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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an 29. 2023

20%가 기본? 팁 무서워 미국 식당 못 갑니다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미국 생활에서 생각보다 거슬리는 것 중 하나가 ‘팁(Tip)’문화다. 솔직히 문화가 아니라 ‘제도’라고 부르는 게 맞다. 왜냐? 팁이 완전히 강제·의무 사항이니까.      

팁이란 게 손님이 고마워서 자발적으로 주는 건 줄 알았는데 적어도 미국에서 팁은 무조건, 반드시 줘야하는 돈이 됐다. 식당 종업원은 물론이고 택시와 우버, 리프트같은 자동차 플랫폼 기사에게도 팁을 줘야 한다.

음식 배달기사에게도 ‘배달비’와 별개로 팁을 주게 돼 있고 심지어 음식을 본인이 받아서 테이크아웃(To go)할 수 있는 카페에서도 팁을 유도한다.


커피나 음식을 바로 들고 나오는 경우엔 그냥 나와도 된다고 하지만, 계산할 때 팁을 18%/20%/25%/30% 식으로 선택하도록 돼 있어 처음엔 영 쉽지 않다. 앞에 직원이 있는데 화면에서 ‘Skip’ 이나 ‘NO Tip’을 선택하기가 참 거시기하기 때문이다.


서비스하는 직원에게 기분 좋게 몇 달러 얹어주는 게 그렇게 곤란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팁이 강제적이고 그 액수가 무척 올랐다는 점이다.      


▶ 강제성

음식이 맛없어도, 종업원이 불친절해도, 손님이 직접 음식을 받아 테이크아웃 해도 무조건 팁을 줘야 한다기에 좀 어이가 없었다. 현지인에게 ‘기준이 뭐냐’고 묻자 ‘사람이 연관돼 있으면 무조건 준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맥도날드 키오스크로 주문할 때는 팁이 없었군)

강제성이 어느 정도냐 하면, 팁을 조금 주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어 팁을 주지 않으면 직원이 쫓아나와서 ‘뭐가 문제냐’ ‘왜 팁을 안 준거냐’ 따질 정도다. 관광객이나 나처럼  1년 정도 있다 가는 사람이야 상관없겠지만, 이민자·주재원·유학생 등 미국에 오래 머무는 사람일 경우 ‘블랙리스트’에 올라 평판(?)이 나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팁은 무조건 줄 수밖에 없다고 한다.      


▶ 액수       

과거엔 점심은 음식값의 10%, 저녁은 15% 정도 팁으로 주면 적당하다고 했는데 지금은 점심이 15~18%, 저녁은 20~30%가 기본이 됐다. 점심에 30분 정도 빵과 콜라 10달러 어치를 먹으면 음식값에 1.5달러(팁 15%) + 0.75달러(판매세 등 노스캐롤라이나주 및 지역세금 7.5%)이 붙어 12.25달러가 된다. 여기에 환율까지 생각하면(주변에선 생각하지 말라고 하지만!) 간단한 요기에 1만5000원이 넘게 드는 셈이다.

저녁에 음식을 여러 개 시키고 술까지 마시면 계산서는 음식 값보다 훨씬 높아지게 마련이다. 참고로 미국은 술 종류에 따라 다른 세금이 붙는데, 보통 도수가 높을수록 세금비율도 올라간다.      

저녁 회식 뒤 음식값 86달러에 세금을 더해 92.45달러가 나왔다. 대기자가 많으니 나가달라해서 쫓기듯 나왔지만 팁 20%는 기본이라 110.94달러를 냈다.  

처음 미국에 올 때는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니며 맛집 도장깨기를 해야지, 기세등등했다. 하지만 몇 번 식당을 가보니 이러다간 거지가 될 것 같았다. 급등한 물가와 세금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팁이 너무 아깝고 부담스러웠다.

남편이나 친구 등 함께 식사할 사람이 있다면야 이야기하고 분위기를 즐기는 대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혼자 가서 기껏해야 스마트폰이나 보면서 밥 먹을텐데 굳이 이 비싼 팁을 낼 필요가 있나 싶은 거다. 결국 요즘엔 같이 수업듣는 연수자 등 지인들과 어울릴 때 말고는 마트에서 장을 봐서 대부분 혼자 식사를 해결한다. 마트엔 웬만한 음식과 식재료가 다 있어서 그 편이 훨씬 마음도 몸도 편하다.      


팁은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팁을 꼭 줘야하는 이유는 식당 등의 고용주가 종업원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손님들이 팁을 줘야 직원이 최저임금이라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다. 심지어 팁을 받아도 최저임금이 안 되는 노동자들도 많다고 한다.

8개 정도의 주를 빼고 미국 대부분의 주가 이런 식이라, 사정을 뻔히 아는 손님 입장에서도 안 줄 수 없는 분위기가 자리잡은 거다. 근본적인 문제를 없애기 위해, 팁과 상관없이 고용주가 최저임금을 보장하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규정을 고치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무엇보다 지금은 경제가 어려운 시기다. 미국도 한국처럼 먹거리부터 난방비까지 물가가 많이 올라 사람들이 넉넉하게 팁을 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미국 신문에 <식당에서 돈 아끼는 방법>이란 솔깃하면서도 짠한 기사가 실릴 정도다. 기사에 등장한 컨설턴트는 “팁을 안 주고 돈을 아끼려면 그냥 집에서 먹으라”고 심오한 조언을 한다. 그러면서도 “일단 식당에 왔으면 종업원들에게 잘하라”고 덧붙인다. 팁을 야박하게 주지 말라는 게 포함된 말이다.     

실제 고용주들은 ‘이 정도가 적당하다’하는 팁 요율을 자꾸만 올리는 추세다. 본인들이 져야 할 인건비 부담을 손님에게 떠넘기고 종업원을 팁 수금에 내모는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종업원들은 팁이 월급과 직결되니 자꾸만 많은 팁을 유도한다. 일례로 미국 식당에선 테이블마다 담당 종업원(서버)이 배정돼 ‘내 이름은 누구다’라고 소개하는데, 손님은 이 직원에게만 주문하고 요구사항을 말해야 한다. 종업원 중에는 프로페셔널답게 적당한 타이밍에 자연스럽게 주문을 받고 필요한 것들을 요령껏 챙겨주는 사람도 있지만, 경험상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주문받을 땐 오래 기다려도 안 오더니만, 음식이 나오고 나서는 너무 자주 와서 ‘필요한 거 없어요?’ ‘다 괜찮아요?’ 이런 말을 기계적으로 던지고 가는 게 대표적이다. 이러면 손님 입장에선 상대와 나누는 대화가 뚝뚝 끊긴다. 그리고 솔직히 음식 맛이 없고 불만이 있어도 종업원이 와서 피곤하게 웃으며 영혼없이 ‘괜찮냐’고 다그치면 나도 반사적으로 ‘괜찮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가니까) 현지인에게 왜 저렇게 부르지도 않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오는 거냐고 물어봤더니 인상을 남겨서 팁을 더 받기 위한 이유가 크다고 했다. 흠….     


나도 상대의 친절에서 진정성을 느꼈거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고마운 마음이 들면 후하게 팁을 주곤 한다. 이럴 때는 팁이 전혀 아깝지 않다. 하지만 미국서 달러를 벌지 않는 빠듯한 외국인 입장에선 대놓고 팁에만 관심있어 보이는 사람에겐 되도록 돈을 아끼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이제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면 봉사받은 게 없으니 팁을 주지 않거나 1달러 정도만 주고 나온다. (그래도 4000원 짜리 커피에 팁이 1000원이면 무려 25%인 거다) 우버를 이용할 때도 이동요금이 너무 비싸게 책정되거나 기사가 불친절하면 팁은 줄인다. 다른 도시에서 호텔을 이용할 때도 3박 정도는 굳이 룸청소를 요청하지 않고 혼자 깨끗하게 사용하면서 버틴다. 그럼 자원절약과 환경보호는 물론 팁값도 아낄 수 있으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주는 사람도 불편하고, 받는 사람도 불만인 미국의 팁. 단순히 문화 차이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건네는 감사’라는 본래 의미가 퇴색해 버렸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쭉 익숙해지긴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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