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엄마는 아빠와 사는 게 힘들었다

엄마가 떠났다

#4

나의 엄마는 엄마를 상징하는 ‘희생’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삶을 살아왔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아빠는 생활력이 없었다. 이 두 사실이 엄마를 희생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아빠와 사는 게 힘들었다. 매일같이 돈 문제로 싸웠다. 아빠는 생활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개인 사업자여서, 일하고 싶으면 나가고 싫으면 안 나가곤 했다. 우리 집은 가난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는데도 아빠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 대신 엄마는 매일같이 일을 나갔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식당 주방일, 아이 시터 등이었는데, 낮에 그 일을 끝내고 밤에는 동네 목욕탕 청소까지 했었다. 돈 조금 더 벌어보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아빠는 맘이 안 내키면 일을 안 나가고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 엄마는 참을 수 없어 터져버리곤 했다.


엄마는 말한다. 우리들 때문에 참고 살았다고.

물론, 지금의 아빠는 그때와 다르다. 아빠의 무기력했던 그 시기가 지난 후, 엄마는 아빠와 살 만했다.


내가 도착한 다음 날, 나는 드디어 엄마의 모습을 바로 볼 수가 있었다. 엄마는 많이 아파했다. 타이레놀을 수시로 복용해야 했다. 가슴에는 수술로 스테이플들이 박혀 있었다. 가슴을 찢어서 갈비뼈를 뿌려 뜨려 한 수술이라 한다. 머리를 감고 싶어 온몸에 비닐을 씌우고 겨우 겨우 감았다. 수술을 한 지 10일이 지났지만, 엄마는 여전히 고통 속에 있었다. 하루하루 나아지는 느낌이 있냐는 말에 엄마는 똑같이 고통스럽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보는 거였는데, 보통 다른 수술은 1-2주의 회복기간이 필요하지만 심장 수술을 최소한 1달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엄마에게 엄마 1달만 참아보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 알았으면, 수술하지 말 걸.”


엄마는 이 말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했다. 수술하지 않으면 몇 달 밖에 못 버틸 거라는 말에 엄마는 수술을 한 것인데, 그 수술 후가 너무나 고통스러워, 차라리 그냥 죽을 걸, 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그 고통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아프고 힘들면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빠는 엄마에게 매우 잘하고 있었다. 집을 깨끗이 정리하고, 엄마가 부르면 당장 달려갔고, 엄마를 위해 매우 헌신하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많이 기대며, 아빠가 없으면 어떡하냐는 심정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나와 오빠가 모두 해외생활을 하는 상황에서, 엄마는 아빠 밖에 더욱더 의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른들이 하는 말 중에, 이래저래 해도 자식보다는 남편이 낫다는 말이 있는데, 엄마는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는 좋은 남편이 되고 있었다. 더 이상 예전의 엄마를 힘들게 한 남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도 예전의 기억을 갖고 있는 지라, 아빠에 대한 원망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내가 엄마 옆에 누웠을 때, 엄마는 오래전 이야기를 다시금 꺼냈다. 내가 수없이 들었던 아빠와의 첫 만남, 시댁 생활, 아빠의 술 사랑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했고, 나는 처음 듣는 것처럼 다시 들었다. 아무리 아빠가 지금은 잘해도, 한번 맺힌 서러움은 잊히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나 보다.


꼭 걷기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우리는 놀이터에 나갔다. 그 짧은 한 바퀴를 엄마는 겨우 걷고 앉아 쉬는 것을 반복했다. 그리고 엄마는 아빠의 손을 꼭 잡고 다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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