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그리 고마울까

by 엘레강스두인사

새 학년이 시작되기 직전이면, 교사의 마음도 꽉 잡아당긴 고무줄처럼 팽팽해진다. 하지만 그 긴장은 교사만의 것이 아니었다.

“학부모님 안녕하세요. 특수교사 000입니다.” 개학 안내 문자를 그렇게 시작하려다, 받아야 할 서류가 있어 직접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조심스러운 긴장이 전해졌다. “00이 어머니시죠? 올해 특수학급은 제가 맡게 되었고, 통합학급은 0학년 0반이에요.” 갑자기 목소리가 환하게 밝아졌다.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 좋아요.” 나는 의아해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동안 몇 번 얼굴을 스쳐 지나간 사이일 뿐이다. 나는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조금만 멀어도 알아보지 못해, 인사를 받고도 지나친 뒤에야 뒤늦게 깨닫곤 한다.. 그런 내가 왜 이렇게 고마운 사람일까. 완전히 새로운 누군가가 아니라는 것, 적어도 낯설지는 않다는 것.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안심이 되었을지 모른다.


아주 예전에도 새 학년 직전에 이렇게 전화를 돌린 적이 있었다. 그때 학부모들의 첫 질문은 대부분 비슷했다. “담임선생님이 원해서 맡으신 건가요?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맡으신 건가요?” 나는 통합반 담임선생님이 자진해서 맡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사실, 원해서 맡은 것이라는 말은 거짓말일 때도 있었다. 아이를 기관에 보낼 때마다 거절을 먼저 경험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 빛 한 줌도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동굴에 아이와 나, 둘만 있는 기분이에요.” 그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다.


서류를 보내 달라고 하자, 방학 동안 교사를 번거롭게 할까 봐, 교감을 찾아가 직접 도장을 받아오려 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또 오래전 장면이 떠올랐다. 아주 예전에, 내가 회의에 가지 못할까 봐 1년을, 매일 1교시가 끝날 무렵이면 학교로 다시 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교실을 지켜주던 학부모들. 또 다른 장면도 떠오른다. 우리 반 아이가 복도에 뛰쳐나와 고집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가는 길을 멈추고 “선생님, 이건 어떨까요?” 누군가는 과자를 건넸고, 사탕을 꺼내 보이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무거운 아이를 온몸으로 안아 교실 안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잠깐 멈춰서 그 얼굴을 보게 된다.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함께하려는 마음들이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아주 가끔 나를 긴장하게 만들던 학부모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여행 중이라며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는 문자가 몇 번이나 도착했다. 아이가 선생님 덕분에 많이 성장했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 어머니는 아이가 학교에서 나를 힘들게 할까 봐 가방 안에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이것저것 챙겨 보내곤 했다.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려고, 내 손이 조금이라도 덜 가게 하려고 애쓰던 모습이 이제야 떠올랐다.


다들 뭐가 그리 고마울까.


작년에는 온몸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이라 열심히 가르치지도 못했는데.


특별한 것을 한 건 없었다.

나는 그저, 아이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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