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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Apr 06. 2023

위로는 사람한테 받는 게 아니야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나는 마음의 상처를 잘 받는 타입이다. 얼마 전에도 연수하는 대학 조교가 보낸 파일을 열어야 하는데 단톡방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안 열린다고 해서 나름대로 여기저기 도움을 구해 마침내 파일을 얻어 공유했는데, 모두 메시지를 확인하고도 고맙다는 말이 없어서 굉장히 서운했다. 그깟 게 뭐라고.      


미국에 오기 전 그렇게 친하게 지내고 각별하게 여겼는데, 계속 나만 먼저 연락하고 안부조차 묻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선 마음이 상해버렸다. 그깟 게 뭐라고. 쉽게 마음 쏟고, 정 주고, 돌아오지 않으면 서운해하는 이 피곤한 성격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구만. 혼자 쓴웃음을 짓는다.


인간관계란 인간 그 자체만큼이나 오묘하고 어렵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같이 어울려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데 정작 같이 어울리다 보면 늘 서로에게 상처주고 상처받는다.     

예를 들어 힘든 일이 있을 때 누군가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으면 상대는 대부분 위로해 준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고 달래주고 함께 욕해주기도 하고 조언도 건낸다. 그러면 진심으로 고맙다.      

하지만 오랜 경험상…그들 중엔 속으론 아냐 지금 니 상황은 전혀 괜찮지 않아, 저런 일이 나한테 안 일어난 게 다행이네라고 생각하면서 무작정 괜찮다고 하는 경우도 많다. 제안해 준 해결책 역시 그 자체로는 명쾌해 보이고 사이다 같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실행에 옮기기엔 어려운 것들이 많다.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시카고 미술관

게다가 예상외로 많은 사람이 나의 어려움과 곤란함을 다른 누구에게 말로 전한다. 의도적인 게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과의 술자리 등 다양한(!) 대화가 필요할 때 자신의 이야기주머니 속에서 따끈따끈한 내 얘기를 꺼내 버리는 거다. 사회생활을 오래하고 그런 일을 많이 겪으면 겪을수록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종족에 대한 믿음이나 애정, 기대같은 게 옅어지는 기분이 든다. 제 얼굴에 침 뱉기지만.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하다는 성선설(性善說), 원래 악하다는 성악설(性惡說)이 있지만, 나의 개똥철학으론 성약설(性弱說) 정도가 어떨까 싶다. 워낙 본성이 유약해 이리저리 쏠리고 변하기 쉬워서 어떤 계기로 감동스러울 정도로 착해지기도 하고 경악스럽게 악해지기도 하는데 아쉽게도 악한 쪽으로 더 쉽게 넘어간달까.     

실연의 아픔은 새로운 사랑으로 극복한다고 한다. 사랑은 그럴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마음의 상처, 스트레스, 심란함, 고민, 자괴감 등은 타인으로 치유되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으로 치유된다고 느낀다. 혼자 걸으며, 나무와 꽃과 바다 등 자연을 바라보며,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 함께 하며,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며….


그런 이유로 언제부턴가 뭐든 혼자하는 걸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혼자 운동하고 맛집에 가고 미술관을 찾고 드라이브하고 영화보고 여행도 하고…가끔은 야 이거 진짜 외로운데, 하는 느낌도 들지만 적어도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게 줄어든다. 그런 게 바로 이기적인 거라면 그것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의 정원 '코커 아버리텀(Coker Arboretum)'. 보랏빛의 스페니쉬 블루벨을 포함해 아름다운 봄꽃들이 피었다.

예전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특별히 동물을 좋아하고, 집 지키는 호신용 등으로 키우는 거라고 생각했다. 요즘엔 반려동물에게서 위로를 받는다는 게 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의 대체재라고 표현하는 건 부적절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사람보다 동물에게서 훨씬 더 위안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왜 그런 걸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에 더해서 심리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말을 못해서(우리가 하는 말을 못한다는 뜻) 그냥 들어주는 기분이라서? 나만 바라보고 따라다니고 내 말에 충성(?)해서? 나를 속이거나 못된 머리를 쓰지 않아서? 모르겠다….

     

사람이 싫다거나, 세상이 형편없다거나,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 이런 생각은 안 한다. 좋은 사람도 많고, 세상은 즐거움을 줄 때가 많고, 사는 건 그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이다. 내 고민은 오히려 어떻게 하면 나쁜 감정을 되도록 줄이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다.

      

분명한 건 다른 사람과 세상은 내가 바꿀 수 없다는 거다. 작은 일에도 마음이 쓰이고 상처받는 내 성향도 근본적으로는 바뀌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바꿀 수 있는 건 내 마음가짐밖에 없다. 단 며칠이라 해도 마음에 걸리는 것, 개운치 않은 응어리, 누군가에 대한 미움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건 힘든 일이다. 기억해야 할 건 기억하되, 그렇지 않아도 되는 사람과 상황은 되도록 빨리 떨쳐내고 싶다.  


어떻게 하면 될까. 정답이 있겠느냐마는,

  

그게 업무든, 사회적 태도든 일단 나부터 사람과의 관계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 게 첫걸음일 거다. 누군가에게 지적당하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역시 사람을 대할 때 과도하게 감정을 쏟거나 속내를 많이 드러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남의 얘기만 듣고 내 말은 하지 말라, 내 정보는 주지 말고 남에게 들은 정보만 활용하라는 식의 조언은 정말 싫다. 너무 약아빠지고 정 떨어지는 태도 아닌가.(그놈의 정이 뭔지 ㅎㅎ)     


그래서 말을 덜 해야하는 이유를 새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첫째, 내가 하고싶은 말을 실컷 쏟아내면 오해의 시작이 돼서 나는 물론이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 둘째, 솔직은 정직과 다르다. 솔직하다며 뱉은 말이 때론 이기적인 게 될 수 있다.      

동네 산책로에서 자주 만나는 사슴가족들

누군가와 좋지 않은 일이 있었을 때, 객관적인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게 아니라고 판단되면 일부러라도 생각해 보자. ‘저 사람은 내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이런 일로 스트레스받으면 나만 손해다’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다’. 유치하지만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사실 되게 무섭다)’ ‘에라 모르겠다 배째라’ 뭐 이런 객기도 한번 부려보자.      


근거없는 긍정적인 생각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저 사람은 별 뜻 없이 한 말일 거야, 표현만 잠깐 그랬을 뿐 여전히 나를 좋게 생각할 거야 등.


나를 포함해서 사람은 결함투성이고, 원래 선하거나 지혜롭기만 한 존재가 아니란 걸 받아들이자. 사실이지 않을까. 기대 수준을 확 낮추는 거다. 넓은 우주에 모든 면에서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가 있다면 우리가 아무리 난리를 쳐도 크게 분노하지 않을 거다. 쟤들은 원래 저래라며.        


할머니들이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소녀 때 그대로야’라고 하시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어쩌면 이 말 뒤엔 ‘아무리 많이 경험해 봐도 상처받는 건 그대로야’란 고백도 들어있는지 모른다.

남보다 조금 더 예민하고, 마음의 피부장벽이 약하다 해도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지 말고, 기분과 마음을 다스리고, 부디 시간이 내 편이 돼 주길 바라며 회복해 가는 수밖에 없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이다. 힘 안 내도 돼, 원래 그런거야, 너무 속상해만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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