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결혼이몽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작가 Jan 30. 2021

떡볶이에 대한 모독

나는 떡볶이에 언제나 진심이었다.

떡볶이는 언제나 어디서나 내 만능 해결사 이기도 했지만, 남편에게도 뜻밖의 해결사였다.




언제나 생각 나는 음식, 피곤하고 짜증 나는 날은 약대신 복용해야 하는 처방전이었다. 바로 떡볶이.


먼저 나의 소울푸드 떡볶이에 대해 설명하자면,

매콤하고 달콤한 빨간 양념은 뇌를 꾹꾹 자극하여 그날의 끔찍한 얼굴들을 지워주는 맛이고, 쫀득쫀득한 떡을 꼭꼭 씹을수록 정신이 번쩍드는 맛이다. 

이건 떡이 아니라 XX 씹는 거다. 오늘 나에게  모욕감과 분이  풀릴때까지 거기에 어묵과 파, 탱글탱글한 비엔나까지 추가하면 나에겐 보양식이 따로 없었다.


살면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자, 영원한 최애 음식.

떡볶이를 안 먹을 수는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주변에 떡볶이 취향으로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다 좋아했기 때문에. 단 한 사람만 빼고.


내 남편은 연애할 땐, 나를 꼬실 목적이었는지 떡볶이를 사다 바치는 지극정성을 보였지만 결혼 후엔 쳐다도 보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떡볶이를 자주 먹는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그 고추장 양념 맛이 나는 밀가루 덩어리가 뭐가 맛있냐고 본색을 드러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보다도 떡볶이에 대한 표현이 섭섭했다. 떡볶이를 먹지 않으면 되지, 뭘 안다고 함부로 말하는지. 떡볶이에 대한 비난은 곧 나에 대한 모독이었다. 워낙 흰쌀밥에 찌개를 추구하는 정통 한식파라 분식은 끼니가 되지 않는다며 늘 쌀밥을 요구했고 나는 둘 다 해낼 자신이 없어 남편이 있을 때는 밥, 남편이 야근하는 날은 은밀히 떡볶이를 즐겼다.


나를 속상하게 하더니 머지않아 남편은 떡볶이를 비난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았다. 남편이 이직한 회사에서 동료들과 점심식사로 즉떡을 먹으러 간다거나, 새로 생긴 떡볶이 전문점에 다녀온다는 것이다.


남에게 예예만 하는 사람이라 떡볶이를 먹자는 말에 ‘그건 도저히 못 먹겠어요. 그게 어떻게 끼니가 될 수 있어요...’ 나에게만 보이는 그 말을 마음에 꼭꼭 숨긴 채 오히려 먼저 길을 나섰을 것이다. 아마 좋아하는 척 연기하며 테이블에 수저도 먼저 세팅했을 것이고, 와이프가 떡볶이를 좋아한다며 내 얘기를 팔면서 화기애애 한 분위기를 연출했겠지.


그런 날은 꼭 문자가 왔다.

“나 오늘 또 떡볶이 먹었어. 저녁은 밥 먹고 싶어”

“여보가 말하니까 나도 떡볶이 먹고 싶은데?”

그 날은 나는 결국 떡볶이, 남편은 밥을 먹었다. 다행히 떡볶이는 본인만 빼고 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떡볶이에 대한 이유 없는 비난이 본인에게 비수를 꽂은 거다. 나는 남편의 고통을 보며 배꼽을 잡고 웃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정말 통쾌한 일은 따로 있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남편의 새 회사의 팀장님이 떡볶이 마니아라 일주일에 두 번은 종각에 있는 떡볶이 뷔페에 간다는 거다. 찍소리도 못하고 따라갈 모습을 생각하니, 인생이 드라마라는 말은 이때 쓰는구나! 이제 그의 직장에서의 성공의 열쇠는 떡볶이가 쥐고 있다. 일을 잘하고, 성실한 태도도 중요하지만 거기다 상사가 좋아하는 떡볶이에 대한 취향까지 같다면 플러스가 될 수밖에 없다.


역시나 성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나 보다. 남편은 의도치 않게 나는 아직 먹어보지 못한 짜장 떡볶이, 까르보나라 떡볶이까지 먹었다고 자랑 같은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본인이 다녀온 곳을 이야기하며, 그나마 먹을만한 곳이 있었다며 주말에 가자는 이야기도 꺼냈다. 그의 입맛이 변할리는 없고, 남편에게 떡볶이는 그저 직장생활의 일부였다.


그리고 결국 그가 해내고야 말았다. 당시 남편의 고과는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떡볶이로만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지만, 나는 남편의 떡볶이에 대한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에 흡족했다. 본인은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남편이 떡볶이를 포기하지 않게 응원해준 나의 공로야말로 칭찬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해가 바뀌고, 남편의 팀이 바뀌며 떡볶이에 대한 가능성이 다시 불가능이 되어 가고 있다. 그 전만큼 노력하지 않는 모습에 배신감도 느낀다.

‘떡볶이를 자기의 성공에 이용한 냉정한 사람’


그래도 떡볶이를 좋아하는 동료와 아주 가끔씩 떡볶이를 먹으러 외식을 하기도 하고, 아내인 내가 떡볶이를 먹을 때마다 했던 핀잔도 줄었다. 그것만으로 감사하다. 앞으로도 서로에게 떡볶이에 대한 정의를 다르겠지만, 우리가 부부인 동안에는 함께할 음식일 것이다.


남편에게 떡볶이는

왜 먹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음식

불리할 땐 아내에게 뇌물로 바치는 음식

성공을 위해 연기가 필요한 음식


나에게 떡볶이는

원래도 좋아하는 음식

화가 나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

못 먹게 하면 더 먹어야 하는 음식


‘왜 내가 떡볶이를 먹는데’

‘누가 떡볶이를 먹고 싶게 만들었는데. 참내.’


아내가 매운음식이 왜 땡기고, 자주 먹을 수밖에 없는지 꼭 생각해보길 바란다. 떡볶이를 먹지 않으면 누군가는 그 후폭풍을 감당해야한다. 떡볶이를 먹지 않아도 좋으니 ‘떡볶이의 업적’만큼은 인정해 주길!

매거진의 이전글 효자랑 산다는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