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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아빠 Sep 12. 2022

서른 넘어 타투를 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타투를 참 좋아했다. 어려서부터 힙합을 즐겨서인지 타투를 한 사람들을 보면 참 멋져 보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무 의미 없이 그저 멋을 위해 타투를 하는 것은 허세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멋만을 위해서 함부로 타투를 할 수 없기에 휴가를 떠날 때면 타투 스티커나 헤나로 욕구를 해소하곤 했다. 그러다 가족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던 중 갑자기 떠난 여행의 비행기 안에서 영화 <모아나>를 처음 봤다. 언제 개봉했는지도 모를, 시간 때우기용으로 틀었던 영화는 나에게 큰 결심을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영화 모아나의 반신반인의 캐릭터인 마우이는 자신이 어떤 업적을 이룰 때마다 타투가 자동으로 생긴다고 했다. ‘이거다! 내가 타투를 할 구실이 드디어 생겼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고 처음으로 내 생에 최고의 반려견 흰둥이 얼굴을 왼쪽 어깨에 새겼다. 그리고 쌍둥이 별이와 빛이를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별이와 빛이를 상징하는 쌍둥이 천사를 오른쪽 종아리에 새기고, 아내와 로이의 형상을 오른팔에 새겼다. 타투를 해보니 사람들이 왜 타투를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사람들이 머리를 새로 하면 기분이 전환된다는데,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을 못했다. ‘머리를 새로 하면 새로 한 거지, 무슨 기분까지 전환이 된대?’ 그런데 타투를 하고 나서 그 기분이 뭔지 알게 되었다. 새로 새긴 타투를 보면 뭔가 기분이 전환되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또 타투를 새길 때 생각보다 아프지 않지만, 기본 4시간은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생각보다 굉장히 고생스럽지만, 그 고행마저 인내하고 이겨내서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타투를 새긴 부위의 가족들이 묵직한 느낌이면서도 나를 지탱해줘 든든한 느낌마저 들었다. 지금도 타투를 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고 나의 타투들이 자랑스럽다.




그런데 아내와 별이, 빛이, 로이와 흰둥이 타투를 새기고, 아이들 태어나고 나서 1년쯤 잘 지내다 문득 허전함을 느꼈다. 거울에 서서 나를 비춰보니 내 안에는 내가 없었다. 그 짧은 1년 새에 나는 그저 그냥 별이와 빛이 아빠가 되어 있었다. 내가 알아채기도 전에 나는 자연스럽게 아빠의 삶을 살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아빠가 되어 아빠의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머리로는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실제로 아빠로서의 삶이 먼저 시작되고 뒤늦게야 내가 그 사실을 알아채서 심기가 불편해져 괜한 꼬장이 올라온 것이다.


올라온 꼬장을 구겨 넣고, 거울에 서서 내 얼굴과 내 몸뚱이를 찬찬히 뜯어보며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누구지? 진정으로 그저 그냥 아빠인가?’ 아니다. 분명 내 얼굴은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럼 나는 누구지? 난 그대로인 거 같은데 변한 게 뭐지?’ 이 질문이 일어난 순간 알아챌 수 있었다. 나의 가족인 아내와 별이, 빛이, 로이와 흰둥이가 분명 나와 함께 있었다. 맞다. 나는 나 그대로 존재한다. 변한 건 나에게 내 가족이 생긴 것이다. 난 오롯이 나 혼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또 그저 그냥 아이들의 아빠인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내 가족 전체를 품는 가장이 되어 있었다.


결혼 후에도 우리 부부는 연애 시절과 다름없이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 각자의 책임만 다 하면 각자의 권리를 서로 존중해줬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본가는 각자가 알아서 컨트롤하고, 서로 스케줄을 조율하며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같이 훌쩍 떠나거나, 각자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다녔다. 우리 부부는 결혼했어도 온전히 나로 존재할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남편과 아내이면서도 남편과 아내가 아니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고서도 심신의 재충전을 위해, 각자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돌아가며 각자의 시간을 보냈지만 그 시간마저도 여전히 부모였다. 이제는 홀로 있어도 혼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자 나의 정체성은 새로 태어났다. 이제는 나라는 사람이, 아빠로서의 삶이 내 안의 가장이라는 정체성으로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가장의 삶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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