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
여보는 왜 그렇게 대충 살아?
개미 같은 남자와 베짱이 같은 여자의 대화이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의 장점은 한결같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낸다는 점이다. 인내심도 있어 어려운 고비도 잘 이겨낸다. 다만, 본인의 몸과 마음을 한시도 가만두지 않아 보기만 해도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성실한 배우자를 만난다면 절대 손해 볼 일은 없다.
한 10년 전 즈음, 재밌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예일대 연구팀에서 발표한 연구결과인데 잘생기지 않아도 성실한 남편감이 최고의 남편이니, 꽃미남은 피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땐 그동안 짐작만 해왔던 것이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었었다. 꼭 외모지상주의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인물값을 한다는 건 사회생활을 조금만 해봐도 알 수 있는 슬픈 팩트였으니까.
25세 조금 이른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는 결혼을 하게 된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과 할 것이라 일찌감치 맘을 먹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계획했던 대로 평소 꿈꾸던 사람과 결혼에 성공했다. 29세가 되던 해에 만난 남편과는 만난 지 5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그해가 지나기 직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성실하고 진실한 남자라는 내 확신은 100% 일치했다. 물론 성실함이라는 그럴싸한 앞면에 가려진 성실함의 부작용은 미처 생각도 못했으니.
내 남편이란 남자는 성실하고 부지런하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인간관계도, 가정도, 직장도 매 순간에 정성을 다하고 미루지 않는 사람. 이전에 같은 회사에서 만났기 때문에 내 남편이 진득이 앉아 일하는 모습이야 많이 봤지만, 집에서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퇴근 후 매일 청소기로 바닥을 밀었고, 분리수거와 음식물 쓰레기를 다 비워야지만 소파에 앉았다. 밥통에 밥이 없으면 불안증을 느껴 시간 상관없이 쌀을 안쳤고, 와이셔츠와 바지를 직접 다림질하며 본인이 만든 칼주름에 흐뭇함을 느끼는 남자였다. 때가 되면 공과금도 알아서 내고, 이불빨래도, 커튼도, 냉장고 청소도 다 알아서 했다. 직장과 별개로 집도 마치 일터처럼 본인만의 규칙대로 움직여야 엉덩이를 붙이고 쉴 수 있었다.
나는 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게을렀다. 내가 게으르단 생각을 한 적 없이 살아왔지만, 남편에게 나는 이미 베짱이 같은 아내로 낙인이 찍혀있었고, 딱히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월급을 주는 회사에서 게으를 수 없으니 집에서는 마음껏 게을러 지고 싶었다. 집은 일터가 아니라 쉼터였고, 집안일을 거의 다 해주는 남편 덕분에 몸이 편해졌는지 실제로 결혼하고 살도 많이 쪘다. 어쨌든 혼자 살아도 때가 되면 청소도 하고 밥도 먹어야 했으니, 나는 성실한 남편을 만난 최고의 수혜자이기도 했다.
세상에 다 가지라는 법은 없는지, 성실하고 가정적인 남편 덕분에 몸만 편하지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남편은 본인이 하는 만큼 따라와 주길 바랬다. 어느 날은 이불 커버를 씌우면서 웅얼웅얼 씩씩대고 있길래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내가 가만히 앉아 있어서란다. 본인도 주말엔 쉬고 싶은데 내가 하도 안 하니 혼자 빨래도 널고, 청소도 다했는데 왜 나는 아무것도 안 하냐고 화가 난다고 했다.
나는 몰랐지, 여보가 다 하길래 좋아서 하는 줄 알았어. 그래 같이 하자. 나도 같이 할게.
나는 생각보다 쿨하게 받아들이고, 당장 이불 커버부터 같이 씌우기로 했다. 속 이불과 겉 커버 사이의 매듭을 묶는 일이었다. 남편이 시키는 대로 묶을 수 있는 끈은 다 찾아서 묶었는데 불과 5분도 안돼서 혼자 해야겠다고 나는 하지 말란다. 내가 대충 하는 게 맘에 들지 않아서 란다.
그래, 그럼 여보가 다해. (오예!)
베짱이가 왜 베짱이이고, 개미는 왜 개미로 살아가는지 깨달음을 주는 순간이었다. 베짱이 아내가 개미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내 남편이 코앞에서 놓친 것이다. ‘미련한 개미, 고생을 사서 하는 개미’ 그 이후로 내가 집에서 하는 일은 믿음이 가질 않는다며, 밥 하는 것 외엔 맡기질 않는다.
지금은 아이가 생기고 나도 전보다는 집안일이 자연스레 많아지긴 했지만, 우리 집 개미의 일은 월등히 많아졌으니까. 대신 그만큼 잔소리도 늘었다. 그 정도야 뭐 충분히 감당하리!
아직도 우리는 리모컨 건전지 하나 가지고도 투닥거린다. 건전지 수명이 다한 것 같아 리모컨 작동이
안되면 나는 휴대폰으로 넷플릭스를 보는 반면, 남편은 자신은 티브이를 보지도 않으면서 급히 건전지를 사 와 채워 놓는다. 여전히 나에게 불만스럽다는 표정과 한숨을 쉬긴 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은 탓일까, 더 이상 말도 꺼내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제발 좀 엉덩이 좀 붙이고 살라고 하고, 남편은 나에게 제발 엉덩이 좀 떼고 살라고 한다.
살아보니 성실한 남편과 살아서 손해 볼 건 없었다. 육아를 해보니 더더욱 느낀다. 아이를 씻기고 재우는 것까지도 본인이 자처한다. 타고난 부지런함 때문이기도 했고, 내가 하는 게 못 미더워서 이기도 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집안일을 더 하게 되면 좋아하기보단 오히려 나에게 미안해하는 이상한 일도 생기기도 했다.
요즘은 나도 본의 아니게 남편의 성실함에 동참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아이 때문에 부지런해지기도 하고, 남편의 삶의 태도에 조금씩 끄덕이게 된다. 남편의 성실함이 나 같은 베짱이가 가지기엔 너무 벅차, 따라가는데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성실한 남편을 만난 건 완전 이득이다. 단, 여전히 귀와 머리는 아프다. 성실한 남자는 다 그런지 몰라도 참 사사건건 들이대는 기준의 잣대가 높아, 그에 미치지 못하면 말이 참 많아진다. 그것만 잘 감수한다면야 나 같은 베짱이들에겐 완전 땡큐다.
너는 이만큼, 나는 이만큼 똑같을 수는 없었다. 부부가 되면 이기는 사람도 지는 사람도 없다지만, 더 하거나 덜 하는 배우자는 분명 존재한다. 만약 내 배우자가 성실한 사람이라면 다른 한 사람은 몸은 편하지만, 머리는 불편할 것이다. 마치 나처럼.
그래도 이득이 훨씬 많은 결혼생활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