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직장 생활을 20년 가까이했으니 조직으로 치면 나도 허리보다 조금 위에 있는 관리자급이다. 어느 부서나 TF를 가도 선배, 손윗사람 역할을 할 나이가 됐다.
돌이켜 보면 윗사람과의 식사자리나 회사 단합대회 같은 행사는 대부분 힘들었다. 몸보다는 마음이. 요즘에 MZ네, 알파네 여러 젊은 세대들이 윗사람을 대하는 자세를 언급하며 생각이 없다, 버릇이 없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아랫사람 입장에서 윗사람은 그 자체로 마음이 편하지 않은 대상이다.
나 역시 그 ‘윗사람’이 돼 가는 처지(ㅠㅠ)지만 가급적 같이 하고싶지 않은 선배나 상사의 유형, 특징이 대략 몇 가지 있는 것 같다. 한국과 떨어져 잠시나마 시간을 갖고 지내다 보니 직접 경험한 상황들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나도 그때 그분들처럼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지 말아야지, 다짐아닌 다짐이 된다.
단순한 상식이다. 사람은 자기가 겪어보지 않았거나 아예 기억이 없는 얘기에는 오랜시간 집중하기 어렵다. 윗사람들의 10~30대 젊은 시절은 나이차 10년이 훌쩍 넘어가는 아랫사람들에겐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 시대다. 굉장히 유명하고 중요한 사건이라 들어본 적이 있다 해도 세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주제에 특별히 관심이 있지 않는 한 주구장창 그 얘기만 하는 상사의 말소리는 때로는 내용은 모르겠고 아득히 들려오는 외국어 같았다.
좀 들으면 어떠냐고? 바로 그게 핵심이다. 대부분의 아랫사람들은 그래도 싸가지가 있다. 윗사람이 말하면 귀를 기울이고 관심있는 척이라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어머 정말요, 와 그랬구나 하며 맞장구도 친다. 그래서 더 힘든거다. 내 시절 이야기는 내 또래 사람들과 하면 된다. 그러면 서로 추억도 돋고 재미도 있고 얘기도 통하고 두루두루 좋다.
나이 들어가는 것 중에 참 신기한 게, 젊은 시절 그렇게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어느새 틈만 나면 자신을 어필하려 하고, 자신이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는 거다.
그 중심은 역시 그들이 가장 잘 나갔을 시절, 그러니까 대략 30~40대 초중반까지의 활약상이다. 그 이후엔 지위만 올라갔을 뿐 자기 분야에서 새로운 뛰어난 성과를 낸 사람은 드문 것 같다. 하지만 요즘같이 변화가 빠른 시대에 그분들의 성과는 말 그대로 과거의 것이고, 아랫사람들의 커리어나 인생계발에 그렇게 도움이나 참고가 되는 것들이 아니다. 무용담 자체는 흥미진진할 수도 있지만 일단 앞서 말한대로 기억나지도 않고, 관심도 없고, 와닿지도 않는 내용들이 많다. 듣는 사람 입장에선 계속되면 될수록 반감만 커질 뿐이다.
조카나 자식뻘 아랫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지금 자신이 맡은 영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쉬지 않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심지어 이런 생각마저 든다. ‘누군가 저 얘기를 들어주고 인정해 줄 친구나 배우자가 또래 동료들이 없나?’ 비꼬는 게 아니라 안타깝다. 청중을 잘못 택했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30대 중반까지는 여자로서 싱글로 있다는 게 굉장히 조바심 나고 걱정됐었다. 지금은 나이나 결혼 유무에 대한 주변의 인식이 꽤 달라진 것 같지만 아무튼 당시엔 그때까지 짝을 만나지 못한 게 우울하고 모든 자신감이 다 떨어졌었다.
주변에 친하다고 생각한 싱글 여자 선배들이 좀 있었는데, 나에겐 이 분들이 공감(?)도 해 주고 조언도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술김에 이런 게 고민이다, 내 마음이 지금 좀 이렇다는 운을 떼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니가 어디 내 앞에서 외롭다, 걱정된다 말을 해?’ ‘넌 나한테 비하면 어린애야. 한창 어린 게 무슨 소리야?’ 같이 타박주는 말이었다.
내가 잘못했다. 그분들 앞에서 내 고민은 적절치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분명한 건 그분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거지, 내가 그 문제를 고민하기에 어린 건 아니었다.
윗사람들은 본인들이 (나이상으로) 더 늙었다는 걸 상기하는 게 싫어서 인지, 상대가 한 살이라도 낮으면 자꾸 ‘어리다’고 한다. 이런 식이면 그 관계는 사실도 틀리고 진실도 없는 공허하게 된다. 아랫사람 입장에선 ‘선배 앞에서 감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제가 지금 힘든 거는 아무것도 아니죠’가 된다. 더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다.
이것도 잘난 척과 더불어 세월의 ‘부정적인’ 신기한 점이다. 30~40대까지 이것저것 주위의 의견도 잘 듣고, 잘 인정하고, 자신의 지식이나 주장에 허점은 없는지 돌아보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기 주장과 심지어 지식을 어떻게 해서든 지켜내고 관철하려는 고집이 늘어가는 걸 본다.
나는 이것도 뭐랄까…일종의 절박함 같은 심리가 작용한 게 아닐까 싶다.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은 배우기에 늦었고, 그렇지만 지금의 지위나 영향력을 최대한 오래 유지해야 하고…그런 상황이 되니 조금이라도 내가 많은 것을 알고, 내가 하는 말이 맞고, 이런 것들을 강조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경험 상 윗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 틀릴 때가 생각보다 많다. 또는 과거엔 맞았지만 지금은 아닌 경우도 흔하다. 뭘 잘못 알고, 아직 새로운 내용을 습득 못한 건 그렇게 큰 흠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다. 그런데 이걸 곧 죽어도 자신이 무조건 옳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은 부질없는 옹고집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간혹 아랫사람이 정중히 ‘그게 지금 이렇게 바뀌었다’ ‘선배 말씀도 맞지만 요즘엔 이런 면도 있는 것 같다’ 는 식으로 의견을 내면…대략 두 가지 결말이다. 첫째, 심히 불쾌한 내색을 한다. 둘째, ‘그래, 그런 측면도 있지’라고 받아들이는 것같이 전제를 한 뒤 끝까지, 정말 끝까지 자기 의견으로 끝을 맺는다.
나이가 들수록 지인은 늘지 몰라도 친구는 줄어드는 것 같다. 직장에선 경쟁과 사내 정치로 친구가 줄고, 학창시절 친구들도 저마다 생활이 바쁘고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많아져서 그런 거겠지.
그래서일까. 윗사람들은 아랫사람이 자기 얘기를 들어주고, 자기 걱정을 해주고, 자기가 모르는 새로운 얘기를 해주고 (나쁜 뜻이 아니라) ‘기분전환’을 해 주는 상대이길 바란다. ‘뭐 재미있는 얘기 좀 해봐’ 이런 말도 꼭 군기를 잡으려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골치아픈 생각없이 좀 웃고 싶다, 즐겁고 싶다는 심리가 깔려있다.
나는 이런 상사, 선배들이 좋았다. 실제로 당시 나에겐 하늘 같았던 스무 살 가까이 차이나는 높은 분이 어느 날 ‘나랑 계급장 떼고 친구하자’고 한 적도 있었다. 이것저것 젊은 애들 어떻게 사는 지도 들려주고, 요즘 인기있는 영화나 음악, 유머도 말하고, 아무튼 니가 하고 싶은 말 다 해도 좋다는 거였다. 그분 입장에선 ‘얘를 통해 젊은 세대 속성 과외를 받아보자’란 계산(?)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굉장히 스스럼없이 대해주셔서 나도 잘 따랐다.
젊은 세대라고 무조건 윗세대를 불편해하고 유행에 뒤처졌다고 무시하는 건 아니라고 확신한다. 오히려 나와 다른 세대의 선배, 상사의 생각이 흥미로울 수 있고 윗사람이 다가와 주는 게 반갑고 고마울 수도 있다.
문제는 ‘친구’처럼 불러놓고 어느 순간, 예고 없이 ‘보스’모드로 돌변한다는 점이다. 그건 그들만의 특권이다. 비록 권위적으로 변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진짜 마음, 고민같은 인간적인 부분은 전혀 내보이지 않는다. 그래놓고 ‘왜 나랑 밥 먹는 걸 싫어하지?’라고 하면 안 된다.
친구사이에서 그러듯 서로 고민도 얘기하고, 감정도 솔직히 표현하고, 무엇보다 상대의 말과 행동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구나 존중해 준다면 나이차이가 무슨 문제겠나. 그런데 처음엔 친절하고 웃음을 띠며 편하게 얘기하라, 잘 지내보자고 하다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거나, 특히 조금이라도 지적하는 듯한 얘기를 하면 바로 화를 내거나 역력히 불쾌한 기색을 내 버린다. 스무 살 많은 그때 그 상사도 나중엔 딱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