼈던 여러 재밌는 일들과 작품들을 논하면서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 행복하고 가뿐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하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다들 피곤함에 절어 10시 30분쯤 잠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차로 인해 오후 2시에 깨서 4시까지 뒤척이다가 다음 날 다시 7시 반부터 일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피곤함은 우리의 그랜드 투어를 절대로 결단코 멈추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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