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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Apr 15. 2023

미국 부모는 ‘학원경쟁’ 대신 ‘캠프경쟁’을 한다.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한국은 왜 이토록 아이를 안 낳는 나라가 됐을까. 수많은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교육이 정말 큰 이유인 것 같다. 아이가 유아기를 벗어나는 즉시 시작되는 사교육의 행군은 미래의 잠재적 부모인 젊은 층 전체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세상에 아이가 다치고 아파서 애를 태우거나 떼쓰고 사춘기에 말을 안 듣고, 가끔 사고도 치고…이런 일들로 힘든 걸 원망해서 아이 낳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한국에는 이렇게 힘든 것과는 완전히 별개로,

‘사교육’이라는 또 하나의 부모월드가 돌아가는 느낌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학원과 과외에 주구장창 들어가는 돈은 말할 것도 없고, 언제 어느 시기에 어떤 사교육을 시켜야 할지 매니징해야 하는 부모의 역할과 의무가 엄마 아빠 모두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들게 하는 거다. 자기 자식을 가져보고 싶은 본능 못지않게 어떤 일이 엄두가 안 나고 계산이 안 서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으려는 것 또한 인간의 본능이다.

       

미국에 1년 연수 온 부모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도 교육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학교라는 범주에서 기본적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교육시스템과, 이런 시스템이 사회와 사람들의 합의로 당연하게 자리잡은 분위기를 부러워한다. 남들이 너도나도 과외를 하면 내 아이도 과외를 해야한다. 그걸 소신없다, 줏대 없다고 마냥 비난할 순 없다. 남들도 과외를 안 해야 내 아이도 과외를 안 시킬 수 있는 거다.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축제에서 아이들이 농장 경험을 하고 있다.

미국에도 시험을 잘 보고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려고 별도로 필기공부 사교육을 시키는 집이 왜 없겠나. 한국보다 훨씬 더한 케이스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을 거다. 하지만 중요한 건 대체적인,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모습들이다. 공부든 취미든 특기든 문화생활이든 정부가 운영하는 공교육에서 끝내도록 만들어진. 사실 학교란 게 말 그대로 뭐든 배우는 곳이 아닌가.


내가 연수중인 노스캐롤라이나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과서로 공부도 배우지만 스포츠, 음악, 공예 등 다채로운 활동을 배우고 즐긴다. 함께 연수중인 선배의 아들은 방과 후에 하루에 두 시간씩 축구를 하고 들어온다. 여러 가지 운동을 해본 결과 자기에겐 축구가 제일 재밌기 때문이다. 선배는 “아들이 키도 훌쩍 크고 한국에서보다 몸도 마음도 훨씬 건강해졌다”며 너무나 만족해한다. 그리고 벌써부터 몇 달 뒤 한국에 돌아가면 (남들이 다 하는) 입시지옥에 어떻게 발을 맞춰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심란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부모들은 아이를 완전히 학교에만 맡겨놓고 있을까. 아니다. 나야 아이가 없지만 좀 지내보니 여기서도 ‘교육 경쟁’을 하긴 한다. 바로 계절마다, 때마다 열리는 각종 캠프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다.


캠프 내용은 주로 스포츠나 산과 들로 떠나는 자연탐험, 과학탐구. 미술관 견학, 음악, 사회문제에 대한 토론, 지역사회에서의 봉사 활동 등이다. 필기공부나 입시시험과 관련한 건 찾아보기 힘들다.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요즘은 물가가 올라서 대게 석 달에 한화로 20만~50만원 정도고, 주정부나 공공기관이 진행하는 캠프는 10만원대까지 내려가는 등 저렴한 것들이 많다.     

부모들은 가격에 비해 내용이 알차고 다녀온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소문난 캠프에 신청하려고 경쟁을 펼친다. 언제 등록이 시작되는지 정보를 알아보고 해당 캠프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팁과 경험을 나누는 거다.

나의 편견일 수 있지만, 이런 류(?)의 경쟁은 꽤 괜찮지 않나? 아이들의 성향에 맞게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무엇보다 나중에 어른이 돼서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그런 활동들이니까 말이다. 한 달에 몇 백 만원하는 한국의 고액과외, 그것도 국영수 따위(?)의 과외나 학원과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국인 중에 학교가 끝난 뒤 이어졌던, 청소년기의 몸에도 마음에도 최악인 사교육 경험을 좋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차라리 기억하지 않는 게 최선일 정도다.     


반면 어릴 때 자연이나 탁 트인 넓은 공간에서 몸을 움직이며 하는 활동들은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발견하게 하고 또래와 어울리며 사회생활이 어떤 건지 배우게 한다. 동시에 혼자가 아닌 자연과 사회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좋은 점, 남에게 친절을 베풀고 도움을 줄 때 얻는 즐거움 같은 것도 깨닫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곳 대학생들은 어린(?) 나이에도 하이킹하고 등산하고 낚시하고 풀밭에서 밥을 먹고 독서를 하는 등 디지털 기기에만 갇혀사는 정도가 한국보다 덜한 것 같다. 굳이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부르짖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건강한 어른, 건강한 시민이 되는 거다.     


한국의 치열한 사교육 열풍은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회의 경쟁이 심하고 어느 정도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야 연봉과 복지가 좋은 곳에 취업할 확률이 높아지고 등등.

하지만 이제는 많은 것이 달라질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같다. 일단 젊은 층의 인구수가 확확 줄고 있어 경쟁 자체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 가장 좋은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가장 좋은 직업을 얻고,가장 좋은 시민과 이웃이 되는 게 아니란 것도 수많은 사례로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그렇게 우수한 성적으로 최고의 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스스로 얼마나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는지….      

삶이 비교적 단순한 어린시절까지는 행복이 성적이나 학교 이름에 좌우될 수 있지만, 그 이후엔 다른 수많은 요인들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우리 모두 겪어봐서 알지 않나. 건강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알고 그 종류는 얼마나 많은지, 실제로 취미활동을 즐기는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등.

좀 딴 소리지만 지나치게 명품을 사고 승용차든 호텔이든 여행이든 소득에 비해 과소비를 하는 것도 단순히 허세라기 보단 30,40살이 돼도 ‘자신의 행복이 뭔지’ ‘내가 뭘 하면 제일 기분 좋은지‘ 여전히 찾아 헤매는 활동일 수 있다.

      

미국 교육도 들여다보면 수많은 문제점이 있을 거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은 아이들의 삶을(학교생활과 또래친구는 그 나이에 세상의 거의 전부다), 부모는 부모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정상적인’ 교육 시스템이 한국에도 하루빨리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누가 자신의 아이를 갖는 걸 마다하고 두려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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