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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an 15. 2023

극강의 디즈니월드 : 좋은 거, 나쁜 거, 이상한 거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드디어!!! 세계 최대 테마파크인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디즈니월드’에 다녀왔다. 1971년에 문을 연 디즈니월드는 개장 50주년 축제 중이다. 총면적은 101km²로 무려 서울의 6분의 1. 캘리포니아에 있는 ‘디즈니랜드’의 100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다. (버스 기사가 “여기서부터 디즈니 땅이에요”라고 소개할 정도다)     


디즈니월드의 4가지 테마파크는 하루에 한 곳 돌아보기도 버겁다. 나도 매일 2만 보 넘게 걸었더니 발에 물집이 잡히고 허리와 등 통증에 나중엔 눈까지 침침해지고 정신이 없었다. (하루라도 젊을 때 가세요.흑) 맞다. 디즈니는 정말 여러 가지 면에서 사람 혼을 쏙 빼놓고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 좋은 점

만약 미국 기자가 나더러 디즈니월드에 와 보니 어떠냐고 소감을 물었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거다.

“돈으로 산 환상이지만 행복합니다!!”

디즈니월드가 인위적인 시설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미키마우스, 도널드 덕, 곰돌이 푸,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엘사와 아나…공원 곳곳에서 만나는 캐릭터들도 모두 분장한 배우들이고. (시급이 얼말까. 동심파괴!)


그럼에도 불구하고…디즈니는 환상적이다. 거짓말도 진정성 있게 하면 진짜처럼 느껴진다고 했나. 공원에선 듣기만 해도 설레는 익숙한 애니메이션 주제가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거리부터 상점과 조형물은 물론 직원들 옷차림과 목소리, 표정 하나하나까지 동화 속 세상처럼 일사불란하게 맞춰 놔서 이게 다 엄혹한 자본주의 상업시설이란 걸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동화 속 인구’가 돼서 느끼고 행동하게 된다.


이질감도 없다. 캐릭터들이 원래 서양인이라 그런가 걸어 다니는 백설공주는 진짜 백설공주같고 신데렐라도 진짜 신데렐라같이 생겼다. 놀이기구나 시설 역시 주기적으로 개보수를 하는지 낡거나 시대에 뒤처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예를 들어 놀이기구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마 로봇을 쓴 거 같은데 눈 깜빡임이나 움직이는 동작이 어색하지 않고 꽤 실감나서 몰입이 된다.


무엇보다 아바타2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스타워즈 등 최신 콘텐츠들을 놀이기구로 재현한 ‘신상’들은 스케일은 물론 퀄리티나 디테일이 예상과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훌륭하다. ‘이게 돈의 힘인가!’ 란 생각이 절로 들지만, 이용자로서는 만족스러울 따름이다.      


특히 3D나 4D같은 최신 영상 기술을 십분 활용했는데 이게 또 돈을 많이 들여 좋은 걸 썼는지, 어중간하거나 애매하지 않고 어른들도 ‘우와’ 소리가 절로 난다. 유명한 매직킹덤(신데렐라 성)에서 밤에 하는 불꽃·레이저쇼만 해도 감동의 도가니탕 절정에 팅커벨이 실제로 나타나서 하늘을 날아다닌다. 어떻게 저런 걸 구현해 놨는지. 한 마디로 내가 최고의 곳에서 즐기고 있다는 게 실감난다.          


◇ 나쁜 점

비싸도 너무 비싸다. 디즈니에선 모든 게 2배 가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분히 코로나19로 문을 닫아 생긴 적자를 메우기 위한 기업의 돈벌이 전략이 반영됐다)


입장권과 디즈니월드 내 빌라·호텔·리조트(30여개가 있다) 가격은 매일매일 다르게 책정되는데 평균적으로 입장권은 한화로 1인 테마파크 한 곳당 19만원, 호텔은 가장 저렴한 리조트급이 1박에 30만원 정도 한다. 4인 가족이 디즈니 숙박시설에서 3~4일 묵으면서(테마파크 이동과 조기입장 등 혜택을 연계해 놨다) 테마파크 몇 곳을 이용한다면 수백만원은 기본으로 깨진다.

여기에 500㎖ 생수 하나가 5000원에 육박하고, 같은 용량의 콜라 하나에 6000원, 맥주는 한 잔에 만원이다. (물론 환율 때문에 한국인 입장에서 가격이 더 사악해졌지만) 햄버거나 샌드위치 같은 가벼운 먹거리에 음료수 한 잔 먹으면 2만원, 제대로 된 요리라도 시키려면 인 당 10만원은 돼야 할 거다.


결국 나는 어차피 신경써서 먹일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버이츠로 근처 식료품 가게에서 물 나흘 치와 과일, 식사빵, 군것질 거리 등을 주문해 내내 배낭에 넣고 다니며 만족스럽게 끼니를 해결했다. 커피는 호텔에 비치된 디즈니 50주년 커피(조프리 커피)가 맛있어서 내려마시고, 준비해 간 텀블러에 담아 테마파크에 앉아 즐겼다. 다른 곳 같으면 여행와서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궁상맞게 느껴질지 몰라도 디즈니에서만큼은 아주 잘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디즈니에는 곳곳에 상품가게가 많은데 반팔 티셔츠와 야구모자는 5만원, 긴팔이나 조금 부피있는 후드티나 스웨트는 10만원에 육박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쓰고 다니는 미키마우스 귀가 달린 헤어밴드도 38달러 정도니까 세금 붙고 환율 따지고 하면 그 작은 게 5만원이다.(그래서 미리 월마트나 아마존에서 비슷한 제품을 산 뒤 가서 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작은 마그네틱이나 핀조차 1만5000원, 좀 괜찮아 보이는 굿즈(상품)들은 기본이 수만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돈 개념이 없는 아이들이야 미친 듯이 사 달라고 하는데 저걸 다 어떻게 감당하나 싶다. 인조가죽으로 된 작은 배낭이나 가방은 10만~50만원에 이른다. 기분은 내고 싶지만 이거야 원….     


◇ 이상한 점

내가 가장 놀랐던 건 디즈니 상품들의 퀄리티다. 놀이기구나 공원 내 시설, 쇼들은 그렇게나 훌륭하면서, 캐릭터들을 주제로 한 물건들은 그 비싼 가격에 비하면 말도 안 되게 질이 떨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티셔츠는 세탁기로 이미 15번은 돌린 듯 전반적으로 보풀이 일어나 있거나, 프린트가 당장이라도 떨어지거나 갈라질 것처럼 붙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후드티도 천이 너무 뻣뻣해 만져보는 즉시 손을 떼게 된다. 기능성 소재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천에서 나오는 그 왜 촤라락~ 떨어지는 느낌이 단 1도 없는 그런 옷들이다. 레벨을 보니 Made in China가 대부분이다.

플라스틱이나 비닐, 인조가죽 제품들, 도금한 귀걸이·목걸이 등 주얼리 류도 마찬가지다. 모양이나 도색은 비교적 잘 돼 있지만 소재 자체는 그저 조악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제품 구매 후기를 보면 별점 1~2개에 ‘너무 실망스럽다’ ‘한번 빨았더니 망가졌다’ ‘너무 뻣뻣해서 옷테가 안난다’는 댓글이 많다.  질이 낮으면 가격이라도 저렴하든가, 가격이 이렇게 높으면 소재라도 좋든가…아니, 가격을 떠나 ‘디즈니’라는 브랜드의 자부심과 이미지가 있는데 어떻게 이런 퀄리티의 제품들을 파는지 본사 담당자를 찾아가 호소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디자인도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아무리 주제가 꿈과 동화라지만 디즈니 제품을 원하는 성인들도 많고, 실제론 이들이 소비력 있는 주요 고객층인데 도. 저. 히. 테마파크를 나서는 순간 지니고 다니기 어려운 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패션 제품만 해도 조금 색상 톤을 낮춘다든지, 문양을 단순화하거나 추상화하든지 하면 될 텐데 그런 게 드물다. 동화 속 도안 그대로 새겨진 공주님들과 새빨간 리본, 원색 그대로의 빨주노초파남보의 색깔들로 뒤덮인 제품은 아무리 ‘제가 디즈니팬이에요’라는 메시지로 양해를 구한다 해도 어른이 일상에서 활용하기 어려운 아이템들이다. (심지어 그 자체로 예쁘거나 세련되지도 않다)


처음 디즈니월드 여행을 계획할 때 ‘그래, 지르고 오자!’란 결기(?)를 다졌었다. 어린 시절 소중한 추억이 많은 디즈니인데, 그 추억을 오래 새기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돈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선 사고 싶어도 별로 살 게 없었다. (오히려 예산 절감엔 도움이 된 건가?! 흠)


많이 걷고, 많이 보고, 많이 노래 부르고(!) 미소짓고 환호했던 디즈니월드. 자본력과 기술력, 마케팅의 힘도 느꼈지만…또 하나, 생각지 못했던 부모님의 사랑도 느꼈다.

내가 방문한 때는 초등~고등학교가 개학해서 아주 어리거나 유치원 정도의 미취학 아동들이 많았다. 하나하나 세심하게 돌봐야 하는 건 물론이고, 유모차를 끌면서 비명에 가깝게 울부짖고 떼쓰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디즈니월드에서 본 각국의 부모들은 솔직히 고생고생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 엄마 아빠도 나와 동생에게 하나라도 더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시려고 피곤하고 비싼데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시켜 주신 거였구나….

오래전 추억과의 만남, 그리고 지금 되새기는 감사함. 50주년 디즈니가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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