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리는 힘듦을 숨겼다

엄마가 떠났다


놀이터에서 걷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최서방이랑은 잘 지내는 거야?"
내가 한국에 도착한 이후로, 엄마는 자신의 아픔과 고통이 너무 커서 나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나에게 건넨 첫 질문이 저것이었다.
나는 거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왜였을까.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야 했는데, 그조차도 엄마에게 말하기 싫었다. 엄마가 나의 일로 몇 년째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가는 것이 싫었다.


나의 엄마는 항상 나에게 자신의 아픔을 숨겨왔다. 대장암과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는데, 나는 수술이 끝난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초기 발견이라 수술은 잘 마쳐졌고, 엄마는 그 두 번의 수술 이후로도 일상을 이어갔다. 나는 그 모든 것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알았을 뿐이다. 엄마는 늘 "안 아파", "안 힘들어", "괜찮아"라는 말들을 했다. 그 말들 가운데 절반쯤은 거짓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나의 힘듦을 엄마에게 숨기며 살아왔다. 그러다 두 번 정도 엄마에게 힘듦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임신을 해서 입덧이 너무 심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였다. 그때 혹시 상해에 와줄 수 있느냐 물었고, 엄마는 조카를 봐야 해서 올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는 오래전, 남편과 다투고 충동적으로 한국으로 간 일이었다. 그 후로 엄마는 내 걱정을 달고 살았고, 내가 전화를 할 때마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싶어 깜짝깜짝 놀란다고 했다. 엄마가 내 걱정을 하며 지낸다는 그 사실이 나를 오히려 힘들게, 때로는 짜증 나게 했다.


20대의 나는 '엄마를 위해 살아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고생하며 살아온 모습을 봐와서, 내 인생은 엄마를 위해 살아야 한다 여겼었다. 나의 희망은 엄마가 이모들과 통화하며 나를 자랑하며 의기양양해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땐 그게 내가 엄마를 위로할 수 있는 길이라 여겼다. 그 생각은 30대에 유학을 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세계를 보면서 깨졌다. 그래도 여전히 맘 속에는 ‘엄마를 걱정시키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남편과 싸워서 엄마에게 갔던 그 일, 엄마에게 내 힘듦을 보였던 그 일은 큰 후회가 되었다.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게 된 것 같은 죄책감까지 들었다. 엄마에게 걱정시키지 말자며 그동안 힘듦을 드러내지 않고 살았는데, 그 한순간의 충동으로 나는 엄마에게 걱정을 시키는 딸이 되어버렸다. 동시에 위로가 아닌 죄책감을 받은 데에 대한 원망도 들었을 터이다. 다시는 엄마에게 나의 힘듦을 말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 결심의 연장선이었을까, 그래서 남편과 잘 지내냐는 그 흔하디 흔한 안부 같은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의 되려 이상한 고집이 터져 나왔다.


서로 힘듦을 숨기며 살아온 엄마와 나. 하지만 더 이상 나에게 힘듦을 숨길 수 없게 된 엄마의 물음에, “잘 지내”라고 대답하지 않았던 나의 고집에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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