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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Feb 04. 2023

미세먼지가 폐에 박히는 게 아닙니다-꼭 알아둘 6가지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아무리 말해봤자 아무 소용없는 게 있다면, 바로 미세먼지가 아닐까. 한국은 남부러울 게 없는 나라다. 경제력, 주요 산업 경쟁력, 문화자원, 국민의 능력과 수준…땅덩이가 조금 작다는 거 빼고는 이만하면 전 세계 수백개 나라 중에서 최우수 그룹에 속한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정말 치명적인 한 가지 결함이 있는데, 그게 미세먼지다. 왜 치명적이냐 하면 첫째, 누구도 숨 쉬는 매 순간 절대로 피해 갈 수 없는 ‘공기’에 대한 것이고 둘째, 당장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서 그렇다. 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와 있는 동안 가장 행복한 건 공기이고, 가장 슬픈 것도 공기다. 비오고 바람불고 흐린 날은 있어도 결코 공기가 안 좋은 날은 없는 거다.

처음 한 달은 아침에 창문을 열 때마다, 문 밖을 나갈 때마다 이 청명하고 맑고 상쾌한 하늘과 공기가 눈물이 날 만큼 감동이었다. 반대로 한국 뉴스를 들을 때마다, 한국의 미세먼지 앱을 확인할 때마다 연일 심각한 미세먼지 상황에 가족과 지인들 건강이 걱정되고, 나만 여기서 최고의 공기를 마시고 있구나 슬픈 생각이 든 거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야외 잔디밭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내가 미세먼지(초미세먼지 포함)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건 2015년 정도부터였다. 기관지와 편도가 약해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어김없이 목이 붓고 따끔거렸기 때문이다. 당시 미세먼지는 아직 큰 사회적 이슈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내가 그날그날 미세먼지 수치를 외다 시피하며 심한 날은 외출을 삼가고 마스크를 꼭 써야 한다, 창문은 열면 안 된다고 주장할 때마다 유난을 떤다, 너무 예민하다고 핀잔을 줬다.      


하지만 널리 알려졌듯 한국의 미세먼지는 솜먼지나 꽃가루, 흙이나 모래 같은 게 아니다. 대부분이 인체에 치명적인 중금속·화학물질이다. 석탄과 석유 등을 태우는 공장 연기나 자동차 배기가스, 자동차 타이어 마모물질, 대기오염 물질(질소산화물)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물질들은 한번 몸 속에 들어오면 결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차곡차곡 쌓인다.      


자타공인 선진국인 한국이 후진적 환경오염 물질인 미세먼지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건 중국의 원인이 크다. 중국 공장지대 등에서 서풍을 타고 날아오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 한 때 미세먼지가 한국 탓이냐 중국 탓이냐를 두고 정치권이 양쪽으로 나눠 싸우기도 했다.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사진 언스플래쉬

당연히 중국에서도 발생하고, 한국에서도 발생한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만으로 백령도부터 제주도까지 국토 전체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오염 물질에 몇날며칠을 갇히지는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해결이 어렵다. 한국에서 우리끼리 조심하고 단속한다고 체감할 정도로 좋아질 문제가 아니니까.


미세먼지가 심한데 맑은 날, 흐린 날, 비 오는 날이 무슨 소용이 있나. 미세먼지가 심한데 포근한 봄날이든 온화한 가을날이든 무슨 의미가 있나. 건강을 위해 환기를 자주하고 밖에 나가 운동하라고? 1년 중 공기 질이 좋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하소연할 상대가 있다면 되묻고 싶다.      


나는 의사가 아니다. 하지만 수년간 의학박사 등 전문가에게 질문하고 취재한 내용 중에 사람들과 꼭 공유하고 싶은 몇 가지만 모아봤다.      


1. 미세먼지가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다.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미세먼지냐고 물으면 의사들은 100이면 100 ‘아니오’라고 한다. 문제는 미세먼지가 몸 안에 들어와 염증을 일으키고 그 염증이 그 사람의 가장 약한 기관에서(몸이 상대적으로 약한 노인이나 어린이들이 그래서 더 위험하다) 심각한 질환이나 암으로 발전한다는 거다. 심혈관 질환, 폐암 같은 것들 말이다.


싱가포르 난양 공과대학과 고려대 연구팀의 발표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에서 1만5000여명(2010년 기준)이 대기오염으로 조기 사망했다고 한다. 공기만 괜찮았으면 그 나이에 발병 안 하고 안 걸렸을 병에 걸려 일찍 사망했다는 얘기다.  손가락 좀 베었다고 그 상처 자체로 죽는 사람은 없다. 그 약한 곳(상처)에 바이러스나 균이 침투해 심각한 병으로 발전해 결국 죽음에 이르는 거다. 미세먼지가 하는 역할도 비슷하다.

     

2. 미세먼지(초미세먼지)는 혈관 속을 돌아다니거나 폐에 콕콕 박히는 게 아니다.

동그라미든 네모든 차라리 고체라서 오염 물질이 갇혀있으면 나으련만, 미세먼지는 몸 안에 들어와 피 속에 녹아든다. 그거 생각하면 된다. 우물에 독 푸는 거. 우리 피가 우물물이라면 미세먼지는 그 물을 오염시키는 독이다. 물을 많이 먹는 게 미세먼지 배출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그나마 수분이 많으면 독성 성분을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3. 마스크 쓰는 기준은  ‘3080’

더러운 물은 정수기로 거르고 생수를 사 마시면 되지만 더러운 공기는 피할 수 없다. KF80과 KF95 마스크를 쓰는 게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주구장창 마스크만 쓰고 살 수도 없는 노릇. 한국 실정을 감안해 건강한 사람 기준으로 미세먼지 80㎍/m³, 초미세먼지 30㎍/m³ 이상이면 반드시 인증 마스크를 써야 한다. 수치가 이보다 낮다면 하던 운동을 하고 외부 활동을 하는 게 실내에 박혀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 이로운 점이 많다고 한다.


4. 미세먼지는 ‘고농도 미세먼지’에 ‘장시간’, ‘연속해서’ 노출될 때 가장 위험하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이 말은 곧 고농도 미세먼지라도 잠깐, 하루 이틀 정도만 마실 경우엔 치명률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된다. 중국이나 인도의 미세먼지 문제가 한국보다 심각한 이유가 바로 이 3박자가 동시에 맞물리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3가지 요소 중 하나만이라도 줄여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5. 공기청정기는 집이나 사무실 등 공간의 가운데(중앙) 두는 게 좋다.

넓은 공간이라면 큰 것 하나보다는 작은 것 여러 개를 군데군데 두는 게 효과적이다. 다만 공기청정기는 산소를 발생시키고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게 아니라 무조건 밀폐된 곳에서 돌린다고 ‘좋은 공기’가 되는 게 아니다. 전문가들이 환기가 필요하다고 하는 이유다. 그런데 또 미세먼지가 너무 심한 날에는 되도록 창문을 열지 말라고 한다. 진퇴양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참으로 곤혹스러운 문제다.          


6. 몸을 강하게 만들어라.

예전에 한 다큐멘터리에서 일제강점기에 탄광에 끌려가 갖은 노역을 한 할아버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어린 나이부터 그 안 좋은 분진을 다 마시며 고생하셨을텐데 당시 연세가 90세 정도였다. 타고나기를 강골이요, 강한 면역력을 지닌 신체였던 거다. 모든 사람이 선천적으로 이렇게 타고나는 건 아니니 좋은 것을 챙겨 먹고, 공기가 괜찮은 날 틈틈이 운동하는 등 독성 물질에 맞서 싸우는 자기 힘, 면역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에 위치한 UNC(University of NC) 교정을 거닐고 있다. 파란 하늘색을 닮은 '캐롤라이나 블루'가 상징색이다.

미국 사람들은 공기 좋은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고, 얼마나 중요한 일이며, 자신들이 얼마나 축복받았는지 실감하지 못한다. 미국에 와 보니 뭐가 젤 좋으냐고 물어볼 때 내가 망설임 없이 “공기요!!!”라고 말하면 약간 당황하며 웃곤 한다. 그들에겐 가까운 산에서 불이라도 나지 않는 한 늘 당연히 주어졌던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좋은 공기는 그냥 디폴트라는 점, 공기라는 단어는 그냥 잊고 살아도 된다는 사실에 지금 이 순간도 행복하고 또 이 순간조차도 내 나라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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