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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Dec 30. 2022

뺄셈과 덧셈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좋아하는 작가 중에 유명한 정유정 작가와 이병률 시인이 있다. 미국에 와서도 이들의 책을 읽는다. (영어책 같은 건 읽지 않는 실용 마인드!) 그러다가 최근 서로 다른 두 문장이 계속 생각나 곱씹게 됐다.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 『완전한 행복』 (정유정)     


“하지 않으면 끝인 것. 하지 않음으로써 제대로 자신에게 도착하지 못하는 것. 안 하면 그것으로 당신이든 누구든 아무것도 아닌 것.”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병률)     


난 열렬히 전자였다. 연애와 결혼만 해도 ‘혼자는 외롭고 둘은 괴롭다’란 말이 있지 않나. 애초에 누군가가 없으면, 어떤 일을 벌이지 않으면, 뭔가 계약을 하지 않으면 거기에 줄줄이 딸려오는 모든 변수와 힘든 일은 제거된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싱글의 자기합리화일 지도 모른다. 뭐든 단순하게 살자. 일을 벌이지 말자. 욕심내지 말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 하자.      


비유가 적확하진 않지만 예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중요하게 결정해야 할 일들이 워낙 많아, 옷은 똑같이 생긴 푸른색 와이셔츠를 수십 장 사다 놓고 아무 생각 없이 걸치고 나온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옷이든 일이든 관계든 많으면 작든 크든 고민거리가 되는 법이다.  나는 지금도 큰 틀에서 비슷한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사랑꾼 이병률 작가가 지치지도(?) 않는 듯

 “(사랑을)안 하면 내가 죽어요”라며 ‘하지 않으면 끝’이라고 써 놓은 걸 보고 왠지 모르게 걸리기 시작한 거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 복권도 사지 않으면 당첨될 일이 없고. 에너지 넘치는 도전주의자들이 ‘그러면 어차피 죽을 건데 뭐 하러 삽니까!’라고 질책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테고.

     

당연히 사람은 덧셈도 하고 뺄셈도 하며 살아간다. 오바마 대통령이 여러가지 일들을 하기 위해(덧셈) 옷을 단순화(뺄셈)한 것처럼. 직장인 중엔 일에 몰두하느라 가정에 신경을 덜 쓰는 사람이 많을 거고, 엄마들 중엔 양육에 신경 쓰느라 다른 일을 돌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꽤 오랫동안 뺄셈에 훨씬 몰두해 온 것 같다. 인간관계를 더 넓히지도 않고, 안 하던 일을 굳이 하려고도 하지 않고, 낯설고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경험을 찾아서 하지 않았다. 덜고 또 덜고. 열심히 살지만 기본적으론 해 오던 일들을 고정불변의 루틴처럼 반복해 왔다.

    

미니멀 라이프라든지 무슨 대단한 철학과 소신 때문이 아니다. 그냥 감당하는 게 버겁고 그로 인해 벌어질 일들이 두렵다는 게 진짜 속마음이다. 소설 속 말처럼 ‘행복하고 싶어서’ 가 아니라 ‘힘들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덧셈’들을 해봤고 그로부터 어떤 교훈(주로 좋지 않은)을 얻었고, 이제 지쳤다, 그만하고 싶어서 그렇다고 이유를 댈 수도 있다.  실제로 번거로운 일들이 많이 사라지고 마음도 안정되고 시간도 많아져 좋다. (심지어 돈도 더 적게 든다) 그래서 꽤 현명한 삶의 자세로 느껴졌다.


그런데 역시 뺄셈으로 일관한 생활이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는 것 같다. 때때로 ‘이 정도면 꽤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많다. 하지만 뭐랄까…생동감, 생생함, 기분 좋은 긴장과 흥분 같은 것과는 거리가 있다.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식물 같은 행복감이랄까. 나쁜 건 전혀 아닌데, 아주 좋은 감정을 느끼는 일도 드물다.     

 

갑자기 덧셈형 인간이 될 수는 없다.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어느 한쪽이 더 옳은 건 더욱 아니다. 그래도 이제 조금은 섞어봐도 되지 않을까, 체하지 않을 수준에서 뭔갈 더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한 겹 두 겹 계속 더 덜어냈다가는 구멍이 날 것 같은, 균형을 잃고 쓰러질 것 같은, 무엇보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의 등처럼 움츠러들고 그들의 심장처럼 맥박이 옅어질 것 같은 또 다른 본능적인 두려움이 든다.      

누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마음속에 그동안의 기운과는 조금 다른 색깔의 기운을 넣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더하는 내용이 대단할 필요는 없다. 안 먹어 본 걸 먹어본다든지, 눈에 들어온 뭔가가 있다면 사본다든가, 좀 다른 곳에 가본다든가, 도통 건드릴 생각이 안 나던 곳을 청소하고 정리해 본다든가…그런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사람에 데고 치이고 상처 입었더라도, 가끔은 마음맞고 편한 사람과 어울리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혼자서는 일으키지 못하는 불꽃같은 것이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지는 것 같다.


중요한 건 균형이다. 덜어내기만 하는 것도 균형을 잃은 상태다. 성공이나 자기 계발이 문제가 아니라 균형을 심하게 잃은 채로 오래 살아가다 보면, 사람은 결국 우울해지고 슬퍼지고 힘들어지게 만들어진 것 같다. 익숙해져서 괜찮은 것 같지만 사실 괜찮은 게 아닐 수 있다. 무엇보다 같은 생활만 오래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감정과 생각의 범위를 가두고, 어쩌면 ‘나 이런 거 좋아하네’라고 알아갈 기회를 하릴없이 흘려보내게 될지 모르니까. 그러기엔 많은 사람들이 아직 기력도 있고 괜찮은 나이다.     


정신없는 삶 속에 자발적으로 많은 걸 덜어내 버린 사람들, 자신은 원하지 않았는데 남이나 주변 여건 때문에 단출하고 혼자가 익숙해진 사람들, 갈 길을 판단하기 어려워 꽤 오래 멈춰 선 사람들. 사정은 저마다 제각각일 거다. 그래도 겨울잠을 푹 잔 뒤엔 어느 하루를 시작으로 손끝이 내 마음에 닿도록 기지개를 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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