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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an 08. 2023

불륜영화에 끄덕…‘사랑은 변하고 사람은 안 변해’.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불륜(不倫). 한자만 보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倫)를 어겼다(不)’는 뜻이지만 보통은 남녀 간에 외도, 배우자가 있으면서 바람피우는 걸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미국에 와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영화도 많이 보게 되는데(에헤라디야~) 역시 불륜 소재는 동서를 가리지 않고 단골 소재 중 하나인 것 같다.      


사실 이 불륜이란 게 정말 마음먹고 누군가에게 사기 치거나 복수하려고 치밀하게 계획한 경우를 제외하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긴 하다. 어쨌든 그 복잡다단한, 당사자 빼고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남녀 간의 감정이니까. 그 관계가 이어지든 스치듯 지나가든 사람이 몇십 년을 사회란 곳과 연결돼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일과 감정에 엮일 확률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불륜이 도덕적으로 부적절하고 배우자와 가족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일이란 건 긴 말이 필요없다. (심지어 대학때 남자친구가 후배와 양다리 걸친 걸 알았을 때도 펑펑 울었던 생각이 난다) 그래서인지 그 끝은 대부분 좋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정말 불륜이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서, 그러니까 ‘벌을 받아서’ 안 좋게 끝나는 걸까? 유교나 종교, 교육적 관점으로 보면 그렇게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불륜이 ‘난리 부르스’나 ‘막장’으로 마무리되는 건 다분히 인간의 본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20~30대 때는 자극적인 스토리에 집중하며, 주인공 중 어느 한쪽(내가 여자니까 주로 여자 주인공)에 감정을 몰입하고 봤다면, 지금은 보이는 게 조금 다르다. 굳이 표현하자면 ‘사람의 본성’이 민낯 그대로 드러나다가 도달하는 게 불륜의 결말이라고나 할까.      

불륜영화들의 흐름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처음엔 당사자 사이에서만큼은 ‘사랑’이란 감정으로 시작된 관계.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욕심이 생기고 갈등이 떠오른다. 초반엔 서로 죄스럽고 미안한 감정을 잘 컨트롤하는 듯 하지만 역시 시간 앞에 인간은 한겹한겹 속내를 드러내고 각자 자신의 것을 챙기려 한다. 자기 것을 한 개도 잃고싶지 않아 한다. 어느새 그 속내를 숨기려 하지도 않게 된다. 그 사이 스트레스와 긴장, 불안 상태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그러다 보면 상대를 원망하고 탓하게 되며…사랑과 애틋했던 감정은 빠르게 식고 결국엔 미움과 증오로 돌변하게 된다. 그러다 그토록 사랑했던 상대를 되레 해코지하거나 살해하기도 하고 말이다.(물론 살해는 영화 속 극단적인 결말이지만 현실도 큰 틀에선 비슷하게 흘러간다)      


불과 1시간 30분 러닝타임 사이에 애틋한 사랑이 끔찍한 죽음이나 범죄로 끝나니 이건 뭐 천국과 지옥 수준의 온도 차이인데, 또 그 과정이 상황과 심리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군’ 하고 넘어가게 된다는 게 무서우면서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자, 이제 언니·누나로서(?) 간만에 킬링타임용 불륜영화를 보며 다시 한번 깨달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한 조언을 나눠본다.


1. 모든 문제는 사람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그래서 괴롭고 풀기가 어렵다. 싱글로 혼자 살면서, 또는 결혼 생활을 이어오면서 겪는 부정적인 감정과 고뇌도 괴롭지만 적어도 (불륜처럼) 공개적·사회적으로 책임지고 해명하고 해결해야 하는 의무를 지우지는 않는다. 현실적으로 그런 의무가 없다는 게 얼마나 큰 자유로움인지 닥쳐보면 절감하게 된다.        


2. 나를 쭈우욱 만족시켜 줄 사람은 세상에 없다. 모든 건 자기합리화·수용·희생·체념·포기·적응 일 뿐 누군가로 인해 지속적으로 행복한 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성 관계나 이성이 나에게 주는 감정에 기대거나 집착하지 말 것. 사랑의 감정으로 인한 마법같은 힘과 강력한 긍정 효과는 생각보다 금방 사라진다. (물론 가정이 주는 안정감과 힘은 분명 있다)     


3. 불륜을 해선 안 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피곤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혼자와 사귀는 싱글일 경우 자존감 하락, 피해의식 등 자기 파괴적인 부작용으로 반짝거리던 사람의 빛이 퇴색하며, 무엇보다 끊임없는 숨김과 거짓말로 에너지와 시간을 갉아먹게 되고 정신이 피폐해 진다. 우리 어른들의 삶은 그것 아니고도 얼마나 피곤하고 지치는 일들의 연속이냔 말이지.

      

4. 인간은 유약하다. 결국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기에게 득이 되는 것을 위해서라면 거짓과 악행을 서슴없이 선택해 버린다. (나는, 상대는 안 그럴거라고?) 물론 그러고 나서 죄책감도 느끼고 후회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미 남에게 위해를 끼치는 언행을 저지른 뒤라는 사실. 후회해봤자 상황이 리셋되지도 않는다. 당한 사람만 억울한 건데 그게 내가 돼선 안 된다.


5. 아주 명백해 보이는 정의조차 인간의 평균 수명 기간 안에 실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피해자가 나든,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받았든…누군가는 살아생전에는 억울함과 상처를 떨쳐내지 못하고 눈을 감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일에는 애초에 엮이지 않는 게 속편하다.     


누군가에게 끌리고 사랑하는 감정이야 언제든 생겨나고 식고 되살아나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시작과 끝은 깔끔해야 하는 법.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손해입고 비판받아야 한다면 그건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부분인데, 나이가 들수록 이득만 취하고 하나라도 잃기는 싫고 책임은 피하고픈 이기적인 욕심이 하늘을 찌르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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