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낳고, 몸을 제대로 세울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엄마의 절절한 사랑은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안정 애착을 만드는 건 ‘민감한 반응성’이라는 것을.
둘째 아이를 낳을 때였다.
엄마는 일주일 전부터 6시간 넘는 거리를 한숨에 달려오셨다.
첫째를 제왕절개로 낳았기에, 둘째도 같은 방식으로 낳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엔 훨씬 더 힘들었다.
첫째보다 다섯 살 터울, 노산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임신 중에도 쉽지 않았다.
첫째 때는 모든 검진이 무사히 통과되었지만,
둘째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매번 재검을 받아야 했다.
몸도 마음도 긴장의 연속이었고 걱정이 더해졌다.
아이를 낳고 나니 배는 뭉치고 당기면서, 걷는 것도 힘들 만큼 아팠다.
수술 후 며칠이 지나도 상체를 제대로 세울 수 없었다.
의사를 만나러 가거나 화장실에 갈 때면
몸을 반쯤 접은 채로 걷게 되었고
그 모습은 꼭 오래된 폴더폰 같았다.
“엄마, 배가 너무 아파…”
나는 힘겹게 말했지만,
엄마는 나의 아픔보다 더 불안함에 휩싸였다.
“이 정도로 아프면 안 되는데…
이종사촌 언니는 셋 낳아도 멀쩡했는데…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이러면 안 되는데…”
엄마의 말은 밤낮으로 계속되었고,
그 말들 사이로 나의 불안도 점점 커졌다.
엄마는 간호사를 매번 불렀고,
간호사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 그런 거예요. 괜찮습니다.”
쌀쌀맞은 그 말에 나는 민망했다.
밤마다, 갓 태어난 둘째와 여섯 살 첫째를 생각하며
두 아이를 두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그러다 퇴근한 남편이 병실에 들어오면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내 폴더폰 같은 걸음을 보며 웃더니,
“야, 너 왜 이렇게 걷냐. 좀 똑바로 걸어봐~”
라며 굽은 몸을 잡아 일으켰다.
조금 서운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걱정하지 않는 그 태도가 이상하게도 나를 안심시켰다.
그때 알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불안을 증폭시키는 반응이 아니라
‘괜찮다’는 안도감이었다.
엄마는 나를 깊이 사랑했다.
아픈 언니를 먼저 떠나보낸 뒤, 나만큼은 꼭 지키고 싶었고
아픈 언니에게 주지 못했던 사랑을 나에게만이라도 주고 싶었던 마음이 무척 컸다.
그 사랑은 간절하고 절절했지만,
때로는 무겁게, 불안하게, 두렵게 다가왔다.
작년에 개인치유심리학을 공부하며
나는 당연히 안정 애착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애착 결핍이 아주 깊다는 걸 알았다.
안정 애착을 만드는 핵심은
‘민감한 반응성(sensitive responsiveness)’이다.
아이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정확히 해석하며,
신속하고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
이것은 애정과 심리적 이해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엄마도 그 민감한 반응성을 충분히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은 받지 못했지만 간절히 주고 싶었던
사랑을 표현했고, 그 방식은 자주 나와 어긋났다.
나의 수치심의 기원도 거기에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뇌는 변할 수 있다.
상처 입은 애착도 안정 애착으로 회복될 수 있다.
이제 나는 내 안의 아이에게
충분히 민감하게 반응해 줄 수 있다.
그때 병실에서,
남편이 내 굽은 몸을 살짝 세워주었듯이
나도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
“괜찮아. 천천히 걸어도 돼. 나의 목소리를 잘 듣고 반응해 줄게”
이제 그 말을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