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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Feb 13. 2023

미국 밸런타인데이엔 주얼리보다 이것!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밸런타인데이(Valentine’s Day)는 미국에서도 꽤 큰 명절이다. 2월에 접어들면 벌써 거리 곳곳에 빨갛고 분홍색의 하트들이 보이고, 백화점이나 상점들도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물론 밸런타인데이를 탐탁지 않아 하는 시선도 많다. 너무 상업화됐다는 이유에서 ‘홀마크 명절(Hallmark Holiday)’이라고 비판한다. 홀마크는 역사가 오래된 유명한 엽서 회사인데, 실제인사카드협회(Greeting Card Association)에 따르면 1년에 세계에서 팔리는 약 10억장의 인사카드 가운데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많은 종류가 밸런타인데이 카드라고 한다. ‘기업들이 초콜릿 팔고 선물 팔아먹으려고 만든 날 아니냐’는 한국의 비판 여론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       

아마존같은 기업들은 열심히 밸런타인데이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미국의 밸런타인데이는 뭐랄까…좀 더 큰 개념의 ‘사랑의 날’ 같은 느낌이 크다. 꼭 사랑하는 남녀 연인들만을 위한 날이 아니라 가족·친구·선생님·제자·이웃·동료 등을 비롯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애정과 감사를 동시에 표현하는 날이다.      


그래서 학교에선 밸런타인데이 즈음에 선생님부터 나서서 아이들에게 초콜릿이나 사탕, 과자 등을 나눠주고 아이들도 비슷한 간식거리를 가져와 친구들과 나눠먹는다. 연수받는 학교에 갔더니 국제학생 담당 부서에서 나한테도 작게 포장한 초콜릿과 사탕을 줬다. (그 안에 작은 손편지가 들어있었는데 “오늘은 새로운 날이에요! 새로운 기회를 찾는 걸 두려워마세요!” 라고 적혀 있었다)     

대학 캠퍼스를 거닐다가 받은 앙증맞은 간식선물

식당이나 카페는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특별 할인행사를 하는 곳이 많다. 오히려 특별한 날이면 성수기라며 메뉴나 좌석, 방값을 더 올리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주고받는 선물도 어느새 고가의 주얼리나 향수, 전자기기, 심지어 명품까지 당연시하는 한국에 비하면 소소하다.      

또 이곳에선 전통적인 초콜릿·사탕과 더불어 꽃을 선물하는 사람들이 많다. 2월이 되면 대형마트에는 장미와 튤립을 중심으로 다양한 꽃과 화분들이 가득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한결 따뜻해진 기온과 함께 봄내음이 물씬 풍긴다.

통계가 보여주듯 카드도 빠질 수 없다. 통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갖가지 밸런타인데이 카드가 등장하는데 이 중엔 로맨스 말고도 가족에 대한 사랑이나 우정, 감사함을 표현한 것들도 많다. 밸런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한테 선물주는 날이다, 화이트데이는 남자가 여자한테 선물주는 날이다, 이렇게 도식화하고 유래도 잊힌 채 상업화해 버린 한국의 분위기보다는 훨씬 의미가 있다.     

우정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서로 축하하는 밸런타인데이 카드

참고로 이 날은 서기 5세기 무렵에 로마 황제가 강한 군대가 되려면 그리워할 가족이 있으면 안 된다며 군인들의 결혼을 금지하자, 발렌티노란 이름의 사제가 몰래 이들의 결혼식을 치러졌다는 얘기에서 비롯됐다고 하는데 이 밖에도 몇 가지 설이 있다.      

2월14일이란 날짜가 어떻게 정해졌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발렌티노가 로마 황제에게 처형당한 날이라고도 하지만, 그날이 로마인들이 그 해 농사가 잘 되도록 기원하는 의미에서 농업의 신을 기리는 축제일에 맞춘 거라는 주장도 있다. 또 중세 시대에 새들이 짝짓기 하는 시기에 맞춰 기념일을 정했다는 얘기도 있다.


확실한 건 미국에서 맞는 밸런타인데이는 봄, 그러니까 한 해를 시작하는 분위기와 꽤 잘 어울린다는 거다. 그동안 한국에서 수십년간 밸런타인데이를 보내면서 당시 남자친구나 직장 (남자)동료들에게 선물도 여러번 해봤지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부분이다. 오히려 싱글로 지낸 뒤에는 ‘이 날은 내 날이 아닐세’라는 반감만 강해진 것 같다. 흑흑.     


밸런타인데이는 1월1일이라는 너무나 명백한 달력상의 새해 첫날을 축하하고 난 뒤 한 달 정도 뒤에 있다. 아직은 낯선 새로운 연도를 사용하며 살다가, 이제 좀 익숙할 때쯤 돼서 따뜻한 새 봄을 기다리고, 올해도 좋은 일이 많기를 바라면서 함께 살아갈 주변의 사람들에게 애정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거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정월 대보름이 지나고 2월 즈음에 지난가을에 모아 둔 은행을 나눠 먹으며 정을 돈독히 했다고 하는데, 이 은행이 밸런타인데이의 초콜릿인 셈이다.     

한 해 한 해를 보내면서 어릴 때보다 걱정거리는 많아졌지만(심각한 정도도 세지고), 한편으론 감사할 것과 사람들도 참 많구나 하고 느낀다. 행복은 나를 위해 운명적으로 준비된 것도, 당연히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주나 대자연까지 가지 않더라도 나란 존재는 그저 이 세계, 우리나라 안에서도 미미하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이 정도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게, 나를 진정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가족과 몇 명의 친구·지인들이 있다는 게 생각해 보면 정말 정말 감사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처음으로 새 봄을 앞두고 맞는 밸런타인데이가 의미있고, 말 그대로 사랑스러운 명절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채플힐 공공도서관에 2월 밸런타인데이의 달을 맞아 이용자들이 '왜 도서관을 사랑하는지' 적은 하트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있다.

어릴 때는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 삐치고 화내고 울고 짜증을 내면 어른들이, 주변 사람들이, 누군가가 어르고 달래고 내 기분을 풀어주려 했던 것 같다. (더 어릴수록 그런 방법으로 더 쉽게 사랑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세상에 그런 이기적인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 주변과 연락을 끊고 삐치고 화난 테를 팍팍 내며 틀어박힌다면 어쩌면 영원히 그 상태로 살다가 그렇게 사는 게 곧 내 인생으로 굳어져 버릴 수 있다.


애정과 사랑은 표현해야 한다. 감사도 애정과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어른이 돼 갈수록, 나이가 더 들수록 더 많이 사랑하고 감사해야 그 따스한 온기가 잔잔하게나마 나에게도 돌아오는 것 같다. 이렇게 보면 밸런타인데이가 왜 뒤로 열 달이나 남은 2월에 있는지, 왜 ‘사랑의 하트’를 뿜고 빨갛고 분홍빛의 아름다운 색깔들로 치장했는지 이해가 간다. 이제 나는 앞으로 매년 밸런타인데이를 조금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Happy Valentine’s D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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