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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an 20. 2023

요즘 노인들은 정말 불쌍하다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아무리 생각해도 노인은 좋은 게 하나도 없다. 경륜이 쌓였다느니, 어지간한 것에는 동요하지 않는다느니, 인생의 깊은 맛을 음미할 줄 알게 된다느니…노년의 장점을 열거하는 말은 많지만, 솔직히…그래, 솔직해지자. 늙어서 좋은 건 사실 하나도 없다.     


모든 사람은 늙어 죽음을 맞는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사람이 죽는 순간을 ‘밤의 어둠이 두 눈을 내리 덮었다’고 표현했다) 그래도 요즘 시대의 노인은 과거의 노인보다 훨씬 짠한 처지에 놓였다. 왜? 두 가지 축이 같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첫째는 역시 건강. 몸이 먼저냐, 정신이 먼저냐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몸이 먼저다. 몸이 아프고 힘들면 웬만한 의지로는 긍정적인 정신을 유지하기 어렵다. 노인이 되면 체력이 떨어지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긴다. 외모가 변하는 것도 슬프지만 젊었을 때 문제없이 해 내던 동작과 활동, 일들을 할 수 없게 된다. 다른 누구보다 본인이 비교가 되고 체감이 되는 변화다.     


둘째는 지식의 차이다. 과거 노인들은 비록 힘쓰는 일은 하지 못해도 ‘지혜의 보고’였다.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한 사회 변화의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노인들은 자식과 손자가 결코 알지 못하는 정보를 지식과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노인들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답을 내놓으면서, 네이버나 구글같은 포털 역할을 했던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보는 곧 힘이자 권력이다. 현실적으로 노인들이 존경받고 대접받았던 큰 이유다.    


미국 올랜도 디즈니월드에서 한 노인이 전동 기구를 이용해 놀이공원을 즐기는 모습.

하지만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잔인한 표현이지만 노인들의 ‘효용’은 사실상 사라졌다. 더 가슴아픈 건 노인들이 젊은 시절 익혔던 지식이 젊은이들에게 거의 쓸모없는 것을 넘어서, 그대로 따랐다간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을 만큼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가 바람직하냐, 그렇지 않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물론 사람의 도리처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가치들은 어르신들의 말이 결국 맞았구나, 깨달을 때도 많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평균 수명은 100세를 바라보는데 수입은 제한적이고, 몸은 아프다. 무엇보다 사회의 ‘부(富)’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이로 인해 젊은 세대는 노인 세대를 없는 사람 취급하거나, 무시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살기 힘들고 각박한 사회가 돼 갈수록, 어쩌면 가장 먼저 ‘잉여인간’ 취급을 받는 게 우리 부모, 조부모 세대가 될지 모른다. 당장 자식이 여럿이어도 수년간 왕래가 없어 고독사하는 노인들의 슬픈 뉴스를 간간히 접하지 않나. 그것이 나의 미래가 되지 않으리란 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 50~60대에 은퇴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모아둔 재산이 있고, 개인연금이 나오고, 금융투자 등으로 꼬박꼬박 소득이 있는 노인들, 자녀들이 끝까지 잘 케어하는 노인들은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런 것 없이 국민연금 등 정부에서 주는 돈만으로 은퇴 전과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며 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럭저럭 살던 사람들도 노인이 되면 억지로라도 눈높이를 낮추고 살아가야 하는데, 기본적인 병원비만 따져 봐도 만만치 않은 문제다.

         

미국에도 직장생활을 30년 이상 오래 한 사람들이 은퇴하면 매달 약 200만원 정도를 지급하는 사회보장연금이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떼고 나면 절대적인 금액도 부족해 문제라고 한다. 갈수록 노인 인구 비율은 늘어날 텐데 이걸 어찌해야 하나. 그렇다고 재산많고 집안이 부자인 노인을 제외하고 ‘그냥 굶지 않을 정도로 죽을 때까지 어떻게든 잘 버텨봐라’ 이렇게 내몰 수도 없지 않나.     


전문가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지만…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3가지다.

1. 결국 지금이 인터넷과 인공지능, 로봇산업, 우주산업 등이촉망받는 시대라면, 돈은 벌 수 있는 사람들(기업)이 벌고 한참 전 과거에 태어난 사람들은 그 부를 나눠 갖는 수밖에 없지 싶다. 막대한 부를 거두는 기업을 통해 세금이든 지원금이든 기부금이든 어떤 이름으로든 사회 구성원들을 먹여 살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게 안 될 지경이고, 어떤 힘 있는 부류의 저항에 부딪힌다면 미래엔 영화에서처럼 인구수를 조절하든, 우월한 DNA를 가진 인구만 생산하든 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의 한 대형 식료품점 셀프 계산대 모습.

2. 경제적으로 도움이 안 돼도 사회 구성원인 노인들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받쳐줘야 한다. 그냥 먹고 자고 하루하루 연명하라는 게 아니라, 노인들도 즐겁고 보람된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거다. 미국에선 시니어들이 무언가 배우고 싶을 때 언제라도 지역의 국공립 대학들이 문을 열어 이들을 받아준다고 한다. 언제든 공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 거다. 또 비록 첨단 기술은 아닐지라도 지역사회 봉사나 복지활동, 돌봄, 관광안내 등 기존 노인의 지식과 경험으로 할 수 있는 일자리도 많이 발굴하고 독려하면 좋을 것 같다.       


일반적인 경우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대형마트들엔 셀프 계산대 구역에 늘 직원이 상주하며 손님들을 돕는데, 이들 중에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 많다. (술을 사려고 하면 와서 성인인지 신분증 검사도 한다)

어떤 지역의 역사적인 장소에 가도 노인들이 본인의 어렸을 적 경험을 곁들여가며 생생한 설명과 안내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 이분들 중에는 시간을 훌쩍 넘겨서 기침이 나올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하는 어르신들이 많아 감동받은 관광객들이 팁을 두둑이 드리기도 한다.     

미국 마이애미의 한 역사 관광지에서 실제 어린시절 이 집에 살았던 노인이 당시 쓰던 주방기구를 설명하고 있다.

3. 허무맹랑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필요하다면 특정 분야를 제외하곤 기술의 발전, 사회의 변화 속도를 조금 늦췄으면 좋겠다. 적어도 일반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현재 이 정도 기술로도 충분히 멋지지 않나.

특히 한국은 일단 편리한 기술이 개발되면 나라 끝에서 끝까지 모든 생활 방식이 싹 바뀌어 버리는 경향이 있는 이건 노인들에겐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소소하게는 더 이상 대중교통 수단들이 현금을 받지 않는다든지, 은행들 지점들이 문을 닫는다든지, 음식 주문이 모두 키오스크나 QR링크로 바뀌어 버린다든지, 행정 업무에 더 이상 종이 서류를 취급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일들을 들 수 있다.


노인들이 현대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잡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귀양가는 것 마냥 시골 동네나 산 속, 노인들만 사는 곳으로 들어가지 않고도 사회 속에서 노인들이 자괴감을 느끼지 않고 과거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으면 좋겠다.      

우리 명절 설이다. 새로운 한 해의 시작에 오래 산 사람들, 고령사회를 걱정하고 있는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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