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나뿐인걸까
아니면
설국열차. 옥자 가 현실이 될 날이 점점 가까워지는걸까
파프리카나 오이 방울토마토
다 비싸졌다. 조금씩 꾸준히 오르고 있다. 상대적으로 인스턴트 식품들은
가성비가 좋다. 저렴하다. 편하다. 더 맛있다...
어째서 많은 인건비와 가공시간 등이 들어갔는데도 인스턴트는 점점 더 저렴해지고
그저 자연에서 나는 야채와 채소는 더 비싸지는걸까?
생각해보니
공장은 계속 계속 돌리면 하루에도 수천 수만개를 만들지만
채소 야채는 흔하고 널린 것 같아도
나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 개월에서 수 년 동안을 키워져서 만들어진다. 하나하나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쳤던 채소들..이 새삼스럽게 사랑스럽다.
자연파괴는 이미 한계점에 다다랐다.
돈을 벌면 조금이라도 농지를 사놓는 것이 좋겠다.
공장을 믿을 수가 없다.
여건이 된다면, 신선한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
편리함과 저렴한 가격과 짭쪼롬한 맛에 빠져 요즘 가공식품을 자주 먹으면서, 설국열차의 꼬리칸에 타고 있을 가까운 미래가 상상이 되어 오랜만에 글을 쓴다.
요리를 하는 것은 대단한 노동이다.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하고, 뒷 정리까지. 삼 시 세끼를 “제대로” 챙겨먹기만 해도 하루는 금방 갈 것.
그런 의미에서 가정 주부라는 직업은 참 분업분담 이론적으로는 이상적이다. 한 사람이 요리와 가사일을 도맡아 정성으로 돌보고 다른 사람이 경제활동을 하는 것. 그런데 가사 노동의 가치가 평가저하되고 만큼의 노력에 대한 인정을 해주지 않으니 현대에 들어 이 2인 1조 체제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사람 수대로 나눠서 하든, 도맡아 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이렇게 시간에 쫒겨 살아야할 이유가 뭔가 하는거다. 잘 먹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뭐길래 요리하고 먹고 정리하는 시간을 아끼려고 허겁지겁 가공식품을 먹냐는 거다.
스스로를 위해 좀 천천히 살았으면 좋겠다.
도마도 꺼내고 야채도 천천히 씼고.
밥 하자마자 냉동 시킬 생각부터 하지 않고.
우리는 좀 더 힘을 빼고 일상의 행복을 느껴야한다.
기성세대들은 요즘 청년들이 노오력을 안하고...욜로 하려한다고, 소확행 따위에 매달리며, 고작 프리터족으로 사는 것에 만족해한다며 열정이 없음을 비판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원래 그 전 세대가 부족한 것을 메꾸고 싶어하는 것이 새로운 세대다.
새로운 세대는 자신들이 경험했던 세상에서 가장 부족해 보이는 것들을 채우려는 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자유다. 그들이 그것을 원하게 된 것은 애초에 어른들이 만들어 던져준 사회에 자유가 너무나 부족했던 탓이다. 보수적인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공무원이 되려고 매진하는 청년들이 많은 이유가 단지 확실하게 워라벨이 지켜져 업무 외 시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 공공기관 밖에 없어서라니. 그런데 왜 자유를 원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밖에 없다. 자유가 없어서 자유를 원하는데 왜 자유를 원하냐고 하시면...
그들이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데에는 참고 버티고 미래를 위해서 산 어른들의 모습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은 탓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사회가 괴기하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자유에 대한 갈망은 비혼과 비출산으로도 표현된다. 혼인 건수 저하는 본인들이 직. 간접 경험한 가정 생활이 그닥 행복하지 않아서 지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출산률 저하는 면적대비 과잉인구인 대한민국에서 지나친 경쟁에 시달리는 것이 종족번식의 본능을 포기할만큼 심각한 스트레스라는 것을 증명한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워 보이면 절대로 따라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게 우리 인간이 아닌가...? 기성세대는 더 이상 강요하지 말고 좋은 롤모델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작은 것에 만족하는 것은 더이상 소박한 것이 아니다. 먼 미래에 잡힐듯 말듯한 부와 명예가 욕심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삶의 중요도를 ‘지금’에 두겠다는 결심이다. 그것은 큰 용기다.
하루를 살아도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속도로 가는 것이 맞다. 남들이 저기로 가니까 남들이 달리니까....(하 그럼 난 그냥 죽을래.^^)
삶의 의미는 내가 나일 수 있음에서 생겨나는 것 아니야? 내가 어떤 삶을 모방해서 연기하며 살아간다면 나의 삶의 의미는 뭐야? 나의 정신과 영혼과 마음이 아니어도 되는거라면 굳이 ‘내’가 이 세상을 귀찮게 살아가야 할 필요도 없잖아?
물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다만 어디 두고보자, 는 눈초리로 팔짱 끼며 내내 한심해 하다가 작은 슬럼프라도 겪으면 너 내가 그럴 줄 알았다하며 비웃지 말자. 본인의 인생도 아니며 평생 책임져 줄 것은 더더욱 아니면서 한 사람의 소신을 평가절하하지 말자. 인생은 백년동안의 마라톤이지 우리가 경마장 말인 것도 아닌데 당신이 보고있을 때 전력질주 하지 않는다고 질타할 이유는 또 뭘까? 시작과 동시에 많이 달리다가 속도를 줄여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천천히 풍경도 보면서 걷다가 문득 뛰고 싶어지는 사람도 있는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