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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r 25. 2023

제발 신발 좀 벗고 들어오라고요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사람의 기본 권리에 위해를 가하는 게 아니라면, 다른 나라의 문화를 비판하는 것만큼 건방지고 부적절한 일도 없다. 하지만 미국의 ‘신발신고 집 들어가기’와 ‘카펫(carpet)’ 문화는 정말이지 받아들이기 어렵다. 굉장히 싫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미국은 집집마다 두꺼운 카펫이 바닥 테두리를 따라 어느 한 곳 빠짐없이 쫙 깔려있다. 그리고 밖에서 신던 신발로 그 카펫을 그대로 밟고 집으로 들어온다. 호텔들도 마찬가지다. 슬리퍼를 비치해 놓은 호텔이 거의 없으니 진심으로 그냥 신발을 신고 지내란 얘기다.     

물론 요즘엔 마룻바닥 위에 필요한 부분만 카펫을 깔아놓는 다든가, 들어와서 슬리퍼로 갈아신는 다든가 하는 집들도 많지만 ‘기본적으로는’ 실내 바닥에 카펫을 깔고 신발을 신은 채로 돌아다니는 문화다.

처음 노스캐롤라이나에 집을 구할 때 “무조건 카펫이 깔려있지 않고 마룻바닥인 곳을 찾는다”고 얘기했더니 ‘여기서 그런 곳은 구하기 어려울 거다’ 또는 ‘카펫은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무조건 깔려있는 거다’ 등의 반응이었다. 미국 사람들에게 내 요구는 마치 ‘있는 발코니를 없애주세요’나 ‘방 두 개를 하나로 합쳐주세요’ 같이 집의 기본 구조를 변경해 버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문화고 뭐고 다 떠나서, 밖에서 돌아다닌 신발을 신고 먹고 자는 집 안에 들인다는 게 말이 되나. 적어도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바깥이 먼지하나 없는 반도체 연구실도 아니고, 온갖 오염물질과 개똥을 다 묻힐 수밖에 없는데 그걸 그대로 집 안으로 들인다고??!! 현관문 앞에 신발을 문지르라고 고무나 거친 섬유로 된 깔개 같은 걸 놔두긴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미국에 사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집에 들어서면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신거나 양말 차림으로 카펫이 깔린 집에서 생활한다. 그러면 밟는 감촉이 폭신폭신해서 좋다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카펫은 마룻바닥보다 청소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유든 커피든 액체류를 흘리기라도 하면 재질상 마루처럼 쓱쓱 닦아낼 수 없다. 약간의 결벽증(?)을 가진 나의 경우 치명적인 단점인 셈이다.


실제로 내가 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선 수시로 ‘제발 쓰레기 비닐봉투를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담아서 내놓으라’는 이메일을 보낸다. 아파트 복도에도 카펫이 깔려있는데 비닐봉투에서 음식물 찌꺼기 등이 새어나와 카펫에 얼룩이 생기고 악취가 나고 벌레까지 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시멘트 복도라면 물청소를 하든 닦아내면 그만이지만, 이건 뭐 길고 긴 복도 전체에 카펫이 깔려있으니 다 뜯어낼 수도 없고 난감한 일이다. 꼭 쓰레기 때문이 아니래도 이미 아파트 복도엔 비 오는 날 신고 들어온 신발 등으로 인해 여기저기 얼룩이 엄청나게 많다. 위생상은 물론이고, 미관상으로도 참 별로다. 얼마 전 방문한 한 대학의 카페에도 카펫이 깔려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 커피인지 뭔지 얼룩이 잔뜩 있었다.     

미국 아파트나 타운하우스의 경우 새로운 세입자를 받을 때, 대략 1년에 한 번 꼴로 카펫 전체를 교체한다. 여기에 드는 돈이나 시간이 적지 않을 거다. 막 새것으로 갈아뇠을 때는 괜찮을지 몰라도 그 이후엔 살면서 청소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 미국은 카펫클리너 등 카펫전용 청소기가 널리 보급돼 있는데, 한국보다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필수 가전이다.


이 청소기는 한국에서 쓰는 일반 청소기보다 더 센 힘으로 먼지를 빨아들이고 전용 세제 등으로 카펫에 스며든 얼룩을 지운다. 당연히 더 크고 더 무겁다. 그래도 깔끔하게 청소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돈이 많이 들어도 아예 전문 청소업체를 부르기도 한다.

대놓고 말은 못 해도 왜 카펫으로 온 바닥을 다 덮어놔서 사서 고생인지 모르겠다. 카펫이 깔린 호텔들만 해도 청소하는 게, 적어도 바닥은 무슨 의미가 있나싶다. 청소하시는 분 역시 신발을 신고 들어와서 청소기를 돌리는데, 손님이 만든 먼지를 없애면서 자신이 돌아다닌 신발로 다시 호텔 방 여기저기를 밟고 다니니까 말이다.      

글을 쓰면서 생각나서 우울해지지만, 아파트 직원들이 뭘 고치거나 점검하러 집안에 들어올 때 제발 신발을 벗든지, 커버를 씌우고 와 달라고 부탁한다. 그래도 매번 신발을 신은 채 들어와서, 그분들이 돌아간 다음 한바탕 청소하느라 너무 괴롭고 힘들다. (아니다 다를까 걸레에 더러운 게 잔뜩 묻어 나온다. 하…다음 정기점검이 두렵다)      


실내 바닥에 카펫을 깔고 신발을 신은 채로 다니는 문화는 왜 생긴 걸까.  

아마 영국 등 일부 서구권의 문화가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오는 것일 거다. 아주 옛날엔 추위를 피하려고 카펫을 깔아놨을 수도 있고, 돌과 흙으로 된 바닥이 위험해서 오히려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게 발을 보호하는 데 효과적이었을 수도 있다.

신발을 벗는 행위 자체를 모욕적(?)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있을 수도 있다. 실제 한국과 일본 등에서 온 사람들이 집안에 들어올 때 신발을 벗어 달라고 했을 때 이를 불쾌하게 여기는 미국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의식주 문화란 건 쉽게 바뀌지도 않고 바꿀 수도 없다. 나 같은 외지인이야 당황스럽지만, 현지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그래왔던 생활양식이라 별다른 불편이나 문제점을 느끼지 않는 거다. 다행히! 요즘엔 미국에도 ‘밖에서 신고 다니는 신발은 더러울 수밖에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 같다.

신발에 덮어쓰는 일회용 비닐 커버.

일례로 집에 인터넷을 설치하러 온 AT&T 기사님은 따로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신발 커버를 하고 집안에 들어왔다. 얼마나 좋고 감사하던지. 그는 두 살짜리 딸이 있다며 “아이가 태어난 뒤 위생 문제가 걱정돼서 집에서 신을 신지 않는다”고 했다. 암요 암요.     


세계 곳곳에서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권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고, 공부나 직장 등의 이유로 세계 곳곳에서 찾는 사람도 많은 나라다. 문화의 우월성을 따지는 그런 문제가 아닌 만큼, 적어도 호텔이나 공공 주거공간이라도 신발신고 생활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을 고려하는 옵션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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