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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an 04. 2023

유기농을 먹으면 뭐하나…미국인이 살찌는 이유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많은 미국인들은 뚱뚱하다. 잘못 얘기하면 외모 비하 발언이 되니 조심스럽지만 한눈에 봐도 배가 심하게 나와 있다든지 불필요한 곳의 살이 겹쳐있다든지 의학적으로 정밀하게 따져보지 않아도 비만이다. 실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비만과의 전쟁’ 비슷한 걸 선포했는데, 이유는 말 그대로 미국인들의 비만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병원비 등 사회 경제적 비용이 어마무시하기 때문이다. (※ 2021년 기준 15세 이상 미국인 비만율은 73%,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 멕시코에 이어 2위다)


40대가 돼 보니 정부가 자국민의 비만 걱정을 하는 이유를 절절히 알겠다. 비만은 단순히 외모가 좋고 안 좋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건강, 삶의 질과 직결되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서 지나치게 살이 찌면 이것저것 염증이나 관절염, 심혈관 계통의 다른 질병이 오기 쉽고 삶의 질이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몇 개월 살아보니 미국인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건강에 관심이 매우 높다. 밀가루가 안 좋다고 소문(?)이 났는지, 빵 하나를 사도 통곡물이나, 도정하지 않은 발아 곡류로 만든 빵 인기가 좋다. 그중에서도 밀보다 현미·보리·메밀·귀리(오트밀) 같은 곡류가 건강하다고 여겨진다.

신선한 야채나 과일도 매일 먹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음료도 설탕 대신 대체감미료로 단 맛을 낸 제로 칼로리 음료를 일부러 찾아 마신다. 채식주의(비건)자들이 많아 고기류고 계란이고 다 대체품이 있다. 특히 무슨 음식이든 유기농, 글루텐프리, 코셔(Kosher·유대교 율법에 의해 식재료를 선정하고 조리한 음식)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 결과 음식에 통곡물·flourless·유기농·글루텐프리 인증 표딱지가 붙으면 가격이 몇 달러 정도 확 높아진다. 무슨 사치품도 아니고, 양 적고 비싸면 잘 안 팔려야 하는데 늘 건강 빵이나 유기농 식재료들은 오후 4~5시쯤 가면 판매대가 텅 비어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이렇게 건강에 관심이 많은데 왜 비만율은 여전히 그렇게 높은 걸까. 답은 너무 뻔해서 민망하긴 하지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일단 많이 먹는다. 미국에서 오랜 기간 살고 있는 한 교수님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스낵 타임(간식 시간)’에 익숙해져서 삼시세끼 외에도 틈날 때마다 뭔가를 먹는 습관이 일상에 배어있다고 한다. 어릴 땐 그게 쿠키나 아이스크림, 캔디류, 오렌지주스와 탄산음료처럼 설탕이 많이 든 음식이고, 성인이 돼선 감자칩이나 핫도그 같은 게 될 거다. 한 번에 많이 먹지 않더라도 수시로 뭔갈 먹는 게 습관이 됐다는 거다. 일례로 TV를 보거나 잠시 쉬더라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맥주를 한 캔 마신다거나 무심코 과자나 감자튀김을 집어먹으면서 볼 일을 보는 식이다.      


둘째는 식문화 자체가 고열량의 음식과 식재료로 이뤄져 있다. 이건 개인의 탓이 아니다. 마치 우리가 밥에 김치를 먹고, 만두를 먹을 때 간장을 찍고, 나물에 깨를 뿌리고, 회를 초장에 찍어먹듯 미국인들이 으레 당연시하는 음식 조합들이 고열량이라는 거다.

나는 미국 식문화를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지난 추수감사절 때만 봐도 전통적인 식탁을 차리려면 칠면조 겉에 버터를 바르고 속을 채우는데, 이 속재료(스터핑)는 야채와 함께 빵·소시지·쌀·견과류·옥수수 등이 주로 들어간다. 칠면조 외에도 다양한 사이드 요리를 함께 만드는데 으깬 감자, 밀가루와 치즈로 만든 맥앤치즈, 역시 치즈와 각종 기름진 재료를 듬뿍 넣은 캐서롤 등이 대표적이다. 크렌베리나 그레이비 등 달달하고 끈적한 소스들도 빠질 수 없다.


꼭 전통요리가 아니래도 온갖 고기가 주식에 해당하고 크림과 설탕, 지방 함량이 높은 수십 가지의 소스와 역시 수십 가지의 치즈들이 모든 요리의 필수 식재료로 들어간다. 디저트도 중요한 식문화로, 식후에 과일 정도를 내는 한국과 달리 케이크나 아이스크림 등 달짝지근한 것들을 꼭 먹는다. (추운 계절엔 마시멜로와 캐러멜 등이 인기다)

한 마디로 미국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먹던 대로 먹고 있을 뿐인데 영양적으로는 매우 고열량·고지방·고당분의 식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본 바탕이 이런데 아무리 유기농·글루텐프리·코셔 음식을 찾아서 더 얹어봤자 돈만 더 들뿐 다이어트 효과가 날 리 없다.


그런 면에서 한국 사람들은 다이어트에 훨씬 유리하다. 치즈요리나 쿠키·케이크·치킨·피자 이런 음식이 어쨌든 주식은 아니니까 말이다. 반대로 미국인들은 억울하게도(?) 저런 음식이 오랜 세월 문화 속에 뿌리내려 피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엄마가 감기에 걸린 아이를 위해 사랑을 듬뿍 담아 해주는 음식이 한국은 전복죽인데 미국은 맥앤치즈인거다. 그 결과 미국인은 어릴 땐 너무 마른 거 아닌가 싶도록 늘씬늘씬하다가, 대학생만 돼도 배가 나오고 심지어 성인병이나 탈모 등이 오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미국의 비만율은 확실히 높지만, 잘 알려진 대로 미국 사람들은 남의 외모나 옷차림 등에 ‘적어도 겉으로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특히 남의 외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판단하는 건 거의 금기시하는 분위기다.

비만 등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흘깃거리지 않는 건 가정·학교·사회 등에서 오랫동안 교육한 건전하고 긍정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솔직히…성인 10명 중 7~8명이 비만인 마당에 풍성한 몸매를 비판하고 안 좋게 보려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에 비만에 대한 인식이 매우 너그러워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 몸이 어떻게 생겼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인식도 강해서 아무리 비만이 심해도 당당하게 노출을 하고, 주변에서도 그러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난 이런 미국의 분위기가 너무나 좋고 박수를 보낸다. 당장 외출할 때 꼭 화장을 안 해도 되고 옷도 웬만해선 편한 캐주얼로 내키는 대로 입으면 되니 생활 자체가 매우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관찰을 해보니 속마음은 미국과 한국이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미국인들도 군살 없이 날씬하고 근육이 드러난 몸매를 선호한다는 얘기다. 그런 내색을 결코 하지 않는다는 건 ‘큰 차이’지만, 심리 자체는 한국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미의 기준이란 건 시대·문화권·국가·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뭐라 뭐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하지만 건강은 다른 문제다. 외국인으로서 제3자가 바라봤을 때 미국은 젊을 때부터 너무 심하게 비만의 단계에 와 버리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일반인 기준으로 그게 너무 흔하고 당연해져 버렸다. 비만이 문제라는 인식은 널리 퍼졌지만 자꾸 유기농·글루텐프리·제로칼로리 음료 등으로 보상하고 개선하려고 하는 것 같다. 자동차 이용을 좀 줄이고 식재료와 음식 종류, 조리법을 바꾸는 게 핵심인데 둘 다 개인의 탓도 아니고 바꾸기가 쉽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다행히 우리 한국은 전통적으로 비만과는 거리가 있는 식문화를 가졌으니, 굳이 가격 올리기 딱 좋은 유기농·글루텐프리·코셔 이런 것에 집착하기보다 감칠맛 좋고 몸에도 좋은 음식들을 더 개발하고 즐기면 되겠다 싶다. 잘 먹고 건강하게 먹고…그래서 겉으로나 속으로나 기분 좋은 상태의 몸으로 살아가기. 수많은 영양제와 값비싼 인증마크들로 건강을 챙기려 하는 미국의 식생활을 경험하며 새삼 되새기고 싶은 새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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